모바일게임 ‘별이되어라’의 게임 플레이 화면.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 이후 청약철회 관련 내용을 공지했고, ‘단 한 번’ 이벤트라는 말 대신 ‘당분간’ 구매할 수 없다는 공지가 생겼다.
온라인, 모바일게임을 하다 보면 한 번쯤 만나게 되는 문구다. 이는 홈쇼핑 방송에서의 ‘매진 임박’처럼 소비자를 현혹해 결제를 유도하는 게임사의 일종의 ‘꼼수’. 이용자는 팝업창이 꺼지면 한정판 아이템을 다시는 살 수 없을까 봐 전전긍긍하지만, 게임을 재시작하면 다시 뜨는 팝업창에 농락당한 기분을 느낀다.
청약철회 불가, 거짓 팝업창 문제 개선돼
국내 게임업계는 올해 유독 소비자 기만 이슈가 많았다. 3월 중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거짓 사실을 알려 소비자를 유인하고 청약철회 등을 방해한 7개 모바일게임 판매 사업자에 대해 공표명령을 포함한 시정명령과 함께 과태료 3600만 원을 부과했다.
㈜게임빌의 모바일게임 ‘별이되어라’, ㈜네시삼십삼분의 ‘블레이드’, ㈜CJ E·M(현 넷마블게임즈㈜)의 ‘몬스터 길들이기’ ‘모두의마블’ ‘세븐나이츠’ ‘차구차구’ 등은 게임 접속 시 노출되는 팝업창을 통해 아이템을 판매하면서 ‘이 창을 닫으면 다시 구매할 수 없습니다’ 같은 문구 등으로 소비자를 유인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게임에 재접속하면 다시 해당 팝업창이 나타나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었다. 네시삼십삼분과 CJ E·M은 소비자가 구매하고 사용하지 않은 아이템의 경우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7일 이내 청약철회가 가능함에도 이를 불가한 것으로 고지해 시정명령, 공표명령(4일)과 함께 각각 1100만 원과 1500만 원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그렇다면 현재 해당 게임들의 ‘눈속임’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공정위에서 시정을 요구했던 게임들을 다운로드해 문제점이 개선됐는지 살펴봤다. 공정위에서 지적한 문제는 대부분 개선된 상태였다. 공통적으로 ‘구매 후 상품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 7일 이내 청약철회가 가능하다’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지 않은 미성년자의 거래는 취소할 수 있다’ 등의 문구가 아이템 구매 페이지 하단에 공지돼 있었다. 또한 ‘이달의 단 한 번 이벤트’ ‘단 한 번뿐인 구매 찬스’같이 조바심을 내게 만드는 문구는 ‘8월의 최초 구매 이벤트’ ‘해당 배너를 닫으면 당분간 해당 상품을 구매할 수 없다’ ‘해당 아이템은 월 10회만 구매 가능하다’ 등으로 완화됐다. 다만 글씨 크기가 지나치게 작고, 일부 게임에선 결제 버튼을 누르면 주의사항이 나오는 대신, 바로 구글플레이 결제창으로 넘어가 결제되는 것이 단점으로 나타났다. 또한 시정명령을 받지 않은 게임 중에는 여전히 팝업창을 띄우거나 가장 저렴한 아이템을 구매하려고 클릭하면 더 비싼 아이템을 사도록 유도하는 안내문이 지속적으로 나왔다.
‘확률형 아이템’은 국산 게임들의 대표적인 비즈니스 모델 가운데 하나지만 돈을 쓴 만큼 보상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 불만이 컸다. 강신철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K-iDEA) 협회장은 4월 취임 이후 “입법과 행정규제가 닿기 전 기업 스스로 자율적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자율규제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하고 협회 내 모든 회원사에 7월 중 자율규제 확대안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K-iDEA는 중소개발 회원사 200여 곳을 보유한 한국모바일게임협회와 손을 잡으면서 주도적으로 회원사의 자율규제를 유도하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시행 두 달째, 게임 환경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현재 6월 23일 넥슨을 시작으로 넷마블게임즈, 네오위즈게임즈, NHN엔터테인먼트 등 협회 회원사들과 모바일게임 시장 매출 상위권 업체들이 게임사 홈페이지나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아이템 획득 확률을 공개하고 있다. 공지사항에서 ‘확률형 아이템’을을 검색하면 도표 형식으로 공개된 확률을 확인할 수 있다. 8월 30일 기준으로 PC방 게임전문 리서치 서비스 ‘게임트릭스’에서 상위 10위권 게임 중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과 확률형 아이템이 없는 게임을 제외한 자율규제 대상 게임은 총 4개. 1위인 라이엇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는 이용시간 점유율이 38.93%로 가장 높았지만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지 않았다. 2~4위인 넥슨의 ‘서든어택 FPS’, 스피어헤드의 ‘피파 온라인3’, 네오플의 ‘던전앤파이터’는 게임사 공식 홈페이지에 확률을 공개했다. 5위인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의 ‘스타크래프트’에는 확률형 아이템이 없다.
넥슨의 ‘서든어택 FPS’ 홈페이지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의 획득 확률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게임은 ‘1% 미만, 1~10%, 10~30%’ 혹은 ‘확률 매우 낮음, 낮음, 보통, 높음, 매우 높음’ 등으로 확률을 뭉뚱그려 표기해 소비자의 혼란을 가중했다. K-iDEA의 아이템 획득 확률 공개 방법에 따르면 문제가 없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확률은 더 불확실해진 셈이다. 성인등급 게임은 규제에서 제외된 부분과 회원사에 가입하지 않은 게임사는 규제안을 따르지 않아도 페널티가 없어 자율규제가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K-iDEA는 모니터링 전담팀을 꾸려 각 업체가 자율규제를 시행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향후 월간 모니터링 보고서를 지속적으로 발간할 계획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자율규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초등학생이나 판단이 잘 서지 않는 아이들의 경우 부모 아이디(ID)를 활용해 게임 계정을 2~3개씩 돌리기도 한다. 성인용 게임이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확실히 ‘전체 이용가’ 게임의 매출과 순위가 높기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아이템을 구매할 때 발생하는 문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무엇이 나올지 알고 돈을 쓰게 하자’는 정부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과도하게 규제하고 제한하다 보면 상위 기업, 해외 기업만 돈을 번다. 소비자는 철저하게 재밌는 게임을 찾아간다. 지금도 해외 게임이나 페이스북 게임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 보니 국내 기업들이 많이 위축된 상태”라고 말했다.
반면 게임 내 최소한의 규제는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강신규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이용자의 복지와 게임 자체의 수명, 균형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규제는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게임 속 아이템은 대부분 확률형인데, 해외 주요 게임들을 보면 돈을 내고 구매한 경우 ‘꽝’은 없지만 국내 게임에서는 ‘꽝’이나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부분의 확률을 공개하지 않는 건 문제가 있다”며 “과금 아이템을 쓰지 못하면 게임을 따라갈 수 없게 만드는 것도 게임을 오래가지 못하게 한다. 실제로 과금 제도가 없는 해외 게임을 국내에 들여와 과금 형태로 바꿨다 인기가 예전 같지 못해 서비스가 종료된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