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잡대닷컴’(jijap.com)에 올라온 일부 지방 소재 대학과 고졸 학력을 비하하는 글들.
하반기 대입 수시모집을 앞두고 ‘대학 서열놀이’가 활발하다. 입시학원에서는 입학 평균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점수에 따라 대학들을 줄 세운다. 주로 서연고(서울·연세·고려대)-서성한-중경외시(중앙·경희·한국외국어·서울시립대)-건동홍(건국·동국·홍익대)-국숭세단(국민·숭실·세종·단국대)-광명상가(광운·명지·상명·가톨릭대) 순이다. 20~30년 전 서울·연세·고려대만 ‘SKY’로 칭하던 것에 비해 훨씬 세부적이다. ‘오르비’ 등 대입정보 사이트에는 일부 대학이 ‘지잡대’로 불리며 폄하되기도 한다. 지잡대는 ‘지방의 잡스러운 대학’의 줄임말로 지방 소재 대학 가운데 지역거점국립대, 포스텍(포항공대), KAIST(한국과학기술원) 등 일부 대학을 제외한 대학이란 뜻으로 통용된다.
한국 대학 내 지잡대생은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7월 17일 진학사가 발표한 ‘2016 수시대입전략’에 따르면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정원 내 모집인원은 수시·정시모집 합쳐 전국 4년제 대학 정원 내 모집인원의 22.1%이다. 약 78%에서 일부 사립대와 국립대를 제외한 대학생들이 지잡대생으로 불린다. ‘소외된 다수’의 모순이 존재하는 지점이다.
‘지잡대’ 왕따시키는 온라인
지방 소재 대학을 폄훼하는 경향은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서 두드러진다. 지잡대닷컴(jijap.com)은 젊은이들의 학력 서열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사이트는 ‘인서울 4년제 대학 이상 출입금지’를 표방하고 ‘고졸’ ‘전문대졸’ ‘지방대졸’ 등의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언뜻 보면 학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의견을 공유하자는 취지 같지만 실제론 극단적인 자조와 비하, 욕설이 대부분이다. 일례로 4월 16일 ‘고졸’ 게시판에 올라온 ‘고졸과 지잡의 구분법 알려준다’는 제목의 게시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졸 : 개나 소나 대학 가는 시절에 돈 없어서 대학을 가지 못한 사람’ ‘지잡 : 꼴에 대학은 나오고 싶었나 봄’.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에 2014년 3월 9일 올라온 게시글 ‘다시 보는 서울대 vs 지잡대의 차이’는 서울대와 지방 소재 대학의 미적분학 수학시험 문제지라는 자료를 비교하며 ‘클래스(수준)가 다르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중고차쇼핑몰 ‘보배드림’에도 지난해 7월 30일 ‘지잡대 기준’이라는 사진이 올라와 있다. 폭력이 난무하고, 학생들의 수업 태도가 불량하며, 학교가 고교 식의 야간자율학습을 시킨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사진이 어느 대학의 모습인지는 명확지 않다. 정확도가 떨어지는 내용을 두고 게시글에는 ‘(저런 대학을) 뭐 하러 다니냐’ ‘열등감이 폭발해서 저렇다’는 욕설 댓글이 이어졌다.
대학 졸업이 취업을 보장하지 않게 되면서 젊은이들의 학력 서열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실제 지잡대생으로 분류되는 학생들은 이런 글을 보고 상처를 받는다. 강원도 소재 대학 4학년생인 이승우(26·가명) 씨는 “오프라인에서는 별로 없는 일인데 온라인에서는 지방 소재 대학을 너무 무시한다. 겉으로는 학벌주의에 물들지 않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나 같은 사람을 멸시하는 것 같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고 말했다.
무시당하는 것은 지잡대생만이 아니다. 인서울 대학생 사이에서도 특정 대학 뭉침과 차별 현상이 나타난다. 삼수 끝에 올해 명지대에 입학한 김기윤(22·가명) 씨는 “인서울 대학생이지만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취업을 위해 대학연합 경영동아리를 알아봤는데 ‘서연고’ 또는 ‘서연고-서성한’과 이화여대 출신만 받는 동아리가 많았다. 다른 대학 학생들도 지원할 수 있는 곳에 면접을 봤는데 분위기가 싸늘했고 결국 떨어졌다. 김씨는 “나중에 뒷이야기를 들어보니 ‘인서울 중·하위권 대학’ 학생은 특별한 재능이 없으면 안 뽑는다더라”며 “상위권 대학일수록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고 씁쓸해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소위 ‘명문대생 모임’이라는 다음 카페 ‘스카이시’가 활발하게 운영됐다. 서울·연세·고려·성균관·한양·이화여대 학생들을 주요 회원으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다. 이 카페는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미팅, 맛집, 과외 정보를 공유했지만 “왜 서강대는 빠져 있나” “명문대생들의 학벌 이기주의냐”는 지탄을 받았다. 2005~2007년 스카이시에서 활동하던 이화여대 졸업생 이윤정(30·여) 씨는 “다른 대학 학생들이 가입해 카페 취지에 반대하는 글을 종종 올렸다”며 “이에 대해 ‘지성인끼리 뭉쳐서 대응해야 한다’는 우월의식이 강조된 글들도 올라왔다”고 기억했다. 이 카페는 한때 회원수가 1만7000여 명에 육박했지만 현재 9000여 명으로 줄고 거의 활동이 없는 상태다.
같은 대학 안에서도 ‘우리 학교 학부생 출신인지’를 기준으로 편을 가르기도 한다. 이화여대 재학·졸업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이화이언’(ewhaian.com)의 익명게시판 ‘비밀의 화원’과 ‘벼룩시장’은 이화여대 학부 학번이 없으면 이용할 수 없다. 이화이언 운영진은 2015년 3월 공지를 띄워 ‘대학원 학번으로는 이화인 인증이 불가하다. 훌리(온라인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해치는 누리꾼)와 이화인을 구분하는 동시에 최대한 많은 인원을 수용하고자 회원정보에 학번을 입력해야만 ‘비밀의 화원’을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며 ‘이는 이화이언 사용자들의 투표를 통해 이뤄진 결정이고 현재 서버 시스템상 학부 학번만 인증이 가능하다’고 알렸다.
젊은이들의 이러한 ‘분리주의’는 사회의 경쟁체제 속에서 일찍 형성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서울에서 20년 넘게 입시를 지도해온 학원강사 김모(43) 씨는 “요즘 젊은이는 10~20년 전과 비교해 자기 노력으로 얻은 것을 누리려는 욕심이 강하다”며 “특히 긴 재수생활이나 편입 준비 끝에 학벌이 상승한 경우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성취한 건데’라는 의식이 강하고, 이는 ‘가진 나’와 ‘덜 가진 남’을 점점 더 구분하고 차별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또 김씨는 “경쟁이 심한 외국어고(외고)에서는 이러한 ‘분리’가 교사들에 의해 심어지는 경우도 있다. 같은 외고에서도 성적이 비슷한 학생들은 거주지에 따라 교사가 다른 대학을 권유하기도 한다”며 “서울 강남 거주 학생들은 교사들이 재수를 염두에 두고 소신 상향 지원하게 하고, 강북 거주 학생들은 재수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고려해 하향 안정 지원으로 유도해 강남·북 출신의 학벌 편차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학력 서열’에 대한 편견이 종종 타인에 대한 경멸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10년째 대입 편입을 지도하는 강사 박은영(40·여) 씨는 “편입으로 ‘학벌 세탁’을 한 경우 과거 같은 대학에 다녔던 친구들을 ‘한심하다’고 여기기도 한다”며 “자신의 노력에 대해 지나친 자부심을 갖고 있고, 자신처럼 노력해 학벌을 상승시키지 않은 사람을 게으름뱅이 취급한다. 하지만 이들은 편입한 대학 학생들로부터 괄시를 받기도 한다. 학벌이 상승한 사람을 비하하는 ‘학벌세탁충’으로 불리며 또 다른 열등감을 갖게 되더라”고 말했다.
현실 불안감, 분리주의 이끌어
대중문화도 이러한 ‘저학력’에 대한 편견을 반영해 인기를 얻고 있다. 네이버 웹툰 ‘복학왕’은 소위 지잡대의 학교생활을 그린 것으로 프롤로그(예고편)에서 주인공이 입학 첫날부터 ‘지잡대 다니느니 자퇴하자’는 결심을 한다. 예고편에 불과했는데도 ‘정말 현실적이다’ ‘○○대는 안 가느니만 못함’ 등의 댓글 2만3000여 개가 달렸다.
“자신과 남을 일부 외형적 조건만으로 차별하는 행위는 자존감 불안을 악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김혜숙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서열에 집착하는 것은 자존감이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서열 중독은 취업경쟁이 심한 현실에서 불안한 자존감으로 인한 방어심리로 해석되고, 이는 지나친 자기 능력 우월주위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갈수록 심화되는 학력 서열화는 현실에 대한 젊은이들의 불안을 반영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8월 26일 발표한 ‘계층 상승 사다리에 대한 국민의식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계층 상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20, 30대에 가장 크게 강화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나라에서 개개인이 열심히 노력한다면 계층 상승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20대의 80.9%, 30대의 86.5%가 ‘낮다’고 응답했다(표 참조). 2013년 같은 설문조사에서 각각 70.5%, 80.2%가 같은 대답을 한 데 비해 10.4%p, 6.3%p나 상승한 수치다.
사회학 전문가는 “후천적 노력에 의한 계층 상승의 길이 막혀 있기 때문에 개개인이 학벌에 집착하는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취업경쟁에 내몰린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가 소유한 것’에 대한 의식이 강하다. 이는 결국 사회의 ‘사막화’를 초래해 개인을 모래알처럼 흩어지게 할 것”이라며 “타인에 대한 관용·연대의식이 없다면 지금의 경쟁체제는 더 견고해질 테고, 개인은 홀로 상처받으며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