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8월 6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이른바 4대 개혁을 국정과제로 천명했다. 방점은 노동개혁에 찍혔다. 청년층 일자리가 늘어나야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고 대한민국에도 미래가 있다는 호소였다. 일자리를 늘리는 구체적인 방도로는 장년층의 임금을 올리지 않는 임금피크제를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젊은 층의 높은 실업률은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쥐고 청년층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기성세대가 함께 고통을 분담하고 기득권을 조금씩 양보”할 것을 요구했다. 아마도 각 기업이 장년층의 임금을 묶어두어 발생하는 초과이윤을 청년층을 고용하는 데 쓸 것이라고 기대하는 듯하다.
과연 그렇게 될까. 필자가 과문한 탓일 수도 있지만 임금피크제를 통해 청년층의 고용이 늘었다는 연구 결과는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박 대통령과 정부의 주장이 맞으려면 청년층 고용과 장년층 고용이 대체관계에 있어야 한다. 장년층의 고용이 늘어나면 청년층의 고용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고용 변화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장년층 고용이 늘어날 때 청년층 고용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어나는 경향이 관찰된다. 예컨대 아드리안 칼위즈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교수와 그 동료들의 연구에 따르면 노년층 고용이 1명 늘어날 때 청·장년층 고용은 0.05명 증가한다. 대체관계가 아니라 미약하나마 보완관계라는 것이다.
기성세대 소득 높여야 청년 일자리도 증가
이뿐 아니다. 지난 30년간 미국과 다른 OECD 회원국의 노동시장을 연구한 결과는 장·노년층 고용이 늘어날수록 청년층 소득이 미세하나마 증가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장·노년층이 더 많이 일해 이들의 소득이 높아지면 이는 곧 더 많은 소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전체 경제의 활력이 커져 노동 수요가 증가하고 청년 일자리도 창출된다.
달리 말해 청년 일자리는 기성세대의 임금을 깎고 고통스럽게 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소득을 높여 고통을 덜어주고 소비를 촉진해야 늘어난다는 것이다. 임금피크제를 시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서민과 중산층의 소득이 늘지 않고 가계부채에 따른 부담으로 소비를 줄였기 때문에 청년층 일자리가 늘지 않고 있을 공산이 더 크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과 달리, 경제에서 고통 분담은 때로 더 나은 결과 대신 고통만 늘리기도 한다.
물론 사회현상은 복잡하므로 모든 사회과학 연구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개발도상국 사례에서는 노년층 고용이 젊은 층의 고용을 낮춘다는 결과도 있다. 하지만 선진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대부분 박근혜 정부의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한국 사례를 봐도 임금피크제가 청년 고용을 늘린다는 증거는 없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정규직 신입사원 채용 비율을 비교한 결과,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은 기업의 신입사원 채용률이 오히려 더 높았다.
그럼 도대체 왜 박근혜 정부는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현 정부가 임금피크제를 주장하는 배경에는 2013년 4월 국회를 통과한 정년연장법이 있다. 55~58세로 들쑥날쑥하던 정년이 정년연장법에 의해 2016년부터 순차적으로 60세까지 연장되는 것으로 일원화됐다. 이 법은 박근혜 정부 초기 여론의 지지가 높고 새 정부의 힘이 강할 때 통과됐다. 당시에는 정부가 나서서 정년 연장과 청년 일자리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그사이 정부 정책이 돌변한 것일까. 추측건대 박근혜 정부에서 임금피크제를 정책 과제로 추진하는 이유는 청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업을 도와주기 위해서일 개연성이 높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언급했듯, 정년이 연장되면 대기업 인건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면 은퇴 연령에 가까운 노동자를 계속 고용하는 기업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 필자는 임금피크제에 반대하지 않는다. 고령화 시대에 임금피크제는 장점이 많은 정책이다. 노동자의 생애임금은 일반적으로 뒤집어진 U자형 곡선을 그린다. 보통 40대에 임금이 가장 높다 나이가 들수록 줄어든다. 일정 연령이 지나면 노동생산성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국가에서 연공서열은 임금 결정 시 중요 요인이다. 필자가 재직하는 학교에서는 고용주의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해 임금 삭감을 원천적으로 금하고 있다.
노동생산성은 감소하는데 임금이 높아지면, 고용주는 장·노년층 노동자를 해고할 강력한 유인이 생긴다. 임금피크제는 이러한 유인을 없애고 장·노년층의 지속 고용을 보장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이다. 장·노년층에게 고통을 분담하라고 윽박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노년층이 당할지 모르는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이다.
노년층 낮은 실업률은 자랑 아니다
정부에서 청년 일자리를 늘리고자 한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 경제구조 고도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잘 알려져 있듯 한국 젊은 층의 교육 수준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훨씬 높다. 한국에서는 25~34세 젊은 층의 64%가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 미국은 41%, 프랑스는 43%, 독일은 28%에 불과하다. 청년층의 교육 수준은 높지만 이에 걸맞은 괜찮은 일자리 수는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직업구조는 미국이나 유럽의 경제 선진국과 비교해 아직 덜 고도화됐다.
인구총조사 원자료를 이용해 필자가 추정해보니 2010년 현재 한국에서 화이트칼라의 비중은 전체 취업자의 35% 정도다. 지역사회 조사(American Community Survey) 원자료로 계산해보면 미국은 2011년 현재 58%로 한국보다 23%p 높다. 유럽사회조사를 이용한 연구에 따르면 동구권을 포함한 유럽 25개국의 화이트칼라 비중은 50%로 한국보다 15%p 높다.
직업 구성 면에서 한국 사회는 미국의 1970년대와 다를 바 없다. 청년층이 고통 받는 이유는 전체 일자리 수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미래가 보장되는 괜찮은 일자리 수가 모자라서다. 고강도 개혁으로 경제를 고도화하고 괜찮은 일자리를 늘리는 게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노동개혁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장년층 임금을 삭감해서 그러한 개혁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
우리나라 장년층과 노년층의 실업률은 다른 나라보다 낮고 경제참여율은 높다. 복지가 없고 노인 빈곤이 심해 적은 임금의 허드렛일이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노년층의 높은 경제참여율은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낮은 임금에도 일하고자 하는 광범위한 장·노년층 노동력의 존재는 기업에게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구조개혁에 나서기보다 적은 임금에 의존해 이윤을 창출하려는 동기를 제공한다.
임금피크제가 장·노년층의 임금을 낮추기 위한 정책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은퇴 연령에 가까운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해줌으로써 이들이 질 낮은 일자리로 떨어지는 걸 막고 소득을 보전케 하는 정책이 돼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임금피크제는 회수를 건넌 귤이 된 듯하다.
과연 그렇게 될까. 필자가 과문한 탓일 수도 있지만 임금피크제를 통해 청년층의 고용이 늘었다는 연구 결과는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박 대통령과 정부의 주장이 맞으려면 청년층 고용과 장년층 고용이 대체관계에 있어야 한다. 장년층의 고용이 늘어나면 청년층의 고용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고용 변화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장년층 고용이 늘어날 때 청년층 고용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어나는 경향이 관찰된다. 예컨대 아드리안 칼위즈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교수와 그 동료들의 연구에 따르면 노년층 고용이 1명 늘어날 때 청·장년층 고용은 0.05명 증가한다. 대체관계가 아니라 미약하나마 보완관계라는 것이다.
기성세대 소득 높여야 청년 일자리도 증가
이뿐 아니다. 지난 30년간 미국과 다른 OECD 회원국의 노동시장을 연구한 결과는 장·노년층 고용이 늘어날수록 청년층 소득이 미세하나마 증가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장·노년층이 더 많이 일해 이들의 소득이 높아지면 이는 곧 더 많은 소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전체 경제의 활력이 커져 노동 수요가 증가하고 청년 일자리도 창출된다.
달리 말해 청년 일자리는 기성세대의 임금을 깎고 고통스럽게 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소득을 높여 고통을 덜어주고 소비를 촉진해야 늘어난다는 것이다. 임금피크제를 시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서민과 중산층의 소득이 늘지 않고 가계부채에 따른 부담으로 소비를 줄였기 때문에 청년층 일자리가 늘지 않고 있을 공산이 더 크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과 달리, 경제에서 고통 분담은 때로 더 나은 결과 대신 고통만 늘리기도 한다.
물론 사회현상은 복잡하므로 모든 사회과학 연구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개발도상국 사례에서는 노년층 고용이 젊은 층의 고용을 낮춘다는 결과도 있다. 하지만 선진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대부분 박근혜 정부의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한국 사례를 봐도 임금피크제가 청년 고용을 늘린다는 증거는 없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정규직 신입사원 채용 비율을 비교한 결과,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은 기업의 신입사원 채용률이 오히려 더 높았다.
그럼 도대체 왜 박근혜 정부는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현 정부가 임금피크제를 주장하는 배경에는 2013년 4월 국회를 통과한 정년연장법이 있다. 55~58세로 들쑥날쑥하던 정년이 정년연장법에 의해 2016년부터 순차적으로 60세까지 연장되는 것으로 일원화됐다. 이 법은 박근혜 정부 초기 여론의 지지가 높고 새 정부의 힘이 강할 때 통과됐다. 당시에는 정부가 나서서 정년 연장과 청년 일자리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그사이 정부 정책이 돌변한 것일까. 추측건대 박근혜 정부에서 임금피크제를 정책 과제로 추진하는 이유는 청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업을 도와주기 위해서일 개연성이 높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언급했듯, 정년이 연장되면 대기업 인건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면 은퇴 연령에 가까운 노동자를 계속 고용하는 기업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 필자는 임금피크제에 반대하지 않는다. 고령화 시대에 임금피크제는 장점이 많은 정책이다. 노동자의 생애임금은 일반적으로 뒤집어진 U자형 곡선을 그린다. 보통 40대에 임금이 가장 높다 나이가 들수록 줄어든다. 일정 연령이 지나면 노동생산성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국가에서 연공서열은 임금 결정 시 중요 요인이다. 필자가 재직하는 학교에서는 고용주의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해 임금 삭감을 원천적으로 금하고 있다.
노동생산성은 감소하는데 임금이 높아지면, 고용주는 장·노년층 노동자를 해고할 강력한 유인이 생긴다. 임금피크제는 이러한 유인을 없애고 장·노년층의 지속 고용을 보장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이다. 장·노년층에게 고통을 분담하라고 윽박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노년층이 당할지 모르는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이다.
노년층 낮은 실업률은 자랑 아니다
정부에서 청년 일자리를 늘리고자 한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 경제구조 고도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잘 알려져 있듯 한국 젊은 층의 교육 수준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훨씬 높다. 한국에서는 25~34세 젊은 층의 64%가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 미국은 41%, 프랑스는 43%, 독일은 28%에 불과하다. 청년층의 교육 수준은 높지만 이에 걸맞은 괜찮은 일자리 수는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직업구조는 미국이나 유럽의 경제 선진국과 비교해 아직 덜 고도화됐다.
인구총조사 원자료를 이용해 필자가 추정해보니 2010년 현재 한국에서 화이트칼라의 비중은 전체 취업자의 35% 정도다. 지역사회 조사(American Community Survey) 원자료로 계산해보면 미국은 2011년 현재 58%로 한국보다 23%p 높다. 유럽사회조사를 이용한 연구에 따르면 동구권을 포함한 유럽 25개국의 화이트칼라 비중은 50%로 한국보다 15%p 높다.
직업 구성 면에서 한국 사회는 미국의 1970년대와 다를 바 없다. 청년층이 고통 받는 이유는 전체 일자리 수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미래가 보장되는 괜찮은 일자리 수가 모자라서다. 고강도 개혁으로 경제를 고도화하고 괜찮은 일자리를 늘리는 게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노동개혁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장년층 임금을 삭감해서 그러한 개혁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
우리나라 장년층과 노년층의 실업률은 다른 나라보다 낮고 경제참여율은 높다. 복지가 없고 노인 빈곤이 심해 적은 임금의 허드렛일이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노년층의 높은 경제참여율은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낮은 임금에도 일하고자 하는 광범위한 장·노년층 노동력의 존재는 기업에게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구조개혁에 나서기보다 적은 임금에 의존해 이윤을 창출하려는 동기를 제공한다.
임금피크제가 장·노년층의 임금을 낮추기 위한 정책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은퇴 연령에 가까운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해줌으로써 이들이 질 낮은 일자리로 떨어지는 걸 막고 소득을 보전케 하는 정책이 돼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임금피크제는 회수를 건넌 귤이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