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국 경제는 수출의 마이너스 성장에 대한 우려로 시작됐다. 이후 20년 만에 최악의 가뭄과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공포 확산 등으로 2분기 실질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0.3%를 기록해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9년 1분기 이후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움츠러들었다. 집권 3년 차인 박근혜 정부가 과감한 경기부양 정책을 내놨지만 수출 부진과 가뭄, 메르스라는 삼중고를 피해가지 못했다.
최근 국내 경기 하락은 내수와 외수의 동반 침체에서 비롯된 터라 한국 경제가 저성장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를 피하기 어렵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국내 소비 부진을 견조한 수출 증가세가 상쇄해왔지만, 2015년 들어서는 중국 경제성장률 하락, 유로존 경기 회복 지연, 원화 환율 강세 등으로 수출이 6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고, 이러한 분위기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내수 부양을 통한 성장률 제고가 더욱 중요해진 이유다.
국내 민간소비는 세월호 참사 영향으로 2014년 2분기 -0.4%를 기록한 이후 올해 2분기 -0.3%로 재차 마이너스대로 떨어졌다. 소비 부진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현 상황에서 최근 소비 회복이 경제 성장의 견인차 노릇을 하고 있는 독일 사례에 한층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 원인의 상호작용
독일 경제는 2000년대 들어 경제성장률에서 순(純)수출의 성장 기여도가 높았고 민간소비 기여도는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로 수출 기여도가 급락했고 이후 유로존 재정위기가 지속되면서 수출이 직격탄을 맞았다. 역내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이 곤두박질치면서 역내 교역 비중이 높은 독일 경제의 성장폭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그러나 2010년 이후 독일에서는 민간소비가 경제 성장의 버팀목 노릇을 하고 있고, 2014년 하반기부터는 아예 주된 성장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독일 민간소비 증가율은 2014년 하반기 이후 일본이나 한국 등에 비해 상승폭이 컸고, 가계소비 증가율은 올해 1분기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2.5% 상승해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최근 가계소비 증가폭이 필수재보다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같은 내구재와 레크리에이션 및 문화, 여행 등 기호재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미래 소비와 연관성이 높은 소비자신뢰지수도 유로존 평균을 상회하면서 앞으로도 소비 회복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비결이 뭘까. 먼저 고용개혁(일명 하르츠 개혁)을 통한 임금근로자 확대로 주력 소비계층이 늘어났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그래프1 참조). 독일은 2003년 부터 2005년까지 네 차례에 걸친 고용개혁으로 여성과 고령자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늘어났고, 그 덕분에 최근 실업률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다. 특히 무급가족종사자 등 비임금근로자는 줄어든 반면, 임금근로자를 중심으로 2005년 이후 약 355만 개 일자리가 증가해 소비가능인구가 늘어난 점이 눈에 띈다.
여기에 독일 기업들의 실적 호조가 지속됐고 이것이 근로자의 임금 상승으로 연결됐다. 독일 기업(전체 산업 기준)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유로존 위기가 한창이던 2010~2014년에도 평균 6.7%에 달해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9%에 비해 크게 상승했다(그래프2 참조).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 4.6%(2010~2014년 평균)나 일본 3.0%(2010~2013년 평균)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기업 내 생산성 증가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통해 소비 여력이 확충된 셈이다.
저물가·저금리가 지속되는 환경도 독일 국민의 실질구매력을 높였다. 독일 물가상승률은 에너지 가격 급락 등으로 2014년 이후 0%대에 머물러 있다. 또한 유럽중앙은행(ECB)의 제로 금리 지속 덕분에 1년 미만 예금금리도 0%대로 하락했다. 이 때문에 가계 저축률은 낮아진 반면, 가계의 소비성향을 나타내는 구매의욕지수(Willingness to Buy)는 2014년 1월 50에서 2015년 3월 63.0으로 8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선순환 고리를 회복하라
ECB의 금융완화로 확대된 통화 공급도 부동산가격 상승과 주식시장 활황으로 이어져 이른바 ‘부(富)의 효과’를 낳았다. 유로존 국가는 대부분 주택가격이 하락세를 보였지만 독일의 주택가격지수는 2010년 100에서 2014년 3분기 113.8로 상승했다. 주택 수요 확대로 주택 건축이나 리노베이션 같은 주거 개조 관련 소비 역시 2014년 393억 유로(약 50조3236억 원)로 전년 대비 10% 이상 증가했다. 주식시장은 2011년 말에 비해 2015년 초까지 2배가량 가격이 상승하면서 소비 여력 확대의 기반이 됐다.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가계소비를 위축시키는 대표적인 요인인 가계부채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0년 1분기 63.7%에서 2014년 3분기 54.0%까지 낮아졌다. 소득과 대비해보면 가계총부채 비율은 2010년 87.7%에서 2013년 83.3%로 하락했다. 그 덕에 가계의 금융순자산이 같은 기간 174.0%에서 183.4%로 높아져 가계의 재무건전성이 크게 개선된 것이다.
이렇듯 최근 독일의 소비 호조는 고용개혁과 기업 실적 개선, 저물가·저금리, 자산 효과 같은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 결과다. 이를 한국 현실에 비춰보면 결론 역시 자명해진다. 먼저 정부가 적극적인 고용시장 정책을 통해 일자리 창출력을 높이고, 소비 여력을 갖춘 계층을 늘려나가는 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근본적으로는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노력을 강하게 추진하는 한편, 신규 채용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와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통해 기업과 가계 간 ‘실적 개선 및 소득 증가의 선순환 고리’를 회복해나가야 한다. 특히 과도한 가계부채와 관련해 소득계층별로 특화된 관리 방안 마련이 우리로서는 급선무가 아닐 수 없다.
최근 국내 경기 하락은 내수와 외수의 동반 침체에서 비롯된 터라 한국 경제가 저성장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를 피하기 어렵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국내 소비 부진을 견조한 수출 증가세가 상쇄해왔지만, 2015년 들어서는 중국 경제성장률 하락, 유로존 경기 회복 지연, 원화 환율 강세 등으로 수출이 6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고, 이러한 분위기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내수 부양을 통한 성장률 제고가 더욱 중요해진 이유다.
국내 민간소비는 세월호 참사 영향으로 2014년 2분기 -0.4%를 기록한 이후 올해 2분기 -0.3%로 재차 마이너스대로 떨어졌다. 소비 부진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현 상황에서 최근 소비 회복이 경제 성장의 견인차 노릇을 하고 있는 독일 사례에 한층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 원인의 상호작용
독일 경제는 2000년대 들어 경제성장률에서 순(純)수출의 성장 기여도가 높았고 민간소비 기여도는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로 수출 기여도가 급락했고 이후 유로존 재정위기가 지속되면서 수출이 직격탄을 맞았다. 역내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이 곤두박질치면서 역내 교역 비중이 높은 독일 경제의 성장폭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그러나 2010년 이후 독일에서는 민간소비가 경제 성장의 버팀목 노릇을 하고 있고, 2014년 하반기부터는 아예 주된 성장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독일 민간소비 증가율은 2014년 하반기 이후 일본이나 한국 등에 비해 상승폭이 컸고, 가계소비 증가율은 올해 1분기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2.5% 상승해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최근 가계소비 증가폭이 필수재보다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같은 내구재와 레크리에이션 및 문화, 여행 등 기호재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미래 소비와 연관성이 높은 소비자신뢰지수도 유로존 평균을 상회하면서 앞으로도 소비 회복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비결이 뭘까. 먼저 고용개혁(일명 하르츠 개혁)을 통한 임금근로자 확대로 주력 소비계층이 늘어났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그래프1 참조). 독일은 2003년 부터 2005년까지 네 차례에 걸친 고용개혁으로 여성과 고령자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늘어났고, 그 덕분에 최근 실업률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다. 특히 무급가족종사자 등 비임금근로자는 줄어든 반면, 임금근로자를 중심으로 2005년 이후 약 355만 개 일자리가 증가해 소비가능인구가 늘어난 점이 눈에 띈다.
여기에 독일 기업들의 실적 호조가 지속됐고 이것이 근로자의 임금 상승으로 연결됐다. 독일 기업(전체 산업 기준)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유로존 위기가 한창이던 2010~2014년에도 평균 6.7%에 달해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9%에 비해 크게 상승했다(그래프2 참조).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 4.6%(2010~2014년 평균)나 일본 3.0%(2010~2013년 평균)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기업 내 생산성 증가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통해 소비 여력이 확충된 셈이다.
저물가·저금리가 지속되는 환경도 독일 국민의 실질구매력을 높였다. 독일 물가상승률은 에너지 가격 급락 등으로 2014년 이후 0%대에 머물러 있다. 또한 유럽중앙은행(ECB)의 제로 금리 지속 덕분에 1년 미만 예금금리도 0%대로 하락했다. 이 때문에 가계 저축률은 낮아진 반면, 가계의 소비성향을 나타내는 구매의욕지수(Willingness to Buy)는 2014년 1월 50에서 2015년 3월 63.0으로 8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선순환 고리를 회복하라
ECB의 금융완화로 확대된 통화 공급도 부동산가격 상승과 주식시장 활황으로 이어져 이른바 ‘부(富)의 효과’를 낳았다. 유로존 국가는 대부분 주택가격이 하락세를 보였지만 독일의 주택가격지수는 2010년 100에서 2014년 3분기 113.8로 상승했다. 주택 수요 확대로 주택 건축이나 리노베이션 같은 주거 개조 관련 소비 역시 2014년 393억 유로(약 50조3236억 원)로 전년 대비 10% 이상 증가했다. 주식시장은 2011년 말에 비해 2015년 초까지 2배가량 가격이 상승하면서 소비 여력 확대의 기반이 됐다.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가계소비를 위축시키는 대표적인 요인인 가계부채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0년 1분기 63.7%에서 2014년 3분기 54.0%까지 낮아졌다. 소득과 대비해보면 가계총부채 비율은 2010년 87.7%에서 2013년 83.3%로 하락했다. 그 덕에 가계의 금융순자산이 같은 기간 174.0%에서 183.4%로 높아져 가계의 재무건전성이 크게 개선된 것이다.
이렇듯 최근 독일의 소비 호조는 고용개혁과 기업 실적 개선, 저물가·저금리, 자산 효과 같은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 결과다. 이를 한국 현실에 비춰보면 결론 역시 자명해진다. 먼저 정부가 적극적인 고용시장 정책을 통해 일자리 창출력을 높이고, 소비 여력을 갖춘 계층을 늘려나가는 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근본적으로는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노력을 강하게 추진하는 한편, 신규 채용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와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통해 기업과 가계 간 ‘실적 개선 및 소득 증가의 선순환 고리’를 회복해나가야 한다. 특히 과도한 가계부채와 관련해 소득계층별로 특화된 관리 방안 마련이 우리로서는 급선무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