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백수오’ 파동 이후 한산해진 대형마트 건강기능식품 판매 코너.
질병 발생 위험 감소 vs 질병 예방
우리나라에서 ‘건강기능식품’이란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부터. 사회 전반의 ‘웰빙’ 열풍과 맞물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해당 분야를 관리 감독하기 위한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게 시발점이다. 2004년 시행된 동법 제3조는 건강기능식품을 ‘인체에 유용한 기능성을 가진 원료나 성분을 사용하여 제조한 식품’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형태가 주로 정제나 캡슐 등이라 외관상 약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식약처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건강기능식품은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의약품이 아니라 생리활성기능 활성화를 통해서 건강을 유지하고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한다’고 밝히는 등 건강기능식품과 의약품을 명시적으로 구분하고, 건강기능식품을 의약품으로 오해하게 만들 수 있는 기능성의 표시와 광고도 금지한다. 문제는 ‘가짜 백수오’ 사태에서 알 수 있듯 상당수 소비자가 건강기능식품의 ‘기능성’을 믿고 식약처의 인증을 ‘약효 확인’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그렇지 않다’고 강조하면서도 사실상 이러한 오해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가정의학과 박사(국제암대학원대학교 암관리정책학과 교수)에 따르면 식약처는 건강기능식품을 기능성 정도에 따라 다시 4개 등급으로 분류한다. 상위부터 △질병 발생 위험 감소 기능 △생리활성기능 1등급(○○에 도움을 줌) △생리활성기능 2등급(○○에 도움을 줄 수 있음) △생리활성기능 3등급(○○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관련 인체적용시험이 미흡함) 순이다. 구체적인 생리활성기능 내용은 △혈당조절 △혈압조절 △기억력 개선 △치아건강 등 30가지로 분류했다. 예를 들어 특정 건강기능식품이 ‘혈당조절’ 기능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기능성이 1등급이면 ‘혈당조절에 도움’을 주는 제품이고, 2등급이면 ‘혈당조절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제품’이며, 3등급이면 ‘혈당조절에 도움을 줄 수 있으나 관련 인체적용시험이 미흡한 제품’으로 분류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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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연구 결과 미반영
그러나 소비자가 이 내용을 세세히 구분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명승권 박사는 “제일 위 등급 ‘질병 발생 위험 감소 기능’은 결국 ‘질병 예방’과 똑같은 말 아니냐”며 “약도 아닌 ‘식품’에 사실상 질병 예방 효과가 있다고 인증해놓고, 다른 한편으로 ‘약이 아니다’라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다. 현행 건강기능식품의 정의, 기능성 등급 기준이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생리활성기능 2등급 이하 건강기능식품의 실용성을 문제 삼는 전문가도 있다. 조정진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혈당조절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꼬집었다. 명승권 박사도 “식약처의 인증 사례를 살펴보면, 생리활성기능 2등급은 실험연구나 동물실험에서 생리학적 가능성이 발견되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연구가 한 개라도 있으면 주는 등급이다. 3등급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아예 없어도 가능하다”며 “이런 제품을 왜 건강기능식품으로 인정하고 판매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눈여겨볼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건강기능식품 대부분이 ‘생리활성화기능 2등급’ 이하에 해당한다는 점. 식약처가 ‘질병 발생 위험 감소 기능’을 인정한 성분은 칼슘, 비타민D(골다공증), 자일리톨(충치) 등 3종에 불과하며 ‘생리활성기능 1등급’에 속하는 물질도 루테인, 지아잔틴, 가르시니아캄보지아, 폴리코사놀 등이 전부다. 이번에 문제가 된 백수오를 비롯해 홍삼, 오메가3 지방산, 유산균 등 널리 유통되는 거의 모든 건강기능식품 성분이 2등급과 3등급에 속한다.
식약처가 ‘질병 발생 위험 감소 기능성’을 인정한 성분에 대해서도 논란이 없는 건 아니다. 조정진 교수는 2013년 미국 질병예방서비스특별위원회(USPSTF)가 발표한 칼슘과 비타민D에 대한 권고 내용을 소개하며 “USPSTF는 골다공증이나 비타민D 결핍이 없고 일상생활이 가능한 성인 남성과 폐경 전 여성의 경우 골절 예방을 목적으로 칼슘과 비타민D 보충요법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하루 1000mg 이하 칼슘, 400IU 이하 비타민D 보충제도 복용하지 말 것을 권했다”고 말했다.
2010년 영국 의학저널(BMJ)에는 칼슘보충제 복용 시 심근경색증 위험이 27%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실렸다. 이후 대한가정의학회는 골다공증이 없는 폐경 후 여성은 저용량 칼슘·비타민D 보충제 복용을 삼가라는 권고안을 낸 상태다. 그러나 식약처는 여전히 칼슘과 비타민D를 기능성이 가장 우수한 등급에 두고, 복용 시 주의사항도 안내하지 않고 있다.
조정진 교수는 “이외에도 비타민A, C, E 등 여러 물질을 보충제를 통해 복용하는 것에 대해 의학적 논란이 있으며, 최근 여러 연구는 이런 성분을 음식이 아닌 약재를 통해 과다 복용할 경우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식약처가 건강기능식품을 검증할 때 이런 최신 연구 결과를 반영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5월 26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관계자가 백수오 원료 사용 제품에 대한 수거검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현재 시중에 유통 중인 백수오 제품 중 이엽우피소가 검출되지 않은 제품은 5%에 불과하다(왼쪽). 서울 한 전통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기능성 약재들.
그러나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2014년 식품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는 1조7920억 원(수입액 3854억 원 포함)으로, 2009년 1조1600억 원에서 50% 이상 커졌다. 업계에서는 통계에 잡히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시장 규모가 4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국민 상당수가 일상적으로 건강기능식품을 섭취하는 분위기다. 직장인 김형선 씨는 “지난 설에 고향에 내려가면서 무릎이 안 좋은 할머니에게 글루코사민, 기력이 떨어진 아버지에게는 홍삼정, 갱년기 어머니에게는 백수오, 눈을 많이 쓰는 동생한테는 루테인을 선물했다”며 “최근에는 건강기능식품이 가장 환영받는 선물 아니냐”고 했다.
이 배경에는 정부의 관련 산업 육성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관련 법령을 개정해 올해 3월부터 편의점과 자동판매기에서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할 수 있게 하고, 건강기능식품 제조업 허가도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원칙적으로 영업할 수 있게 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는 등 규제를 계속 완화하는 추세다.
건강기능식품 시장 확대 요인으로 TV 건강프로그램과 홈쇼핑 채널을 꼽는 이도 많다. 김철환 새안산상록의원 원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은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은 대부분 자신의 건강에 대해 불안과 공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병원에 가서 진단받고 약을 처방받는 데는 심리적 거부감이 있다. 건강기능식품이 이 틈새를 파고들어 ‘식품’이면서 ‘약효’가 있다는 식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라며 “특히 TV 화면에 의사들이 등장해 ‘몸에 꼭 필요하고 건강에 좋은 걸 죄다 모아놓았다는데 먹기까지 편하다’고 하니 덥석 믿고 싶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러한 대중의 욕망이 이성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이덕환 교수는 “세상에 독성 없는 약은 없다. 어떤 물질이 부작용보다 효능이 더 뛰어난 게 확인됐을 때, 전문의 처방과 감독 하에 약물로 쓰도록 허용하는 게 현대의학의 기본”이라며 “효능이 뛰어나다는 것은 부작용 위험도 그만큼 높다는 것을 뜻하고, 더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함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이기호 차움 푸드테라피센터 소장(CHA의과대학 교수)도 “고혈압 환자가 ‘약 처방을 받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는데, 일단 홍삼 같은 걸 먹어보다 정 안 되면 약을 먹는 게 어떨까요’라고 묻는 건 세계적으로 매우 희귀한, 한국인만의 특성”이라며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혈압이 높으면 약물로 조절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밝혔다.
일상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데는 건강기능식품을 챙겨먹는 것보다 골고루 제때 먹는 습관을 들이는 게 훨씬 바람직하다는 것 역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조정진 교수는 “건강기능식품의 효능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란이 있지만 매일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5접시씩 먹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렇게 확실한 길을 두고 다른 쪽을 기웃댈 필요가 없지 않나”라고 했다. 김철환 원장도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게 건강에 가장 좋은 실천행위”라며 “특히 백수오 사태에서 알 수 있듯, 증상이 나타났는데도 건강기능식품에 의지해 치료 시기를 놓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보조적으로 건강기능식품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기호 교수는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특정 영양소가 부족해지거나 특정 영양소를 특별히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상황이 존재한다”며 “개인의 건강 상태를 관찰해 약 처방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경미한 증상이 있는 경우, 또 성장기 어린이나 임신 중 혹은 출산 후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는 건강기능식품을 활용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이런 검토 없이 아무 건강기능식품이나 먹을 경우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특히 생리활성물질을 농축 가공한 건강기능식품은 과잉섭취 시 부작용이 더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 식약처 산하 식품안전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건강기능식품 부작용 추정 사례 신고건수는 1733건으로 2013년(136건)에 비해 10배 이상 급증했다. 제품 유형별로는 프로바이오틱스 등 유산균 제품이 355건으로 가장 많았고 백수오 등 복합추출물 제품이 301건으로 뒤를 이었다. 그러나 건강기능식품 특성상 제품 복용과 부작용 증상 간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게 쉽지 않아 피해 보상이 여의치 않다. 이에 대해 이기호 교수는 “누가 먹어도 상관없는 음식, 누구에게나 이로운 약, 누가 먹어도 효과적인 건강기능식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며 “피해를 막기 위한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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