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내 주차장은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니다.
행정소송을 낸 이 남자의 주장은 “술을 마시지 않은 여자친구가 대부분 운전했고, 자신은 아파트 주차장 안에서 3m 정도 후진하면서 잠시 운전했을 뿐”이라는 것. 정리하면 아파트 단지 내 주차장은 도로교통법에 규정된 ‘도로’가 아니므로 면허취소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몇 번의 심리 끝에 이 남자가 아파트 정문 앞 도로를 10m가량 운전한 것으로 판단해 경찰의 면허취소 처분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도로교통법 등 현행법에서는 법상 규정된 ‘도로’가 아닌 곳에서의 음주운전에 대해 형사처벌은 가능하지만, 행정처분 대상은 되지 않는다. 얼마 전 대검찰청 소속 한 검사가 술을 마시고 아파트 주차장 안에서 차를 옮기려다 주차된 차와 추돌사고를 냈다는 뉴스를 본 적 있다. 당시 경찰이 해당 검사에 대해 “음주운전으로 형사처벌은 하겠지만 면허정지 처분은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힌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도로교통법을 보면 ‘음주운전‘이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 등을 운전하는 것‘, 또한 ‘운전’이란 ‘도로에서 차를 그 본래의 사용 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으로 정의돼 있다. 한편 ‘도로’란 ‘도로법, 유료도로법, 농어촌도로정비법에 의한 도로 및 그 밖에 현실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 또는 차마(車馬)의 통행을 위하여 공개된 장소로서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장소’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공개되지 않고 특정 사람들을 위해 특정한 목적으로 관리되는 아파트나 상가 주차장, 회사 또는 대학 구내 도로, 운동장 등은 도로가 아니며, 이러한 곳에서의 자동차 작동 행위는 도로교통법상 ‘운전’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곳에서 술에 취해 차를 운전하더라도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런 규정 때문에 2011년 1월까지 ‘도로 외에서의 운전행위’에 대해 면허취소 처분은 물론, 형사처벌도 받지 않은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아파트 주차장 등에서 음주운전 사고가 빈발하고 이로 인한 폐해가 발생하자 2011년 1월 24일부터 음주운전이나 음주 측정 거부 등의 행위에 대해 ‘도로가 아닌 곳’에서의 행위도 형사처벌받도록 도로교통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면허정지나 취소 같은 행정처분에 대해서는 기존 규정이 유지돼 여전히 법상 ‘도로’ 위에서의 행위만 그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도로’와 ‘도로가 아닌 곳’의 구분은 무엇일까. 판례에선 일반인에게 공개돼 있는지 여부, 특정 관리 주체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지 여부 등을 기준으로 제시한다. 차단기 등이 설치된 아파트나 상가 주차장,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회사나 학교 안 공간 등은 도로교통법상 ‘도로’라 할 수 없다.
음주운전이 위법한 행위임은 물론, 자신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위험한 행위임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형사처벌만 받고 면허취소 처분 대상이 아니라고 아파트 주차장 내에서 마구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이 더는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