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과 어울리는 리슬링 와인.
며칠 전 한 후배가 전화를 걸어 대뜸 이런 질문을 던졌다. 4월 14일 블랙데이에 싱글들이 모여 자장면을 먹기로 했는데 와인을 함께한다면 어떤 종류가 좋을지 알려달라는 얘기였다. ‘참, 별별 데이가 다 있구나’ 싶어 웃음부터 피식 나왔지만 질문 자체는 신선했다. 자장면과 와인, 언뜻 생각하기엔 서로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데다 실제 자장면을 먹으며 와인을 찾는 이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인만 잘 고르면 자장면과 와인의 조합도 환상의 궁합을 자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장면과 잘 어울리는 와인은 어떤 종류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자장면을 먹을 때면 항상 같이 먹는 음식과 관련이 깊다. 바로 단무지다. 자장면의 느끼함을 없애는 데는 새콤달콤한 단무지가 최고다. 와인도 마찬가지. 산도가 높고 단맛이 나는 종류를 선택하면 자장면과 의외로 잘 어울린다. 독일산 화이트 와인인 리슬링(Riesling)이 딱 그런 종류다.
와인을 마실 땐 왠지 비싼 서양요리를 먹어줘야 할 것 같지만 배달음식도 얼마든지 잘 어울린다. 배달음식 중에도 다채로운 메뉴를 자랑하는 중국요리는 와인 안주로도 그만이다. 무엇보다 입이 얼얼할 만큼 맵지 않다는 점이 와인과 즐기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다. 그 대신 단맛과 기름기가 많기 때문에 와인을 선택할 때는 조리 방식에 따른 요리의 무게감과 소스가 가진 맛, 향을 감안하는 것이 좋다.
리슬링 와인은 탕수육에도 잘 맞는다. 소스의 달콤함이 리슬링의 꽃향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메를로(Merlot)나 말벡(Malbec)처럼 묵직한 레드 와인을 좋아한다면 탕수육에 소스를 붓지 않고 살짝 찍어 먹거나 소스 없이 먹는 것이 와인과 더 잘 어울린다. 메를로와 말벡은 동파육이나 오향장육에 곁들여도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와인의 타닌이 육질을 부드럽게 하고 오크향이 간장향과 어우러져 환상의 궁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피노 누아르(Pinot Noir)나 가메(Gamay)처럼 가벼운 레드 와인은 타닌이 적기 때문에 고기를 다져서 만든 난젠완쯔나 육질이 부드러운 닭요리와 잘 어울린다. 깐풍기나 라조기 같은 튀긴 닭요리에 곁들이면 와인의 신맛이 튀긴 닭의 기름진 맛을 잡아주기 때문에 더욱 깔끔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산뜻한 과일향은 깐풍기의 매콤하고 달콤한 맛과 조화를 이룬다.
고추잡채와 어울리는 뉴질랜드산 소비뇽 블랑 와인(왼쪽), 냉채와 어울리는 샤블리 와인.
냉채처럼 차고 가벼운 요리에는 화이트 와인도 샤블리(Chablis)나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처럼 가벼운 것을 골라 차게 마시는 것이 좋다. 샤블리와 피노 그리지오는 양장피와도 잘 어울리지만 겨자의 알싸함을 씻어내고 싶다면 스파클링 와인이 더 나은 선택이다. 스파클링 와인은 사천요리의 매콤함을 다스리는 데도 그만이다. 하지만 매운맛을 즐긴다면 레드 와인 중에서도 매운 향이 특징인 카르미네르(Carmenere)를 곁들여보자. 매운 향끼리 어울려 재미있는 조합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다채로운 요리를 제쳐두고 싱글들끼리 블랙데이에 자장면만 먹는다면 너무 처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다채로운 중국요리와 함께하는 와인 파티를 열면 어떨까. 블렉데이가 싱글들에게 소박하면서도 즐거운 축제의 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