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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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리를 걷고 싶다

카유보트의 ‘비오는 날, 파리의 거리’

  • 황규성 미술사가 samsungmuseum@hanmail.net

    입력2015-03-30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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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거리를 걷고 싶다

    ‘비오는 날, 파리의 거리(Paris Street, Rainy Day)’, 귀스타브 카유보트, 212.1X276.2cm, 1877년,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산책자들에게는 자기 나름의 사랑스러운 거리가 하나쯤 있을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예쁜 거리와 고풍스러운 광장, 데이트 필수 코스를 비롯해 걷고 싶은 거리가 꽤 많습니다. 따뜻한 봄날, 낭만적이고 세련된 근대 시기의 도시를 산책해볼까요.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1848~1894)의 ‘비오는 날, 파리의 거리’는 제목과 같이 19세기 비오는 날 프랑스 파리 시내의 거리 풍경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화면에는 희뿌연 하늘과 우산을 쓴 사람들, 마차, 벽돌 건물, 가로등, 비 내리는 거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비를 맞아 물기를 머금은 보도블록, 우산을 함께 쓴 남녀 커플의 자연스러운 표정 등을 거의 실물 크기로 표현했습니다.

    그림 정중앙의 초록색 가로등과 위쪽의 배경 건물을 중심으로 화면이 정확히 4개로 분할된 구도가 독특합니다. 상단에는 네 갈림길이 위쪽을 향해 방사형으로 뻗어 있고 하단으로 큰 길이 펼쳐집니다. 상단 네 갈림길은 왼쪽부터 모스크바 거리, 클라페롱 거리, 투린 거리입니다. 그런데 네 번째 길은 시작 부분만 보일 뿐 오른쪽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이 길들 사이로 6층 정도 높이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마치 영화 한 장면을 정지시킨 듯 사실적인 디테일이 살아 있는 이 그림의 배경은 프랑스 파리 북쪽에 있는 생라자르 역 근처 더블린 광장입니다. 이곳은 반복된 혁명과 혼란으로 무너진 채 방치됐다 이후 도시계획으로 새롭게 탄생한 파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면 중앙의 가로등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 풍경을 살펴보지요. 오른쪽에는 우산을 함께 쓰고 팔짱을 낀 채 나란히 걷는 신사와 젊은 부인이 있습니다. 이들은 시선이 화면 왼쪽 어딘가를 향해 있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린 채 걷고 있습니다. 이들은 옷을 잘 갖춰 입어 중산층처럼 보입니다. 남자는 검은색 높은 모자를 쓰고 나비넥타이에 어두운 색 긴 코트를 입었으며 쌀쌀한 날씨 탓에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습니다. 함께 걷고 있는 여인 또한 날씨에 어울리는 어두운 색의 두껍고 긴 드레스 위에 코트를 걸쳤으며, 저녁 약속이 있는지 곱게 화장하고 귀걸이로 치장도 했습니다. 화면 가장 오른쪽에는 이 커플과 마주보며, 우리 쪽에서는 등을 보이며 걸어가는 신사가 있습니다. 이 남자는 왼손으로 우산을 들고 있고 두 사람을 피해 보도블록의 좁은 길을 걷는 탓에 그림에서는 몸이 반만 보입니다.



    광장에서 각자 바쁜 걸음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한 이 그림은 우산을 함께 쓴 커플과 걸어오는 남자, 뒤편의 사람들 간 거리감이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원근법 개념을 배울 때 등장하는 대표적 작품이기도 합니다.

    파리의 비오는 거리를 감상하며 황사로 뿌연 서울 하늘을 적셔줄 촉촉한 봄비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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