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파리의 거리(Paris Street, Rainy Day)’, 귀스타브 카유보트, 212.1X276.2cm, 1877년,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화면에는 희뿌연 하늘과 우산을 쓴 사람들, 마차, 벽돌 건물, 가로등, 비 내리는 거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비를 맞아 물기를 머금은 보도블록, 우산을 함께 쓴 남녀 커플의 자연스러운 표정 등을 거의 실물 크기로 표현했습니다.
그림 정중앙의 초록색 가로등과 위쪽의 배경 건물을 중심으로 화면이 정확히 4개로 분할된 구도가 독특합니다. 상단에는 네 갈림길이 위쪽을 향해 방사형으로 뻗어 있고 하단으로 큰 길이 펼쳐집니다. 상단 네 갈림길은 왼쪽부터 모스크바 거리, 클라페롱 거리, 투린 거리입니다. 그런데 네 번째 길은 시작 부분만 보일 뿐 오른쪽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이 길들 사이로 6층 정도 높이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마치 영화 한 장면을 정지시킨 듯 사실적인 디테일이 살아 있는 이 그림의 배경은 프랑스 파리 북쪽에 있는 생라자르 역 근처 더블린 광장입니다. 이곳은 반복된 혁명과 혼란으로 무너진 채 방치됐다 이후 도시계획으로 새롭게 탄생한 파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면 중앙의 가로등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 풍경을 살펴보지요. 오른쪽에는 우산을 함께 쓰고 팔짱을 낀 채 나란히 걷는 신사와 젊은 부인이 있습니다. 이들은 시선이 화면 왼쪽 어딘가를 향해 있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린 채 걷고 있습니다. 이들은 옷을 잘 갖춰 입어 중산층처럼 보입니다. 남자는 검은색 높은 모자를 쓰고 나비넥타이에 어두운 색 긴 코트를 입었으며 쌀쌀한 날씨 탓에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습니다. 함께 걷고 있는 여인 또한 날씨에 어울리는 어두운 색의 두껍고 긴 드레스 위에 코트를 걸쳤으며, 저녁 약속이 있는지 곱게 화장하고 귀걸이로 치장도 했습니다. 화면 가장 오른쪽에는 이 커플과 마주보며, 우리 쪽에서는 등을 보이며 걸어가는 신사가 있습니다. 이 남자는 왼손으로 우산을 들고 있고 두 사람을 피해 보도블록의 좁은 길을 걷는 탓에 그림에서는 몸이 반만 보입니다.
광장에서 각자 바쁜 걸음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한 이 그림은 우산을 함께 쓴 커플과 걸어오는 남자, 뒤편의 사람들 간 거리감이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원근법 개념을 배울 때 등장하는 대표적 작품이기도 합니다.
파리의 비오는 거리를 감상하며 황사로 뿌연 서울 하늘을 적셔줄 촉촉한 봄비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