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어지는 저유가 기조로 원유 수입국 다수는 실질소득이 확대되는 효과를 누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저유가로 실질소득 확대, 소비 증대, 원가 절감을 통한 생산과 투자 확대 같은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는 전망이 곳곳에서 쏟아진다.
그러나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산유국 경제에 이미 적신호가 켜지고 있기 때문. 러시아는 유가 하락으로 재정 수입이 감소하는 가운데 서방의 경제제재로 외화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위기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미 재정 적자 상태인 나이지리아와 이란은 경기 위축을 방어할 여력이 부족하다. 비교적 재정 상황이 여유로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마저 투자 부진으로 성장률 하락이 예상된다. 그간 이들 국가에 대한 수출로 적잖은 수익을 누렸던 우리에게도 만만찮은 후폭풍이 우려되는 이유다.
사라진 ‘제2의 중동 특수’
그간 고유가 시기에 산유국은 눈부신 성장을 이룬 바 있다. 2000년대 초반 배럴당 20달러 수준이던 국제유가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산유국 경제 규모 역시 빠르게 확대됐다. 러시아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등 주요 산유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2000~2013년 평균 5배, 1인당 소득 역시 4배 이상 증가했다. 주요 산유국이 선진국 문턱까지 도달한 시기다.
유가 상승은 산유국 경제에 크게 두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첫 번째는 소비 성향 확대다. 과거에는 유가 상승으로 발생한 오일머니가 글로벌 석유회사의 지분 투자로 유입되거나 소수 상류층의 소비에 지출되는 데 머물렀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고유가 시기에는 오일머니가 각종 지출 보조금 형태로 중산층 소비에 흡수되면서 평균 소비 성향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두 번째 변화는 이를 통해 중산층의 힘이 확대되면서 장기 성장 기반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오일머니가 집중적으로 투자됐다는 점이다. 걸프 연안 6개국은 2005년 이후 고속도로 등 대대적인 인프라 확충을 위해 매년 1000억 달러 이상 투자를 지속한 바 있다.
이러한 산유국 성장방식의 변화는 우리 경제에 기회로 작용했다. 이들 나라의 경제 규모가 확대됐을 뿐 아니라 수요 구조 자체가 우리의 수출에 유리한 내구재와 자본재 중심으로 변화한 것이다. 원유생산 외에는 공업화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산유국 경제에서 수요 확대는 수입품으로 해결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주요 산유국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수출은 6배 가까이 확대됐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의 내구재 수요가 정체되는 상황에서도 산유국의 수요는 오히려 빠르게 증가해 이들 국가는 한국의 수출에서 중요한 신흥 시장으로 부상하기에 이른다.
이 시기 산유국의 건설 수주는 24배가량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70년대 중동 건설 붐 이후 침체에 빠졌던 국내 건설사들이 2000년대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제2의 중동 특수’를 기대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특히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진행된 원자력발전소와 대형 플랜트 수주 확대는 산유국 건설 투자 확대를 이끈 견인차였다.
하지만 최근 저유가 기조는 이러한 산유국 호재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요 산유국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수출은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그래프 참조). 특히 러시아, 리비아, 이라크 등 재정 상황이 어려운 국가에 대한 수출이 크게 감소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처럼 재정적으로 여유 있는 국가는 아직 수입 수요가 지속되고 있지만, 저유가가 장기화할 경우 이들 국가에서도 수요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답은 고부가가치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고유가 시기 산유국의 구매력 확대 혜택을 톡톡히 본 자동차와 무선통신기기 등 내구재 수출이 크게 감소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특히 자동차 수출은 산유국 비중이 20%로 높아 타격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우리 자동차 수출의 2위, 3위를 차지하고 있어 미국 다음으로 큰 시장이다. 이전 유가 하락 시기에도 산유국으로의 자동차 수출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18.7%, 2000년대 초 유가 하락 시기 13.1%,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 48.5% 감소한 바 있다.
무선통신기기는 지난해 이미 산유국에 대한 수출이 30.2% 감소해 수출 하락폭이 가장 큰 품목이다. 다른 내구재에 비해 무선통신기기는 경기 변동에 민감한 데다 미국이나 중국의 다양한 업체들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업 환경이 점차 악화하는 상황이라 전망이 한층 어둡다.
지난해 이미 7% 감소한 산유국으로의 선박 수출 역시 올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산유국의 유조선 발주는 유가 영향을 크게 받는 경향이 있어, 과거 저유가 시기에 주요 산유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선박 수출이 70% 이상 급감한 바 있다. 지난해 우리 업체들의 수주가 35.6%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올해와 내년의 수출 감소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건설 투자도 타격이 불가피한 대표적인 분야다. 정부 재정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인프라와 플랜트 등 대형 프로젝트 발주가 줄줄이 연기되고 있다. 이미 중동 지역에서는 건설업체들의 경쟁 심화가 무리한 저가 수주로 이어지면서 건설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된 상태다. 해외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공사 중 손실 금액도 지난해 40억 달러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유국의 발주 둔화가 이어진다면 우리 건설사들의 부실로 연결될 수 있고,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가 함께 커질 개연성도 간과하기 어렵다. 어느 모로 보나 우울한 시나리오다.
문제는 전 세계적인 수요 부진과 원유 공급 확대가 맞물리면서 저유가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그에 따라 앞으로도 신흥 시장으로서 산유국의 구실은 위축될 개연성이 크다. 저유가로 원유 수입국의 수요가 확대될 경우 우리 수출도 전반적으로 혜택을 입겠지만, 산유국 수요 둔화가 이러한 긍정적인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할 것이라는 뜻이다.
뒤집어 보면 이는 우리 수출 기업들이 내구재 부문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산유국 수요를 공략할 수 있는 제품들로 저유가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해외 건설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간 단순 시공에 매출이 집중돼 설계 경쟁력은 하위권에 머무르던 한국 건설회사들의 비즈니스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언제나 그렇듯 답은 고부가가치 경쟁력 향상이고, 이를 통한 새로운 시장의 개척이다.
그러나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산유국 경제에 이미 적신호가 켜지고 있기 때문. 러시아는 유가 하락으로 재정 수입이 감소하는 가운데 서방의 경제제재로 외화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위기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미 재정 적자 상태인 나이지리아와 이란은 경기 위축을 방어할 여력이 부족하다. 비교적 재정 상황이 여유로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마저 투자 부진으로 성장률 하락이 예상된다. 그간 이들 국가에 대한 수출로 적잖은 수익을 누렸던 우리에게도 만만찮은 후폭풍이 우려되는 이유다.
사라진 ‘제2의 중동 특수’
그간 고유가 시기에 산유국은 눈부신 성장을 이룬 바 있다. 2000년대 초반 배럴당 20달러 수준이던 국제유가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산유국 경제 규모 역시 빠르게 확대됐다. 러시아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등 주요 산유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2000~2013년 평균 5배, 1인당 소득 역시 4배 이상 증가했다. 주요 산유국이 선진국 문턱까지 도달한 시기다.
유가 상승은 산유국 경제에 크게 두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첫 번째는 소비 성향 확대다. 과거에는 유가 상승으로 발생한 오일머니가 글로벌 석유회사의 지분 투자로 유입되거나 소수 상류층의 소비에 지출되는 데 머물렀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고유가 시기에는 오일머니가 각종 지출 보조금 형태로 중산층 소비에 흡수되면서 평균 소비 성향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두 번째 변화는 이를 통해 중산층의 힘이 확대되면서 장기 성장 기반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오일머니가 집중적으로 투자됐다는 점이다. 걸프 연안 6개국은 2005년 이후 고속도로 등 대대적인 인프라 확충을 위해 매년 1000억 달러 이상 투자를 지속한 바 있다.
이러한 산유국 성장방식의 변화는 우리 경제에 기회로 작용했다. 이들 나라의 경제 규모가 확대됐을 뿐 아니라 수요 구조 자체가 우리의 수출에 유리한 내구재와 자본재 중심으로 변화한 것이다. 원유생산 외에는 공업화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산유국 경제에서 수요 확대는 수입품으로 해결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주요 산유국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수출은 6배 가까이 확대됐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의 내구재 수요가 정체되는 상황에서도 산유국의 수요는 오히려 빠르게 증가해 이들 국가는 한국의 수출에서 중요한 신흥 시장으로 부상하기에 이른다.
이 시기 산유국의 건설 수주는 24배가량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70년대 중동 건설 붐 이후 침체에 빠졌던 국내 건설사들이 2000년대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제2의 중동 특수’를 기대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특히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진행된 원자력발전소와 대형 플랜트 수주 확대는 산유국 건설 투자 확대를 이끈 견인차였다.
하지만 최근 저유가 기조는 이러한 산유국 호재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요 산유국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수출은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그래프 참조). 특히 러시아, 리비아, 이라크 등 재정 상황이 어려운 국가에 대한 수출이 크게 감소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처럼 재정적으로 여유 있는 국가는 아직 수입 수요가 지속되고 있지만, 저유가가 장기화할 경우 이들 국가에서도 수요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답은 고부가가치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고유가 시기 산유국의 구매력 확대 혜택을 톡톡히 본 자동차와 무선통신기기 등 내구재 수출이 크게 감소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특히 자동차 수출은 산유국 비중이 20%로 높아 타격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우리 자동차 수출의 2위, 3위를 차지하고 있어 미국 다음으로 큰 시장이다. 이전 유가 하락 시기에도 산유국으로의 자동차 수출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18.7%, 2000년대 초 유가 하락 시기 13.1%,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 48.5% 감소한 바 있다.
무선통신기기는 지난해 이미 산유국에 대한 수출이 30.2% 감소해 수출 하락폭이 가장 큰 품목이다. 다른 내구재에 비해 무선통신기기는 경기 변동에 민감한 데다 미국이나 중국의 다양한 업체들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업 환경이 점차 악화하는 상황이라 전망이 한층 어둡다.
지난해 이미 7% 감소한 산유국으로의 선박 수출 역시 올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산유국의 유조선 발주는 유가 영향을 크게 받는 경향이 있어, 과거 저유가 시기에 주요 산유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선박 수출이 70% 이상 급감한 바 있다. 지난해 우리 업체들의 수주가 35.6%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올해와 내년의 수출 감소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건설 투자도 타격이 불가피한 대표적인 분야다. 정부 재정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인프라와 플랜트 등 대형 프로젝트 발주가 줄줄이 연기되고 있다. 이미 중동 지역에서는 건설업체들의 경쟁 심화가 무리한 저가 수주로 이어지면서 건설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된 상태다. 해외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공사 중 손실 금액도 지난해 40억 달러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유국의 발주 둔화가 이어진다면 우리 건설사들의 부실로 연결될 수 있고,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가 함께 커질 개연성도 간과하기 어렵다. 어느 모로 보나 우울한 시나리오다.
문제는 전 세계적인 수요 부진과 원유 공급 확대가 맞물리면서 저유가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그에 따라 앞으로도 신흥 시장으로서 산유국의 구실은 위축될 개연성이 크다. 저유가로 원유 수입국의 수요가 확대될 경우 우리 수출도 전반적으로 혜택을 입겠지만, 산유국 수요 둔화가 이러한 긍정적인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할 것이라는 뜻이다.
뒤집어 보면 이는 우리 수출 기업들이 내구재 부문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산유국 수요를 공략할 수 있는 제품들로 저유가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해외 건설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간 단순 시공에 매출이 집중돼 설계 경쟁력은 하위권에 머무르던 한국 건설회사들의 비즈니스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언제나 그렇듯 답은 고부가가치 경쟁력 향상이고, 이를 통한 새로운 시장의 개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