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영어 스트레스’는 국제화와 함께 더욱더 심화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인한 유족급여 지급 등에 관해선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규정돼 있고, 공무원의 경우는 공무원연금법에서 정하고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령에서 근로자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해선 근로자가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한 경우로써,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이나 그 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살한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시행령 제36조).
대법원 특별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1월 15일 건설회사 부장으로 근무하다 자살한 A씨의 유족(부인)이 “고인(A씨)의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소송 상고심(2013두23461)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건설회사 토목설계팀에서 근무하던 A씨는 2008년 쿠웨이트 공사현장에 팀장으로 파견됐다. 현지에서 영어 사용에 부담을 느낀 A씨는 회사에 해외 근무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 근무지를 바꿨다. 결국 아내에게 “영어도 못 해 해외 파견도 못 나갔는데 부하직원 앞에 어떻게 서야 할지 모르겠다. 답답해 죽고 싶다”는 말을 남긴 다음 날 회사 건물 10층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A씨 유족(부인)은 2010년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지급을 청구했다. 공단 측은 “A씨 자살은 소심한 성격과 관계 있다”며 지급을 거부했고, A씨 유족은 2011년 6월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2013년 3월 21일 패소했고, 서울고등법원에 낸 항소도 기각됐다. A씨 유족은 마지막으로 대법원을 찾았다.
대법원 재판부는 “A씨는 쿠웨이트 현장 시공팀장으로 파견된 뒤 부족한 영어 실력 탓에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렸다”며 “쿠웨이트 파견 근무를 결국 포기했지만 이후 불안과 두려움이 생겨 우울증을 앓고 자살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A씨가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자살했다고 보기 힘들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을 파기 환송한 것이다.
또한 경남 산청의 한 초등학교 시설관리 담당자였던 B씨는 2010년 7월 학교 물탱크를 점검하다 뜨거운 물이 얼굴에 튀어 얼굴과 각막에 화상을 입고 각막이식수술을 받은 뒤 두 달 만에 자살했다. 원심은 “B씨가 치료를 포기하거나 자신의 상황을 비관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취지로 공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 특별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1월 29일 원심을 파기하고 B씨에 대해서 공무상 재해를 인정했으며 서울고등법원으로 사건을 환송했다(2013두16760).
이런 대법원 판례들은 하급심을 파기하면서까지 근로자나 공무원의 업무상 재해의 인정 폭을 넓혔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즉, 사회 평균인의 처지에서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그로 인한 우울증)의 인정 범위가 확대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판례로 각급 법원에서 근로자의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경우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으려면 업무상의 사유 때문임을 증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