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2·8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들이 1월 15일 광주에서 열리는 첫 TV 토론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2월 8일 차기 당 지도부를 뽑는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전대)의 초반 판세를 한 당직자는 이렇게 요약했다. 당대표 후보는 1월 7일 컷오프(예비경선)를 통과한 문재인, 박지원, 이인영 의원. 당 안팎에서는 ‘대세론’을 등에 업고 문 의원이 독주하리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아직 초반이긴 하지만 수개월 전부터 호남 출신 당원들을 만나며 바닥을 훑은 박 의원의 저력이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 의원 측은 경계를 늦추지 않는 분위기다.
“이번 당대표 경선, 만만치 않겠는데….” 최근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친노(친노무현)계 의원이 말했다. 문 의원이 예상보다 고전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에이, 설마…”라는 다른 의원들의 반응에 이 의원은 정색하며 “문 의원이 나한테 거짓말을 하겠어”라고 받았다. 문 의원 스스로가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같은 조사, 결과는 제각각
문 의원 경선캠프도 조심스럽다. 선뜻 낙승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캠프 관계자들은 “쉽지 않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다시피 한다. 김기만 대변인은 1월 15일 “대강 목표한 대로 가고 있다”며 “박빙에서 우세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신중하게 말했다.
쉽지 않다는 것은 당대표 투표 선거인단의 75%를 차지하는 대의원과 권리당원 사이에서 박 의원과 각축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선거인단은 대의원 40%, 권리당원 35%, 일반당원 10%, 국민 15% 비율로 구성된다.
1월 10일 여론조사 전문업체 조원씨앤아이가 새정치연합 대의원과 권리당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박 의원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전국 대의원 1014명에게 누가 당대표로 적합한가를 물어보니 박 의원이 43.3%로 문 의원(37.5%)과 이 의원(14.1%)을 앞섰다. 권리당원 10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박 의원이 47.7%로, 문 의원(35.5%)과 이 의원(11.2%)을 제쳤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을 지지하는 일반인 429명에게 당대표 적합도를 물은 결과 문 의원이 57.3%로 박 의원(24.3%)을 크게 따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의원은 9.2%를 얻었다.
박 의원 경선캠프 대변인인 김유정 전 의원은 “종합적으로 따져 보니 현재 2%p 정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다”면서도 “아슬아슬, 간당간당, 치열한 박빙”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의원은 일반국민 여론조사에서 문 의원에게 크게 뒤지는 결과에 대해서는 “과거 대선(대통령선거) 후보였던 문 의원의 유일한 장점이지 않겠느냐”며 평가절하했다.
문 의원 측은 이 여론조사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이 조사는 박 의원 측에서 의뢰했고 박 의원 측에서 언론에 공개한 것으로 안다”며 “어느 한 후보 쪽에서 조사한 것은 의미가 별로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대의원과 권리당원 사이에서 문 의원과 박 의원의 경쟁이 치열한 것만은 사실이다. 문 의원 캠프에서 1월 10, 11일에 실시한 것으로 알려진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그렇다. 이 조사 결과 대의원 지지도는 문 의원 34.6%, 박 의원 39.8%, 이 의원 14.6%로 나타났다. 박 의원이 오차범위 내이긴 해도 5%p가량 앞섰다. 권리당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문 의원 39.0%, 박 의원 37.8%, 이 의원 16.8%로 나왔다. 접전이다. 일반국민 대상으로는 문 의원이 57.1%로 박 의원(19.3%)을 월등하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의원은 8.1%였다. 종합하면 문 의원이 박 의원을 약 7%p 차로 제친다는 것이다. 문 의원 측은 이 여론조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한편 이 의원 측은 “박 의원과의 격차가 점점 더 좁혀지고 있다”며 “경선 중반이 지나면 문 의원과 1위 경쟁을 벌일 수 있다”고 말했다.
초반 판세가 중반전, 그리고 종반전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문 의원 측은 “인물론이 먹히기 시작했다”며 박 의원과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반면 박 의원 측은 “문재인 대세론은 허물어졌다”며 지금의 기세를 살려나가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친노에 대한 호남의 반감이 변수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선거 예비경선을 통과한 박지원(왼쪽), 문재인 의원이 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공명선거실천 협약식을 갖고 있다.
김 대변인은 “대의원과 권리당원은 애당(愛黨)심이 높다. 당의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할수록 당의 간판이 누가 돼야 할지 깊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 의원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대의원이나 권리당원은 대부분 오랫동안 당원을 해온 사람들이다. 그만큼 재집권에 대한 의지가 높다. 따라서 최근 야권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다시 1위로 올라선 문 의원의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유력한 당의 대선주자를 당원들이 외면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들어 있다. 친노 진영의 계파주의에 대한 호남 지역의 반감이 크지만 2017년 대선을 바라보면서 전략적 결정을 하리라는 전망이다. 호남 출신의 수도권 재선의원은 “설마 대선주자를 떨어뜨리기야 하겠느냐”고 잘라 말했다.
반면 박 의원 측은 문 의원 측이 내세우는 인물론에 대해 “누가 인정하는 인물이란 말인가”라며 냉소적이다. 박 의원 측 캠프 관계자는 “문 의원은 내년 총선을 자신의 얼굴로 치르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 얼굴이 누구냐. 이미 대선에서 한 번 진 얼굴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 전 의원은 “대의원, 권리당원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문 의원이 호남뿐 아니라 대구, 경북에서도 박 의원에게 뒤지는 것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같은 영남 지역이지만 문 의원에 대한 온도 차가 PK(부산·경남)와 TK(대구·경북) 사이에서 발생했다는 이야기다. 실제 대구시당 한 관계자는 “바닥 민심은 친노에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선거 전문가들은 “초반 판세만으로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고 입을 모은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약 25만 명에 달하는 권리당원 가운데 호남 출신이 60%라는 점도 박 의원의 초반 추격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최고위원 후보 캠프 관계자도 “호남 대의원들은 경선 초반에는 자신의 의견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며 “박 의원의 추격세가 종반으로 갈수록 주춤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전대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는 것이 문 의원에게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관측도 있다. 엄 대표는 “선거 열기가 달아오르지 않으면 기존에 1등이라고 인식되는 사람이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대세론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