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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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에 타는 목마름이여

우리 사회 총체적 부실 지켜보면서 신뢰와 믿음 갈구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4-06-02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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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리’에 타는 목마름이여

    온라인에서 최근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배우 김보성의 의리 시리즈.

    의리, 다른 말로 ‘으리’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말 그대로 ‘으리으리한’ 인기다. 열풍의 출발점은 배우 김보성이 출연한 식혜 광고. 5월 7일 TV와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CF에서 김보성은 ‘우리 몸에 대한 의리’를 강조하며 ‘항아으리’(항아리), ‘신토부으리’(신토불이), ‘아메으리카노’(아메리카노) 등 세상 모든 것에서 ‘으리’를 찾아내는 능력을 과시했다. 해당 동영상은 하루 만에 조회수 59만 건을 기록했고, 수많은 패러디물을 낳았다. 김보성 본인이 ‘놀거으리, 먹을거으리, 살거으리, 골라서 드리으리’를 외치는 쇼핑몰 광고에 출연한 것을 비롯해 각계각층에서 말끝을 ‘으리’로 통일하는 ‘으리체’가 인기다.

    6·4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선거 포스터에 ‘약속을 지키으리’라고 썼고, 김석준 부산시교육감 후보는 부산대 앞에서 ‘의리의리한 하이파이브’ 캠페인을 열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도 ‘의리’ 동영상 시리즈를 제작했다. 전국 곳곳에서 ‘투표는 으리’를 메인 캐치프레이즈로 삼은 투표 독려 운동도 한창이다. 문화평론가 하재근 씨는 이런 현상에 대해 “김보성 씨가 ‘의리’를 외친 지는 10년이 넘었다. 그런데 이제야 사람들이 이 코드에 반응하는 건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현재 의리를 원하고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의리의 바탕은 믿음, 신뢰다. 세월호 참사에서 선장은 배를 버리고 도망가고, 국가 시스템도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지 않았나.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현실에 없는 의리를 대리만족하려는 게 최근 의리 열풍의 이유”라는 풀이다.

    ‘의리의 사나이’ 김보성 열풍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를 통해 ‘기업의 천박함, 감독기관의 부패, 공무원의 무능력’을 확인했다. 무엇 하나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총체적 부실을 보며 충격과 불안을 느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의리의 사나이’ 김보성은 은행 대출을 받아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성금 1000만 원을 기부하는 등 자신이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대중을 열광하게 만든 건 이처럼 그의 의리가 수사(修辭)에 그치지 않아서라는 해석이 있다.



    의리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 의(義)와 이(理)를 중요하게 여기는 유학에서 유래한 단어다. 오석원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는 “의리의 ‘의(義)’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마땅한 행동을 하는 것을 뜻하고, ‘리(理)’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의 법칙으로 곧 천리(天理)를 가리킨다. 이 두 글자가 더해져 만들어진 ‘의리’는 인간이 실제 삶에서 천리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의리를 지키는 것은 조선 선비들에게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의리는 조폭영화에나 나올 법한 마초들의 우정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인 면이 있다. 1986년 개봉한 ‘영웅본색’부터 ‘첩혈쌍웅’ ‘지존무상’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홍콩영화가 ‘사나이의 의리’를 내세워 인기몰이를 했지만, 영화 주인공들이 의리를 확인하고 실천하는 공간은 대부분 폭력조직이었다.

    현실에서도 의리라는 단어는 ‘우리가 남이가’ 유의 ‘끼리끼리’ 문화와 더불어 널리 쓰였다. 조직이나 주군의 명령에 복종하는 태도, 나아가 허물을 덮어주거나 대신 뒤집어쓰는 행동을 ‘의리 있다’고 여겼다. 한동안 술자리에서 유행한 건배사 ‘SSKK’, 즉 ‘시키면 시키는 대로, 까라면 까라는 대로’의 줄임말은 이런 세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키워드다.

    ‘의리’에 타는 목마름이여

    새정치민주연합 충북도당 선거운동원들이 ‘투표는 으리’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5월 29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성안길에서 사전투표 독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 오 교수는 “의리의 기본은 ‘도덕적 항심(恒心)’을 갖는 것이다. 도덕적인 삶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실천하는 게 바로 의리이기 때문에 의리 있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기 수양에 관심을 갖고 세상의 부조리한 면에 저항하게 된다”며 “잘못된 지시를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건 말하자면 가장 의리 없는 행동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최근엔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더 많이 의리를 입에 올린다”며 “참된 의리는 조선왕조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포은 정몽주나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맞선 사육신, 직언을 서슴지 않다 죽음을 맞이한 정암 조광조처럼 도덕을 위해 생명까지 거는 태도”라고 설명했다. 이런 의리의 본뜻이 널리 알려지고 참된 의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부하나 조직원에게 의리를 강조하는 문화는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는 게 오 교수의 생각이다.

    끼리끼리 문화와는 차원이 달라

    미국 저널리스트 에릭 펠턴도 저서 ‘위험한 충성’(원제 ‘Loyalty’)에서 “충성(loyalty)을 강요하는 것은 대개 사악한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옳은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도덕적 불안을 충성의 힘으로 극복하려 한다는 증거”라고 비판하고 “부하들의 충성에 집착하는 대통령의 업무 수행능력은 매우 나쁘다. 그런 대통령들은 고립될 뿐 아니라 피해망상에 젖어 조폭과 같은 패거리의 관점에서 정치를 바라보고 결국 권력을 남용한다”고 했다.

    이 책에서 ‘충성’으로 번역한 ‘loyalty(로열티)’는 우리말 ‘의리’의 영어 표현이기도 하다. 저자는 ‘로열티’를 자신과 타인을 묶어주는 밧줄에 비유하면서, 순기능이 있지만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이를 다른 이에게 요구할 경우 각종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지적했다.

    참된 의리는 패거리주의와 ‘끼리끼리’ 문화를 넘어설 때 실현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다행히 현시대, 의리의 아이콘인 김보성은 의리를 1단계 친구와의 의리, 2단계 공익과의 의리, 3단계 나눔의 의리로 나누고, 자신이 외치는 의리는 ‘공익과 나눔’이라고 강조했다.

    ‘으리’ 열풍에 맞춰 사회 곳곳에서도 진정한 의리의 정의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모색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주간동아’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의리, 곧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는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이제 책장을 넘겨 김보성을 비롯한 5명이 말하는 ‘참된 의리’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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