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메릴린 먼로가 사랑했던 향수 ‘샤넬 넘버5’.
우리 집은 아침마다 집 안 가득 향기가 퍼진다. 알람 소리가 귀를 자극해 잠에서 반쯤 깨게 만든다면 향수는 온몸의 미세한 세포까지 깨우는 듯하다. 아침마다 내 늦잠을 방해하는 건 아내의 향수다. 그는 출근 전 향수를 칙칙 두 번 뿌린다. 향수를 뿌렸다는 건 이제 구두 신는 것만 남았다는 의미다. 밤에도 마찬가지다. 침실에 향기가 느껴진다면 그건 아내가 잠잘 준비를 끝냈다는 뜻이다. 향수를 살짝 뿌리든 향기 나는 양초를 켜든, 아내의 하루는 그렇게 향기로 마무리된다.
향수는 몇만 원대부터 수십만 원대까지 다양하다. 조금 비싸다 해도 하나 사면 적어도 몇 달은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으니 그다지 비싸다고만은 할 수 없다.
고수는 자기를 위해 향수를 뿌린다. 전형적인 자기위안적 소비다. 향수를 2030 여성이 주로 소비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요즘은 4050 남자의 향수 소비가 꽤 늘었다. 패션과 뷰티에 눈뜬 중년 남자는 향수 구매에서도 센스를 발휘한다. 전형적인 남자 향수보다 좀 더 다양하고 은은한 향이 나는 여자 향수를 선택하는 남자가 꽤 있다. 물론 아직도 강한 향수를 쓰는 남자가 있긴 하지만, 나는 부드럽고 은은한 쪽을 추천한다. 한국인의 체취는 그다지 강하지 않아서 서양 남자처럼 강한 향기로 무장할 필요가 없고, 은근히 코끝을 자극하는 향이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메릴린 먼로가 잠자리에 들 때 아무것도 입지 않고 오직 이 향수만 뿌렸다고 해서 그의 잠옷으로 알려진 ‘샤넬 넘버5’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향수일 것이다. 이 향수의 향은 몰라도, 다들 이름쯤은 안다. 그래서 남자가 여자에게 향수 선물을 할 때 가장 만만하게 떠올리는 제품도 아마 ‘샤넬 넘버5’일 것이다.
영국 향수 브랜드 조말론이 올 초 출시한 향수 컬렉션 ‘런던 레인’(위)과 경북 대경대에 있는 ‘향수 체험관’에서 시민들이 향수 제조법을 익히는 모습.
개인적으로는 ‘조말론’이라는 영국 향수를 좋아했는데, 요즘엔 이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흥미도가 떨어졌다. 향수 소비가 늘어나면서 특정 소비자층을 타깃으로 소량 생산하는 프리미엄 향수, 이른바 ‘니치(niche·틈새) 향수’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고, 여러 향수를 섞어 자기만의 향기를 만드는 이도 많아지는 추세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는 한국의 향수 매출이 2011년 3600억 원에서 2013년 3980억 원 규모로 커졌다고 발표했다. 2016년에는 5000억 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도 덧붙였다. 향수의 연장선상에서 향초도 유행이다. 양키캔들 등 다양한 향초 브랜드를 모아놓은 멀티숍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이렇듯 요즘 한국인에게 향기는 아주 중요한 테마가 됐다. 일상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도구가 바로 향기다. 당신의 오감 가운데 후각에 사치를 부려보자. 코끝에서 시작해 온몸을 감쌀 매력적인 향기를 선물해보자. 일상의 풍요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