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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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메리칸드림’

소득불평등 극심해도 계층 이동 가능한 ‘기회의 땅’…한국은 빈곤층서 중산층 진입 요원

  • 이형삼 출판국 기획위원 hans@donga.com

    입력2014-04-28 09: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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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에 관한 한 미국은 견고한 불평등 제국이다. 임금불평등도가 5배다. 이는 상위 10% 근로자의 임금이 하위 10% 근로자의 5배라는 뜻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이 수치가 제일 크다. 상위 10% 가구의 평균 소득도 하위 10% 가구의 15.9배로, OECD 최고 수준이다. 소득불평등 지표인 지니계수는 빈부 격차가 극심했던 1920년대 영국이나 제정러시아 시절보다 높다는 분석도 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시간당 수천만 원꼴의 보수를 챙기지만 근로자 60%의 실질임금은 지난 30년간 한 푼도 오르지 않았다. 2011년 하위 99%를 자처하는 이들이 상위 1%의 탐욕에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로 거품을 물고 나설 만도 했다.

    그런데 ‘한 번 1%면 영원한 1%’일까. 3년 전 99%에 속했던 이들은 여전히 자기네 진영에서 1%를 향해 칼을 갈고 있을까. 불평등 제국에선 그게 당연할 듯한데, 미국 사회학자인 마크 랭크 워싱턴대 교수와 토머스 허슐 코넬대 교수가 내놓은 연구 결과는 뜻밖이다. 랭크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25~60세 미국인에 대해 44년에 걸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들 중 12%가 적어도 1년간 소득분포 상위 1%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또한 39%는 상위 5%, 56%는 상위 10%, 73%는 상위 20% 이내에 최소 1년간 진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미국인이 직업활동기의 일정 시점에 상당한 수준의 부(富)를 경험한다는 의미다. 주로 보너스 수령, 전직(轉職), 배우자의 노동시장 진출 등이 소득 급상승을 이끌었다.

    하위계층도 변화무쌍

    그러나 고소득 상태가 오래 지속될 확률은 낮았다. 소득 상위 1%를 경험한 사람이 12%나 되지만 10년 연속 이를 유지하는 비율은 0.6%에 불과했다. 1999~2007년 한 번이라도 연 100만 달러 이상 소득을 올린 사람 가운데 같은 기간 내내 ‘백만장자’였던 비율은 6%였다. 1992~2009년 고액 납세자 ‘톱(top) 400’에 한 번 오른 사람은 73%인 데 비해, 10년 이상 이름을 올린 사람은 2%뿐이었다.



    변화무쌍하기는 하위계층도 마찬가지다. 미국인의 54%가 25~60세 때 적어도 한 번은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사실이 이렇다면 1% 대 99% 갈등구도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이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분석틀이 필요할 듯하다. 랭크 교수의 결론은 이렇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고 아메리칸드림은 여전히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는 동시에 미국은 ‘빈곤 확산의 땅’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1% 대 99% 구도가 영원히 고정되리라 보고 논쟁할 게 아니라 미국인이 부와 빈곤에 똑같이 노출돼 있다는 사실에 대해 논의하고 그에 걸맞은 정책을 짜야 한다. 우리에겐 공통점이 더 많다.”

    한국의 빈부 격차도 심화하고 있지만 관련 통계수치는 미국보다는 나은 수준이다. 그러나 1% 대 99% 진실에서 보듯 숫자가 모든 것을 설명하진 않는다. 가령 한국의 지니계수가 미국보다 낮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소득만 따지는 지니계수는 집과 땅 같은 자산이 빈부 격차의 주요 변수가 되는 한국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더욱이 한국 근로자는 하루아침에 직장을 나와 빈곤층으로 떨어질 위험은 커도 빈곤층에서 중산층으로 재진입하기란 요원하다. 고액 보너스? 일부 대기업 임직원에게나 해당한다. 전직? 해고 유연성은 커졌어도 재취업 유연성은 의문이다. 배우자의 노동시장 진출? 수많은 경력단절 여성이 울고 있다.

    그래도 ‘아메리칸드림’

    2011년 11월 7일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참가자들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근처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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