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일본, 싱가포르가 북극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세 나라 모두 최근 몇 년 동안 북극이사회 회원국과의 관계 수립에 박차를 가하면서 북극 관련 정책을 살피고 북극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세 나라의 접근 방식은 사뭇 달라 보인다.
2013년 5월 한국, 일본, 싱가포르는 중국, 인도와 함께 북극이사회 정식 옵서버 자격을 획득했다. 이는 북극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재정후원자, 지역협력자로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이다. 비록 정식 옵서버 자격만으로 비(非)북극해 연안국이라는 타이틀에 큰 변화를 주진 못하겠지만, 각국 정부와 기업이 북극을 진지하게 바라보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이들 세 나라에서 나타나는 북극 관련 정책과 기업 활동의 변화, 각국이 북극을 바라보는 시각은 물론, 과연 이들 국가가 북극에 잠재된 기회를 얼마나 포착했는지, 그렇다면 그 기회가 어디에 숨었는지 관심사항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쇄빙선 아라온은 2012년 8월 북극 탐사를 위해 알래스카 위쪽 축치 해를 항해했다.
북극에 비교적 늦게 발을 들여놓았지만 한국은 북극 개발 참여 부문에서 많은 것을 이뤘다. 한국은 1970년대 말 극지 연구에 뛰어든 이래 주로 남극에 초점을 맞춰왔다. 1993~95년 이뤄진 과학연구조사를 계기로 한국은 처음 북극 연구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2002년이 돼서야 한국은 국제북극과학위원회(IASC) 정회원이 됐고 스발바르에 첫 북극 연구소를 세웠다. 2009년에는 아라온호를 진수했으며, 2012년 9월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그린란드와 노르웨이를 방문하기도 했다.
한국은 북극이사회 정식 옵서버 자격을 얻기 전부터 정책 부문에서 북극을 최우선과제로 취급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2월 140개 항목의 국정 최우선과제를 발표했다. 그 가운데 북극은 소위 ‘창조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 항목에 포함됐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산업과 과학기술, 산업과 문화의 융합 같은 업계 간 경계를 무너뜨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제활동으로 정의한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국정 최우선과제 가운데 북극해 항로 및 북극해 개발은 향후 5년에 걸쳐 달성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에서 13번째 위치를 차지했다. 2013년 7월 한국 정부는 북극종합정책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내세운 과제는 북극해 국가와의 협력관계 강화, 북극 연구 활동 확대, 북극 신사업모델 발굴, 법적·제도적 기반 강화 등이다.
여타 나라들과 달리 한국은 북극에 묻혀 있는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에 대한 야심을 주저 없이 드러낸다. 외교부는 북극이 가진 잠재력과 에너지원 확보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한다. 한국은 세계 10위 에너지 소비국가이자 세계 5위 원유 수입국이다. 2012년 한국은 소비한 전체 에너지 가운데 96.4%를 수입했다. 한국은 에너지원 다양화를 통해 에너지 수입에서 여전히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중동지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 한다.
한국은 2008~2030년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 그 방향을 제시했다. 이 계획은 장기적인 에너지 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세 가지 목표를 내세운다.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 수요 확대, 그리고 공급 확충이 그것이다.
한국은 해외 에너지 자원 확보 분야에서는 늦깎이 국가이기 때문에 북극에서의 에너지 개발 프로젝트 참여 및 투자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쇄빙선 아라온을 통해 2013년 9월 심해저 영구동토층과 소위 ‘불타는 얼음’이라 부르는 메탄 하이드레이트 분포도 탐사를 위해 뷰포트 해역에서 연구활동에 착수했다.
해운국가인 한국이 북극에 관심을 갖는 또 다른 부분은 북극해 항로를 해상운송로로 활용하는 것이다. 2013년 10월 한국은 처음으로 북극해 항로를 통해 화물을 운반했다. 한국은 국가에너지기본계획과 앞서 언급한 두 가지 목표의 결합 가능성도 고려한다. 즉, 북극 지역의 석유, 가스 등 자원 탐사와 이를 통해 얻은 에너지 자원을 수송하는 통로로 북극해 항로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이 북극해 국가들과의 에너지 협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 있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한국의 국제적 지위를 격상하는 데도 이는 매우 중요한 목표다.
일본 ‘한 번에 한 걸음씩’ 점수 따기
일본은 비북극해 연안국이지만 북극 진출 역사가 꽤 길다. 극지 연구에선 한국처럼 남극에 치우치긴 했지만 1957년 이래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온 몇 안 되는 비서양 국가 가운데 하나다. 일본은 또 북극 스발바르 군도에 대한 노르웨이의 영유권을 인정한 25년 스피츠베르겐 조약 14개 체결국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90년 일본은 비북극해 국가로서 국제북극과학위원회 회원국 지위를 얻게 되면서 북극 연구 국가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민간의 누적된 극지 연구 실적은 일본 정부 차원에서도 인정하는 바다. 일본은 과학 지식을 제공해 북극의 지속적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일본은 스발바르 외 지역에서는 법적으로 천연자원 채굴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본이 미래 먹을거리를 확보하려면 연안국들과의 협력을 통한 국제 연구 및 개발 활동이 굉장히 중요하다. 일본에게는 한 번에 한 걸음씩 ‘점수를 따는’ 전략, 달리 말하면 실질적이면서도 구체적인 결과물을 전달하고 이를 토대로 기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그 좋은 예가 바로 과학 연구 결과물이나, 2013년 3월 북극 대사 임명, 독일과 캐나다와의 양자과학기술협력협정 갱신, 그리고 일본 정유사의 노르웨이 진출을 통한 석유 채굴 사업 개시 등이다.
일본이 가진 특징은 기업과 산업계가 정책 개발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의 북극 정책에서도 잘 나타난다. 북극에 대한 관심이 치솟기 전 일본 업계는 새로운 북극해 항로 개발로 얻는 이익이 너무 미약하다고 내다봤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업계가 북극 이슈를 최우선과제로 삼아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한 적이 거의 없다.
2013년 5월 일본이 북극이사회 정식 옵서버로 선정되면서 비로소 북극 이슈가 어느 정도 정치적 모멘텀을 얻게 됐고, 북극 정책도 서서히 진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싱크탱크이자 일본 운송업계와 유관 제조업계를 대변하는 일본 해양정책연구재단(OPRF)의 로비 활동에 힘입어, 북극이 2013년 4월 발표된 신해양정책기초계획에 포함됐다. 이 계획안을 바탕으로 2013년 7월 북극 관련 사안을 다루는 각 부처 간 북극위원회가 신설됐다. 북극위원회 회의는 다양한 정부 부처 간 정보 공유를 촉진하려고 북극이사회 실무회담 일정에 따라 열리게 된다.
북극과 관련한 각 부처별 활동을 살펴보면, 가장 주목할 만한 부처가 국토교통성(MLIT)이다. 국토교통성은 운송업계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부처인 만큼 2012년 3월 북극해 항로 사업의 타당성 조사에 들어갔고, 조사 결과 항로 개척이 실질적인 사업 기회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나타났다. 2013 회계연도에 국토교통성은 러시아 해안을 따라 북극해 항로를 이용하는 법적 문제를 연구하는 데 소요될 소규모 예산을 편성했다. 관련 부처에서는 일본 기업의 항로 사용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유지, 보완하는 것은 각국 정부의 구실에 달렸다고 본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각국 관련 부처로 하여금 경제적으로 효율적이고 자연환경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국토교통성은 국제 규칙 제정 과정에 일본이 꼭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일본이 국제해사기구(IMO)가 제정한 극지 해역 운항선박의 안전기준(Polar Code)을 지지하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북극 이슈는 일본의 국내 정치권 내에서도 관심을 받는 사항이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기존 북극안보연맹에 이어 2012년 10월에는 북극 개척을 위한 의원 연맹이 신설되기도 했다.
싱가포르 실용주의적 사업 마인드
동남아시아 작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북극에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고, 일본과 한국에 비하면 극지 탐사에 뛰어든 역사도 거의 전무한 상태다. 하지만 근래 각종 정부 성명, 북극이사회 정식 옵서버 자격 신청, 2012년 초 외교부의 북극 특사 임명 등을 통해 북극 개발에서 그 나름의 구실을 자청하고 나섰다.
싱가포르는 지금까지 해양 관리와 운송 부문에서 여러 국제사회규약 및 제도 확립에 중요한 구실을 해왔다. 또 해상운송 허브이면서 IMO의 오랜 회원국이기도 하다. 싱가포르는 항행 자유는 중대 이익이 걸린 문제며, 공해는 인류 공동의 유산이므로 연안국과 사용국 간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싱가포르는 또 해양 거버넌스는 공개적이며 포괄적이어야 한다는 처지다. 바다에 에워싸인 도서국가로서 싱가포르는 북극 온난화를 직접적인 위협으로 본다. 따라서 이 도서국가가 북극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전적으로 생존 문제며,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없다는 설명이 있었다.
한국 유일의 쇄빙선 아라온(위쪽)이 2012년 12월 13일 얼음으로 뒤덮인 남극대륙 동남쪽 테라노바 만에서 화물선 수오미그라흐트가 지날 물길을 터준 뒤 다음 임무를 기다리고 있다.
북극에 대한 싱가포르의 관심 표명을 둘러싸고, 글로벌 물류 허브 싱가포르에 북극해 항로가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하지만 워낙 큰 규모인 데다 규제가 많은 북극 물류의 단기적인 잠재적 파급력이 얼마나 클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한편 싱가포르는 향후 북극의 주요 항만시설 운영이나 연안 및 선박 공학 부문에서의 전문기술 활용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이는 싱가포르 경제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산업 분야다. 싱가포르의 가장 중요한 기술회사 가운데 하나인 케펠그룹은 쇄빙선 건조와 자연친화적인 오프쇼어 리그(해상 굴착기) 건설이 전문이다. 싱가포르의 연안 선박 공학 분야 연구소인 싱가포르 국립대 부설 연안 연구 및 공학센터와 싱가포르해양연구소(SMI)가 해양환경에 관한 새로운 연구 사업에 착수했다.
싱가포르는 북극 원주민의 존재는 물론, 북극 개발과 관련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들에 미칠 영향까지 염두에 두면서 북극 원주민 사회의 중요성과 생활양식을 유지하고 다양한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원주민 처지를 강조한다. 싱가포르는 2012년 6월 북극 원주민 지역사회를 위해 원주민들을 초청해 싱가포르 방문연구를 주선했고 제2차 방문연구도 계획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보면 일본은 향후 북극에 대한 투자가 국가는 물론 기업 차원에서도 득이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국은 5개년 계획을 통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북극 사업을 추진하지만 아직 시행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싱가포르는 북극에 관해서는 어떠한 정치적 이익도 걸려 있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북극 연안국과 싱가포르의 상호 이익을 충족하는 사업협약 체결을 원한다. 싱가포르는 세 나라 가운데 북극 원주민의 목소리에 가장 민감하게 대응하며 북극 지역의 인간 개발 분야를 북극 이슈 1순위로 꼽는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 세 나라 모두에게 북극은 최우선과제는 아니다. 하지만 세 나라 모두 해상무역 강국임을 감안할 때 북극과 관련한 의사 및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확실하다. 이 세 국가는 북극이사회 정식 옵서버 자격을 취득함으로써 각 정부와 기업이 북극에서 기후변화, 과학연구, 사업 기회 발굴 등 여러 측면에서 정당한 이익을 주장할 수 있게 됐다.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문제 전문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 과정에 주목한다’는 기조 하에 아시아 지역 주요 현안과 관련해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의 공론장 구실을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