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3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가한 영화인들이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등장한 이후 연예 저널리즘은 극심한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뉴스 생산 중심이 스포츠신문에서 인터넷 연예전문매체로 옮겨 가고, 그에 따라 뉴스 성격도 두드러지게 달라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연예뉴스 유형을 꼽자면 바로 파파라치 저널리즘이다. 파파라치 저널리즘은 연예인, 정치인, 기타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명사의 사생활을 밀착취재해 보도하는 행태로, 늘 시끄러운 사생활 침해 문제를 동반한다. 서구에서는 이미 연예 저널리즘의 한 장르로 정착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포털사이트에 연예뉴스를 공급하는 인터넷 연예전문매체가 생겨나면서 본격화됐다.
선정적 소재 저널리즘 보도방식
파파라치 저널리즘을 최초로 시작한 매체는 ‘스포츠서울닷컴’이다. 최근에는 이곳 출신 기자들이 독립해 만든 ‘디스패치’가 가세하며 경쟁체제로 돌입했다. 파파라치 저널리즘은 일반적으로 추문이나 들추는 저질 언론이란 인식이 일반적이지만, 김용덕 디스패치 팀장 견해는 사뭇 다르다. 그는 파파라치 저널리즘을 한마디로 ‘연예뉴스의 탐사보도’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일반 저널리즘에서 탐사보도는 바람직한 정론 형태로 칭찬받는데 왜 연예뉴스는 탐사보도를 하면 비난받아야 하는가”라고 항변한다. 김 팀장이 파파라치 저널리즘을 ‘연예뉴스의 꽃’이자 ‘뉴스 함량이 떨어지는 수많은 인터넷 연예뉴스와는 비교가 안 되는 킬러 콘텐츠’라 주장하는 논거는 대략 이렇다.
‘연예뉴스 독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연예인 사생활이다. 파파라치 저널리즘은 사생활을 밀착취재해 ‘팩트’에 기초한 보도를 한다. 연예인 사생활에 대해 확인도 하지 않고 추측성 보도를 일삼는 다른 연예뉴스보다 이 점에서 저널리즘 기초에 충실하다. 사생활을 들춘다고 비판하는 것은 연예뉴스 특성을 무시한 처사다. 연예뉴스는 원래 심각한 사회 문제를 다루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평균적 관심사를 다룬다. 사생활 침해 여부는 취재방식이나 보도형태에 따라 해당 언론이 법적으로 책임질 문제다. ‘디스패치’는 철저히 본인 사실 확인을 거치기 때문에 주변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법적 분쟁에 휘말리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연예뉴스 본연의 일을 저널리즘 기초에 충실하게 보도해 대중의 관심사를 충족하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파파라치 저널리즘은 연예뉴스의 전문화다.’
김 팀장의 이런 주장은 서구의 연예 저널리즘 행태를 보면 일리가 있다. 서구 연예전문매체의 일반적 보도경향은 ‘소재는 선정적으로, 보도방식은 저널리즘 기초에 충실하게’로 압축할 수 있다. 파파라치 저널리즘 같은 스캔들 속보는 밀착취재를 통해 사실 확인을 중시하고, 연예 기획기사 같은 경우는 대중의 관심사에 대해 정교하게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컨대 ‘연예인 수입과 이혼율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여자 연예인의 결혼상대는 어떤 부류인가’ 같은 주제가 기획기사 소재가 된다. 이런 점에서 ‘디스패치’ 노선은 긍정적 전문화 여부에 대한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연예뉴스의 분화인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서구에서도 파파라치 저널리즘이 어엿한 연예뉴스 형태로 자리 잡긴 했지만, 바람직한 연예뉴스로 널리 인정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과도한 사생활 침해 여부는 대부분 개선해야 할 점으로 인식하며, 평자에 따라선 언론이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해주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다. 언론은 대중을 유식한 공중(informed public)으로 이끄는 계몽적 구실을 해야지 말초적 호기심을 충족해주는 존재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현재 우리나라에서 급속히 확산하는 파파라치 저널리즘도 당분간 설전의 한가운데 놓일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파파라치 저널리즘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어떤 논점이 해명돼야 할까.
파파라치 저널리즘을 둘러싼 논란은 크게 두 가지 논점을 포함한다. 첫째는 ‘연예뉴스가 유명인 사생활을 뉴스 소재로 삼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소재 정당성에 대한 질문이다. 사생활에 관한 일반 저널리즘의 기준은 공인 사생활이라도 사회적 의미가 있다면 뉴스가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문제가 여기에 해당한다(보도방식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소재 자체는 그렇다는 얘기다). 유명 정치인이 불륜을 한 것은 사생활이지만 공적 사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예인이 열애에 빠진 것은 순수한 사생활이다. 이 경우 뉴스 소재로서 가치가 없다. 하지만 연예뉴스를 특화된 영역으로 보고 ‘공적 의미가 없어도 대중의 관심이 큰 사안은 뉴스가 된다’고 전제하면 연예인 열애기사는 연예뉴스 소재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취재 및 보도방식 문제
우리는 이미 통념상 연예뉴스는 순수한 사생활이라도 뉴스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공유한다. 연예인은 평소 이 점을 이용해 인기를 유지하는 전략으로 사생활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따라서 뉴스 소재의 정당성 여부라는 관점에서 보면 ‘디스패치’의 사생활 보도는 크게 비난할 바 못 된다.
그러나 사생활 보도의 경우 정치인과 사회적 명사는 연예인과 다른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연예뉴스에서 연예인의 순수 사생활을 소재로 삼는 것은 정당하지만, 일반 저널리즘에서 유명인의 순수한 사생활을 소재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파파라치 저널리즘의 문제는 두 번째 논점인 취재 및 보도방식을 둘러싼 방법론적 문제로 압축된다. 그런데 취재방식이 주거 침입, 절도 같은 위법이 아니라면 비난할 여지는 거의 없다. 위법적 방법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대응하면 되기 때문이다. 유명인에게 기자는 성가신 존재지만 대중적 인지도를 유지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파파라치 저널리즘에 대한 그들의 불평은 ‘성가시지 않는 홍보수단’을 욕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욕망과 ‘유명인을 매체영업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매체 욕망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소음이 파파라치 저널리즘을 둘러싼 논란의 본질이다.
언론윤리 관점에서 파파라치 저널리즘은 기존 연예인 보도와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본질에는 차이가 없다. 그래서 파파라치 저널리즘의 윤리학은 이 ‘정도 차이’에 윤리적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누가 한 번 합법 테두리 안에 있는 파파라치 저널리즘과 기존 연예 저널리즘을 윤리적으로 구별해보라. 오히려 사실 확인을 위한 파파라치 저널리즘의 집요한 근성이 미덕처럼 보일 것이다. 그들이 오히려 기존 연예뉴스보다 저널리즘 기초에 충실한 것처럼 보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