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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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취향과 문화 배려 호텔리어 기본에 충실하죠”

그랜드 힐튼 서울 총지배인 번하드 브렌더

  • 최수묵 동아일보 기자 mook@donga.com

    입력2013-12-16 09: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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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 취향과 문화 배려 호텔리어 기본에 충실하죠”
    일본항공(JAL)의 극적 회생이 최근 경영계에서 화제다. 부채 20조 원으로 파산 직전이던 기업이 3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대전환한 스토리다. 그 중심에는 월급 한 푼 받지 않고 회생을 진두지휘한 교세라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 JAL 회장이 있다. 2010년 2월 JAL을 되살려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당시 그의 나이는 78세였다. 그는 3년간 혼신의 힘을 다해 ‘노병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장수 최고경영자(CEO)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일까. 비장의 경영철학과 노하우는 시간이 갈수록 퇴색하기는커녕 오히려 오묘한 빛을 발한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그랜드 힐튼 서울의 번하드 브렌더 총지배인(사진)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나이는 해방둥이인 68세. 하지만 그는 앉아서 경영철학만 읊진 않는다. 오히려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하는 행동파다.

    사교력과 경영철학이 빛나는 CEO

    호텔리어로 그가 내세우는 최고 가치는 머리(지식)보다 마음(진정성).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그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1년 반 전 대대적으로 리노베이션한 객실을 보여주겠다며 엘리베이터에 올랐을 때 한 손님이 함께 탔다.

    “몇 층 가시죠?”



    “8층입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본. 버튼을 대신 눌러주며 그는 한 발 더 나아간다.

    “8, 정말로 멋진 숫자네요!”

    투숙객의 기분을 한껏 고조하는 추임새다.

    그는 여기서 또 한 발 나아간다.

    “어디서 오셨죠?”

    “독일 함부르크입니다.”

    이 대답에 그는 대뜸 유창한 독일어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건넸다.

    “무슨 일이든 필요할 때 연락 주세요.”

    그는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막아선 채 서너 마디 대화를 더 나눴다. 우연히 마주친 손님에게 그는 ‘원더풀’이란 단어를 세 번이나 말했다. “사람은 사귈 수 있을 때 곧바로 사귀어야 합니다. 바로 이 시간, 이곳에서 말이죠. 내가 언제 저 손님의 직장에 다시 찾아가 인사를 할 수 있겠습니까?”

    브렌더 총지배인은 칠순을 바라보지만 그에게 붙는 수식어는 ‘나이가 많다’가 아니다. 그보다는 ‘사교력과 경영철학이 빛나는 CEO’라는 평가를 받는다.

    외국 관광객 1200만 명 시대. 한국 관광산업은 대폭 성장했고 그만큼 경쟁도 치열해졌다. 일본 관광객은 줄고, 중국 관광객은 크게 느는 내용적 변화도 시작됐다. 이런 변화에 호텔과 호텔리어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질문지를 건네자 그는 6가지 항목 가운데 맨 마지막 질문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였다. ‘한국 관광산업이 보완해야 할 단점은?’이라는 질문.

    “원더풀. 한국인은 단점이나 약점을 잘 묻지 않던데…. 참 좋은 질문이네요.”

    그는 또 ‘원더풀’이라며 칭찬을 날린다.

    “한국 호텔리어는 학력이 우수해요. 서울대 출신이 20%를 넘는 호텔도 있더군요. 그러나 대학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습니다. 지식보다 중요한 게 마음이거든요. 이것이 강점이자 약점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독일 출생인 브렌더 총지배인은 전문대를 나와 주방 견습생으로 호텔리어 길에 입문했다. 이후 4대륙 10개국 호텔에서 다양한 문화를 체험했다. 부인도 인도네시아에서 만났다. 1991년 한국에 오면서 경영 일선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을 시작으로 서울 웨스틴조선, 제주 하얏트, 서울 서교호텔, 밀레니엄 서울힐튼을 거쳐 그랜드 힐튼 서울을 8년째 진두지휘하고 있다. 23년간 한국 생활을 하다 보니 전직 대통령, 정치인, 스포츠맨들과도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세계 각국 손님의 다양한 취향과 문화를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건 책으로 배우기 어렵고, 경험을 통해서만 체득할 수 있죠.”

    그의 대답은 대학 간판을 따지는 학력 중심의 한국 사회에 따끔한 충고를 던지는 듯했다. 지식과 영어는 기본일 뿐, 세계 문화를 체득하는 데 더 노력해야 한다는 충고다. 그래서인지 한국말을 할 법하지만 그는 업무 중엔 영어만 사용한다. 그는 문화적 배려의 대표적인 예로 아침식사를 들었다. 매출 비중은 작지만 ‘집밥’처럼 입맛에 맞아야 손님이 편안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음식은 무엇보다 위생적이어야 합니다. 주방에서 작은 사고라도 나면 총지배인인 나도 해고될 수밖에 없어요. 24단짜리 고급 자전거도 작은 부품 하나 때문에 사고가 나잖아요.”

    셰프 출신 총지배인이어서인지 그는 맛에도 각별히 관심을 둔다. 최근 프랑스 출신 셰프를 스카우트했다며 달팽이 요리를 자랑하기도 했다. 술에 대해서도 독일인답게 치밀하고 과학적이다.

    “체온이 섭씨 36도에서 40도로 오른다면 어찌될까요. 열이 펄펄 나면서 제정신이 아니겠죠.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맛을 내는 온도가 따로 있어요.”

    그는 신용카드처럼 생긴 온도계를 갖고 다니며 서빙하는 술의 온도를 일일이 확인한다. 샴페인은 8도, 화이트와인은 11도, 레드와인은 18도가 최적의 맛을 내는 온도라고 했다.

    요즘 그의 관심은 중국이다. 올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가운데 일본 관광객이 50% 감소한 반면, 중국 관광객은 25%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를 감안해 홍콩과 베이징, 상하이에서 쇼케이스를 개최하고 있다.

    “최근 유럽에서 퇴역군인, 의사 등 3개 그룹 120여 명이 중국을 들러 한국에 관광을 온 적이 있어요. 중국을 주로 보고 한국은 잠시 거쳐가는 여정이었죠. 그런데 그들이 ‘다음번엔 중국보다 한국 중심으로 여행하겠다’고 하더군요. 입국 절차도 편하고 템플스테이 같은 프로그램이 무척 인상에 남았다는 겁니다.”

    브렌더 총지배인은 한국의 전반적인 관광 인프라, 특히 친절함과 서비스 수준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다고 평가했다. 다만 세밀한 부분의 소프트웨어는 강화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보안과 안전에 주의해야 명품 호텔

    “특히 보안과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별이 몇 개라는 ‘개수’에만 관심을 두는데, 이보다 기본을 강화해야 진짜 명품 호텔이 됩니다. 직원들에게 심폐소생술을 교육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병원에 가기 전 응급처치가 생사를 좌우하니까요.”

    안전에 관한 신념을 가진 그는 겨울이면 매주 토요일 빠짐없이 스키를 타러 간다. 즐기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패트롤(안전요원) 봉사를 하기 위해서다. 미국 국제스키패트롤 한국 회원인 그는 위험에 빠진 스키어를 구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호텔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그랜드 힐튼 서울은 서울시청에서 불과 7km 거리예요. 그러면서 백련산 자락에 자리 잡아 청정한 공기가 가득한 에코프렌들리(eco-friendly) 환경을 갖췄죠. 인천국제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특급 호텔이기도 하고요. 입지는 물론 서비스까지 좋으니 한국 최고의 호텔 아닙니까!”

    브렌더 총지배인의 별명은 ‘빅 브라더(Big Brother)’. 온화하면서도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모습이 꼭 맏형 같아서다. 이는 이나모리 회장과 스타일이 흡사하다. 마술처럼 화려한 경영이 아닌, 평범하지만 기본을 중시하는 경영. 이것이 ‘장수 CEO’의 공통된 비결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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