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밀라노, 피렌체, 파리, 서울, 도쿄 등을 두루 다니며 지구가 예전보다 더워졌다는 느낌을 받은 건 필자 혼자만은 아니리라. 뭔가 극단으로 밀고 나가는 계절인 여름과 겨울은 점점 길어지고, 은근하고 정적인 봄과 가을은 찰나처럼 짧게 지나가버리는 요즘, 패션의 패러다임도 그에 따라 뭔가 바뀌고 있다. 포멀과 캐주얼의 의미 자체를 과거와 다르게 재해석하기도 하고, 어디선가는 오버랩되는 것이다.
사실 슈트는 상하의가 같은 소재와 컬러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입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슈트의 규범이나 전통을 따지다 보면 만만치 않은 원칙과 철학이 등장하긴 하지만, 자기 몸에 맞는 사이즈를 잘 선택해 셔츠와 넥타이를 꼬박꼬박 바꿔주기만 한다면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예컨대 추석 같은 명절에 전통 제례를 지내는 우리나라의 남성도 슈트나 블레이저를 정갈하게 입으면 예의를 표현하는 복장으로 충분하다.
복장은 예절 문제이자 게임
문제는 오히려 남성을 위한 캐주얼이다. 캐주얼은 정말 막강한 상대다. 복장 종류나 아이템이 무한대에 가까울 만큼 확장된 캐주얼 스타일은 전통과 규범이 비교적 명확한 슈트보다 입기가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셔츠를 예로 든다면, 여름에는 반팔셔츠만 입어도 될까, 슈트나 재킷에는 어떤 게 올바른 셔츠일까 하는 기본 문제부터, 자신에게 어울리는 컬러나 패턴은 무엇이며, 혹 더워서 소매를 걷는다면 팔뚝 어디까지 올리는 게 좋을까 등등 줄줄이 생각이 진전된다. 여름의 열기가 꺾인 가을에는 셔츠 버튼을 몇 개 풀어야지 민폐가 안 될까, 그리고 두꺼운 아우터를 벗은 겨울에는 셔츠 위에 카디건을 입어야 할까 등 궁금한 것투성이다.
이처럼 캐주얼은 슈트 스타일보다 좋게 말하면 유연함, 정확하게는 독자성이 높아서, 스타일을 풀어낸 결과에서 개인의 재량이 너무 극명히 드러나버린다. 물론 슈트가 아니면 모두가 캐주얼이라는 생각, 그리고 티셔츠나 블레이저나 모두 캐주얼의 한 가족이라는 미국적 사고방식에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지만, 한여름에도 재킷 안에 셔츠와 타이까지 갖춰야 신사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티셔츠와 청바지를 넘어선, 캐주얼이면서도 품위와 예절을 갖춘 그런 클래식한 복장은 분명히 있다.
남성의 복장은 어디에서 입느냐는 장소의 문제와 타인의 시선을 배려한다는 예절의 문제, 거기다 계절이라는 변수를 섞어서 선택하는 게임이다. 캐주얼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캐주얼이라는 범주에 속한다고 해도 출근하는 옷차림과 이태원에 놀러가는 복장은 다를 것이며, 색상도 좀 가볍고 속살을 어느 정도 노출해도 좋은 여름과 코디, 컬러 모두 진지해지는 가을은 또 다른 법. 특히 클래식한 캐주얼이란 영국인이 좋아하는 재킷을 기본으로 하고 컬러풀한 셔츠나 니트를 개성적으로 더하는 복장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가을은 여름 내내 허전했던 목에 감은 타이가 빛을 발하는 시기이며, 결과적으로 모든 남성이 좀 더 아름다워지는 계절이다. 따라서 모든 아이템을 균등하게 생각지 말고, 언제나 재킷에 먼저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 예를 들어 예산이 100이라면 재킷에 40, 구두에 30, 그리고 나머지 30을 바지, 셔츠, 타이, 가방 등에 배분하는 것이다. 좋은 재킷이 위에서, 구두가 아래에서 남성의 몸과 지성을 굳건히 받쳐주면 그 어떤 장소도 두렵지 않을 수 있다. 셔츠와 바지는 어느 정도는 소모품적인 성격을 지니므로, 재킷과 구두만 제대로 갖춘다면 나머지는 좀 저렴해도 전체가 기품 있게 마무리되는 것이다. 그런 투자를 반복하면 언젠가 옷장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재킷과 구두가 모이게 된다. 세월이 흘러도 셔츠와 바지를 바꿔주기만 하면 되니까 옷차림에 일관성이 생기고, 고민거리는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좋은 재킷은 체형과 심리적 필요 충족
좋은 재킷에 대해선 정답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기성복이든 맞춤복이든 그 목적은 부의 과시가 아니라, 그것을 착용한 사람의 현재 모습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즉, 특정 길이의 재킷을 입었을 때 어떤 모습을 원하느냐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 없이 옷을 사면, 들인 돈만큼 좋은 효과를 보지 못하고 또 그 옷에 대한 애정도 갖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좋은 재킷이란 자기 체형과 심리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옷이겠고, 또 그런 옷은 수치상으로도 정확하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답이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다만 아주 거칠게 표현하면, 키가 커 보이고 싶다면 재킷 길이는 너무 길지 않아야 한다. 자칫 상체가 길어 보이고 다리가 짧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모습보다 커 보이길 원한다면 재킷 길이를 표시하는 쇼트(Short), 레귤러(Regular), 롱(Long) 3가지 옵션 가운데 쇼트에 가깝게 선택하는 게 좋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의 재킷 길이는 양팔을 내렸을 때 엄지손가락 끝에서 2cm 정도 위면 무리가 없다. 다르게 말하면 손을 내린 채 손바닥을 물음표처럼 구부렸을 때 자연스럽게 재킷을 감싸는 느낌, 수치로는 재킷의 사이드포켓 상단에서 23~25cm가 키에 상관없이 신체 비율을 최적으로 만드는 길이다.
남훈은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신세계인터내셔날 E.ARMANI 브랜드 매니저, 제일모직 란스미어(LANSMERE) 디렉터 등을 지냈다. 현재 패션 컨설팅 회사 The Alan Company 대표로 있다. 패션컨설턴트 겸 칼럼니스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성공을 지향하는 남성을 위한 패션 지침서 ‘남자는 철학을 입는다’를 썼다.
사실 슈트는 상하의가 같은 소재와 컬러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입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슈트의 규범이나 전통을 따지다 보면 만만치 않은 원칙과 철학이 등장하긴 하지만, 자기 몸에 맞는 사이즈를 잘 선택해 셔츠와 넥타이를 꼬박꼬박 바꿔주기만 한다면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예컨대 추석 같은 명절에 전통 제례를 지내는 우리나라의 남성도 슈트나 블레이저를 정갈하게 입으면 예의를 표현하는 복장으로 충분하다.
복장은 예절 문제이자 게임
문제는 오히려 남성을 위한 캐주얼이다. 캐주얼은 정말 막강한 상대다. 복장 종류나 아이템이 무한대에 가까울 만큼 확장된 캐주얼 스타일은 전통과 규범이 비교적 명확한 슈트보다 입기가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셔츠를 예로 든다면, 여름에는 반팔셔츠만 입어도 될까, 슈트나 재킷에는 어떤 게 올바른 셔츠일까 하는 기본 문제부터, 자신에게 어울리는 컬러나 패턴은 무엇이며, 혹 더워서 소매를 걷는다면 팔뚝 어디까지 올리는 게 좋을까 등등 줄줄이 생각이 진전된다. 여름의 열기가 꺾인 가을에는 셔츠 버튼을 몇 개 풀어야지 민폐가 안 될까, 그리고 두꺼운 아우터를 벗은 겨울에는 셔츠 위에 카디건을 입어야 할까 등 궁금한 것투성이다.
이처럼 캐주얼은 슈트 스타일보다 좋게 말하면 유연함, 정확하게는 독자성이 높아서, 스타일을 풀어낸 결과에서 개인의 재량이 너무 극명히 드러나버린다. 물론 슈트가 아니면 모두가 캐주얼이라는 생각, 그리고 티셔츠나 블레이저나 모두 캐주얼의 한 가족이라는 미국적 사고방식에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지만, 한여름에도 재킷 안에 셔츠와 타이까지 갖춰야 신사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티셔츠와 청바지를 넘어선, 캐주얼이면서도 품위와 예절을 갖춘 그런 클래식한 복장은 분명히 있다.
남성의 복장은 어디에서 입느냐는 장소의 문제와 타인의 시선을 배려한다는 예절의 문제, 거기다 계절이라는 변수를 섞어서 선택하는 게임이다. 캐주얼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캐주얼이라는 범주에 속한다고 해도 출근하는 옷차림과 이태원에 놀러가는 복장은 다를 것이며, 색상도 좀 가볍고 속살을 어느 정도 노출해도 좋은 여름과 코디, 컬러 모두 진지해지는 가을은 또 다른 법. 특히 클래식한 캐주얼이란 영국인이 좋아하는 재킷을 기본으로 하고 컬러풀한 셔츠나 니트를 개성적으로 더하는 복장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가을은 여름 내내 허전했던 목에 감은 타이가 빛을 발하는 시기이며, 결과적으로 모든 남성이 좀 더 아름다워지는 계절이다. 따라서 모든 아이템을 균등하게 생각지 말고, 언제나 재킷에 먼저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 예를 들어 예산이 100이라면 재킷에 40, 구두에 30, 그리고 나머지 30을 바지, 셔츠, 타이, 가방 등에 배분하는 것이다. 좋은 재킷이 위에서, 구두가 아래에서 남성의 몸과 지성을 굳건히 받쳐주면 그 어떤 장소도 두렵지 않을 수 있다. 셔츠와 바지는 어느 정도는 소모품적인 성격을 지니므로, 재킷과 구두만 제대로 갖춘다면 나머지는 좀 저렴해도 전체가 기품 있게 마무리되는 것이다. 그런 투자를 반복하면 언젠가 옷장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재킷과 구두가 모이게 된다. 세월이 흘러도 셔츠와 바지를 바꿔주기만 하면 되니까 옷차림에 일관성이 생기고, 고민거리는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좋은 재킷은 체형과 심리적 필요 충족
좋은 재킷은 입은 사람의 체형과 심리적 필요를 충족한다.
좋은 재킷이란 자기 체형과 심리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옷이겠고, 또 그런 옷은 수치상으로도 정확하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답이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다만 아주 거칠게 표현하면, 키가 커 보이고 싶다면 재킷 길이는 너무 길지 않아야 한다. 자칫 상체가 길어 보이고 다리가 짧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모습보다 커 보이길 원한다면 재킷 길이를 표시하는 쇼트(Short), 레귤러(Regular), 롱(Long) 3가지 옵션 가운데 쇼트에 가깝게 선택하는 게 좋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의 재킷 길이는 양팔을 내렸을 때 엄지손가락 끝에서 2cm 정도 위면 무리가 없다. 다르게 말하면 손을 내린 채 손바닥을 물음표처럼 구부렸을 때 자연스럽게 재킷을 감싸는 느낌, 수치로는 재킷의 사이드포켓 상단에서 23~25cm가 키에 상관없이 신체 비율을 최적으로 만드는 길이다.
남훈은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신세계인터내셔날 E.ARMANI 브랜드 매니저, 제일모직 란스미어(LANSMERE) 디렉터 등을 지냈다. 현재 패션 컨설팅 회사 The Alan Company 대표로 있다. 패션컨설턴트 겸 칼럼니스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성공을 지향하는 남성을 위한 패션 지침서 ‘남자는 철학을 입는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