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에는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라는 게 있다.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사이에 절도죄, 사기죄, 공갈죄, 횡령죄, 배임죄, 장물죄(규정 내용이 약간 다름)나 그 미수와 권리행사방해죄를 범했을 경우 그 형을 면제하고 그 밖의 친족 사이에 이러한 죄를 범한 경우에는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로 한다는 것이다(형법 344조, 354조, 361조, 365조, 328조). 여기서 배우자는 법률상 배우자만을 말하고, 동거란 같은 집에 살면서 일상생활을 함께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용돈이 필요한 아들이 아버지 지갑에서 몰래 돈을 꺼내 가도 처벌하지 않는다. 가정 내에서 식구 사이에 발생한 일까지 일일이 법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그렇다면 배우자의 현금카드를 훔쳐 인출기를 통해 돈을 뽑아 가면 어떻게 될까. 지갑에서 직접 돈을 빼간 것은 아니지만 현금을 가져간 것이나 마찬가지니 친족상도례가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이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피고인인 남편은 1년 전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아내와 혼인신고를 마치고 동거에 들어갔다. 하지만 배우자의 과거를 의심해 수시로 구타했으며 회칼을 목에 들이대며 위협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아내의 과거를 알아낸다며 주민등록증과 인감도장을 훔쳐 위임장을 위조했고, 공동명의로 된 부동산 등 재산을 빼돌리려고도 했다. 그러다 아내가 잠자는 사이 아내 지갑에서 현금카드를 몰래 꺼낸 뒤 현금자동인출기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500만 원을 인출했다. 검찰이 그를 기소한 죄명은 절도와 폭행, 사문서 위조,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흉기 휴대 협박)이었다.
1심은 이 사건의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남편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법원이 공소사실 중 절도에 관해 피해자를 아내로 보고 친족상도례를 적용해 형 면제를 선고하면서 나머지 공소사실에 대해서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자, 검사가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검사 상고를 받아들여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절취한 현금카드를 사용해 현금자동인출기에서 현금을 뽑아 갖는 행위는 현금자동인출기 관리자의 의사에 반해 그의 지배를 배제하고 그 현금을 자기 지배하에 옮겨 놓는 것으로 절도죄가 성립하며, 여기서 피해자는 배우자가 아니라 현금자동인출기 관리자인 은행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절도죄의 피해자는 피고인의 친족이 아니라서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이를 포함해 형을 다시 정하라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되돌려 보냈다.
훔친 현금카드로 현금을 인출하는 행위에 대해 대법원은 과거부터 “현금카드 명의자가 아닌 현금인출기 관리자가 피해자”라는 판례를 고수해왔으며, 이 사건에서도 이러한 점을 재확인했다. 단순한 생활법률 상식으로 친족 간에는 재산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면, 새로운 금융기법의 발달을 통해 범죄가 성립될 수도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법은 세상 모든 일에 개입할 수 없다. 특히 국가가 나서서 처벌할 경우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법률을 엄격히 해석해야 하고, 확대해석이나 유추해석은 금지된다. 피해자도 엄격히 따진다. 훔친 처지에서야 현금을 가져가나 현금카드로 돈을 꺼내거나 똑같은 결과가 아니냐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법은 이를 같은 행위로 보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리 친족 간일지라도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지킬 일이다.
그렇다면 배우자의 현금카드를 훔쳐 인출기를 통해 돈을 뽑아 가면 어떻게 될까. 지갑에서 직접 돈을 빼간 것은 아니지만 현금을 가져간 것이나 마찬가지니 친족상도례가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이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피고인인 남편은 1년 전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아내와 혼인신고를 마치고 동거에 들어갔다. 하지만 배우자의 과거를 의심해 수시로 구타했으며 회칼을 목에 들이대며 위협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아내의 과거를 알아낸다며 주민등록증과 인감도장을 훔쳐 위임장을 위조했고, 공동명의로 된 부동산 등 재산을 빼돌리려고도 했다. 그러다 아내가 잠자는 사이 아내 지갑에서 현금카드를 몰래 꺼낸 뒤 현금자동인출기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500만 원을 인출했다. 검찰이 그를 기소한 죄명은 절도와 폭행, 사문서 위조,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흉기 휴대 협박)이었다.
1심은 이 사건의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남편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법원이 공소사실 중 절도에 관해 피해자를 아내로 보고 친족상도례를 적용해 형 면제를 선고하면서 나머지 공소사실에 대해서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자, 검사가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검사 상고를 받아들여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절취한 현금카드를 사용해 현금자동인출기에서 현금을 뽑아 갖는 행위는 현금자동인출기 관리자의 의사에 반해 그의 지배를 배제하고 그 현금을 자기 지배하에 옮겨 놓는 것으로 절도죄가 성립하며, 여기서 피해자는 배우자가 아니라 현금자동인출기 관리자인 은행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절도죄의 피해자는 피고인의 친족이 아니라서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이를 포함해 형을 다시 정하라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되돌려 보냈다.
훔친 현금카드로 현금을 인출하는 행위에 대해 대법원은 과거부터 “현금카드 명의자가 아닌 현금인출기 관리자가 피해자”라는 판례를 고수해왔으며, 이 사건에서도 이러한 점을 재확인했다. 단순한 생활법률 상식으로 친족 간에는 재산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면, 새로운 금융기법의 발달을 통해 범죄가 성립될 수도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법은 세상 모든 일에 개입할 수 없다. 특히 국가가 나서서 처벌할 경우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법률을 엄격히 해석해야 하고, 확대해석이나 유추해석은 금지된다. 피해자도 엄격히 따진다. 훔친 처지에서야 현금을 가져가나 현금카드로 돈을 꺼내거나 똑같은 결과가 아니냐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법은 이를 같은 행위로 보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리 친족 간일지라도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지킬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