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다이노스 손민한.
2013년 한국 프로야구가 8월 18일 누적 관중 500만 명을 넘어서며 최근 6년 연속 500만 관중 돌파라는 신기원을 열었다. 류현진(LA 다저스)과 추신수(신시내티), 이대호(오릭스) 등 해외파의 빼어난 활약에도 국내 프로야구 인기는 오히려 더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역경을 딛고 일어선 선수가 많이 등장해 팬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2013년 한국 프로야구를 더 풍족하게 만드는 ‘스토리텔링 플레이어’를 모아봤다.
다시 돌아온 ‘전국구 에이스’ 손민한
NC 손민한(38)은 한때 한국 프로야구를 주름잡았던 ‘전국구 에이스’였다. 롯데 유니폼을 입었던 2005년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4강 탈락팀 소속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가 됐던 ‘100승 투수’다. 그러나 부상과 부진이 겹쳐 2011시즌을 끝으로 롯데에서 방출됐다. 재기의 칼을 갈며 곧바로 NC 입단을 타진했지만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6대 회장 재임 시절 비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검찰 조사결과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도의상 책임을 면할 길이 없었다. 동료 선수들도 그를 외면했다. 그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다 뒤늦게 선수협으로부터 용서를 받은 뒤 올해 초 입단테스트를 거쳐 어렵게 NC 유니폼을 입었다.
손민한에게 기회를 준 것은 NC 사령탑이자 고려대 선배인 김경문 감독이다. 손민한은 6월 5일 SK와의 마산경기에 첫 선발등판해 승리 투수가 되는 등 세월을 거스르는 활약으로 김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고 있다. 현재는 팀의 마무리투수로 신생팀 NC가 4할 승률 이상을 노리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올 시즌 수위타자를 달리는 삼성 채태인(31)은 기나긴 슬럼프로 은퇴와 트레이드를 심각하게 고민하다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지난해까지 2년 연속 부진을 보여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되고, 연봉이 반 토막 나기도 했던 그는 “야구장에 가는 게 싫었다.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가족을 보니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초라해졌다”며 유니폼을 벗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가족과 동료의 힘으로 다시 용기를 냈다. 최근 왼쪽 어깨 실금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졌지만 시즌 타율 0.356로 맹활약했다.
KIA 타이거즈 신종길(오른쪽).
제2의 김현수를 꿈꾸는 문우람
넥센 문우람(21)은 2010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국가대표 출신이다. 유창식(한화), 임찬규(LG), 이태양(NC), 심창민(삼성) 등이 당시 멤버. 그러나 친구들이 대부분 프로 지명을 받고 많은 계약금을 챙긴 것과 달리 문우람은 드래프트에서 호명을 받지 못한 채 신고 선수로 쓸쓸히 넥센 유니폼을 입었다.
고교 시절 태극마크를 달 정도로 제법 재능이 있었고, 타격에서만큼은 남다른 실력을 지녔다고 자부했지만 프로 스카우터들은 그를 외면했다. 문우람은 2군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방망이를 돌리고 또 돌렸다. 자신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수비 범위를 넓히려고 외야에서 펑고(야수가 수비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배트로 쳐준 타구)를 받고 또 받았다.
넥센 히어로즈 문우람(왼쪽)과 안태영.
문우람이 힘겨운 시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데는 가족의 힘이 컸다. “부모님과 누나가 나 때문에 희생한 게 너무 많다. 아들 하나 잘 키우려고 부모님이 빚까지 져가면서 힘들게 뒷바라지했다.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가족 덕분”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문우람은 고교 시절 미지명의 아픔을 딛고 신고 선수로 출발해 대한민국 최고 좌타자로 성장한 김현수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문우람의 팀 동료 안태영(28) 역시 ‘인간극장’ 주인공이다. 그는 2004년 삼성에 입단했지만 1군 타석에 서기까지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입단 이듬해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며 살길을 모색했지만 돌아온 것은 방출 통보였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트레이너, 사회인야구 심판, 생계형 노동 등 해보지 않은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다. 꼬여만 가는 바닥 인생에 지쳐갔지만, 이상하게도 야구를 향한 열정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2011년 11월 트라이아웃을 통해 고양 원더스에 입단했고, 지난해 넥센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2군에서 넥센 코치들의 집중 조련으로 ‘선수’ 안태영으로 다시 태어났다. 7월 27일 프로 첫 1군 출장에서 그는 감격적인 홈런을 쏘아 올렸다. 상대는 그의 친정팀 삼성이었다.
지난해까지 줄곧 삼성 2군에만 머물던 NC 김종호(29)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야구를 포기하려 했다. 그런 그에게 손을 내민 곳이 NC였다. NC는 신생팀 특별 지명을 통해 삼성에 10억 원을 주고 그를 데려왔다. 처음에는 격려보다 비난이 더 많았다. “네가 무슨 10억 원짜리냐?”라는 말도 숱하게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라운드에서 아낌없이 몸을 던지는 것으로 부정적 시선을 걷어냈다. 김경문 감독은 “눈빛이 다르다. 간절함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도루, 내야안타 부문 1위를 달리는 최고의 리드오프는 그렇게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