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일을 꿈에서라도 하고픈 욕망 때문일까. 꿈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 연인의 사랑 꿈, 복권 꿈 등. 무슨 꿈이든 다 만들어 파는 건 아니다. 이런 주문도 있었다. “꿈속에서라도 그놈을 죽이고 싶어요. 사례는 얼마든지 하겠습니다.” 그건 원칙에 어긋난 일이어서 거절했다.
꿈에서 죽음을 체험하게 해달라는 고객이 있었다. 전해오는 쇠락한 음성에서 그가 중환자란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런 의뢰를 하도록 했을 게다. 오토바이맨 기철방은 그의 소망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죽음이란 소재로 꿈을 만드는 중이다.
꿈을 어떻게 만드느냐고? 살짝 힌트를 준다면 융합기술 활용이다. 프로그래밍과 해킹, 그래픽, 인문학, 그리고 모종의 사회과학. 분명한 건 융합과 통섭을 알아야 한다는 거다.
철방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야경이 화려했다. 도시 야경보다 더 아름다운 별빛…. 생각이 별빛에 머물자 불현듯 죽음의 난해함에 한 줄기 섬광이 일었다. 이럴 때 철방은 생각의 마무리를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고속질주를 한다. 헬멧을 들고 사무실을 나선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 속 음성은 다급했다.
“다림아, 왜?”
“기사도 반질반질 다려야 해.”
그게 다림의 주장이다. 다림질을 해야 글 주름살이 펴지고 각이 선다.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다림은 녹초가 된다. 마감 다림질이 고되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사무실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전철을 탄다. 그날 눈을 떠보니 10시였다. 다림은 밖으로 나왔다.
붐비는 전철에서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열중해 있다. 앞에 앉은 여자가 내린다. 다림은 자리에 앉아 눈을 감는다. 반수면 상태인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옆에 앉은 녀석이 슬그머니 스마트폰으로 들어간다. 여린 얼굴이 대학생 같다. 녀석은 스누피로 변신해 공원을 산책한다. 갑자기 강도 두 명이 나타나 그를 때려눕힌다. 칼로 찌른다. 주머니를 뒤져 폰을 뺏는다. 강도들이 등을 돌리자 그는 벌떡 일어난다.
“내 폰 내놔!”
강도들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선다.
“이거 괴물 아냐? 죽은 놈이 다시 살아났네.”
“그래, 난 스누피 좀비다. 어쩔래?”
“좀비? 맛 좀 봐라.”
강도들의 시퍼런 칼날이 다시 그를 향한다. 그는 날아오는 칼날을 잡고 우적우적 씹는다. 강도들은 기겁하여 도망친다. 스누피 좀비는 그들을 쫓는다.
다림은 고개를 돌린다. 그의 몸은 보이지 않고 양손만 빠르게 움직인다. 맞아, 좀 전에 몸이 폰으로 들어갔지? 아니, 아냐. 다림은 눈을 질금 감았다가 떴다. 그사이 그는 폰에서 세상 밖으로 나와 다림을 향해 눈 수작을 건다. 슬금슬금 몸을 밀착한다. 폰 화면을 다림이 보게 각을 잡는다. 볼륨을 높인다. 이상한 신음이 들린다.
다림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본다. 모두 폰에 빠져 있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좀비였다. 머리는 스마트폰이고 몸과 사지만 사람이다. 손은 연신 폰을 눌러대며 뇌를 조정한다.
좀비들이 다림을 노려본다. 달려들 기세다. 전철이 서자 다림은 뛰어내린다. 좀비들도 뛰어내린다. 다림이 걸으면 그들도 걷고, 다림이 뛰면 그들도 뛴다. 다림은 절박한 심정으로 스마트폰을 든다.
“철방아, 무서워 죽겠어. 빨리 와줄 수 있니?”
철방의 오토바이가 영동대교 북단을 미친 듯이 달린다. 도착하니 다림은 혼자 길가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행인들은 그녀에게 관심도 없다.
“다림아!” 불러도 꼼짝하지 않는다.
“다림아!” 다시 불렀다.
“저리 가! 가까이 오지 말라고….” 다림은 소리친다.
“다림아, 나야 철방이!”
“철방이라고?”
다림은 고개를 든다. 그러다가 철방에게 안기듯 푹 쓰러진다.
다림을 데려다주고 철방은 다시 영동대교 남단을 내달린다. 다림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그의 생각이 고속질주만큼 빠르게 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바로 그거야. 좀비는 좀비로! 진보라가 잘해낼 수 있을 거야. 철방은 달리던 오토바이를 세우고 스마트폰을 든다. 전화 너머에서 보라의 음성이 들린다.
“오빠, 웬일?”
“좀비에 대해 찾아봐!”
“좀비요? 다른 프로그램이나 다른 사용자를 조종하는 악의적 컴퓨터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그건데 좀비를 잡는 좀비 모듈이 필요해.”
“오케이, 알았어요.”
# 해커 사수일은 하루 스물네 시간이 모자란다. 해커의 잦은 출몰 탓에 정보보호 관련 의뢰가 많다. 여기에 철방의 주문까지 맞춰줘야 한다. 보라가 잘해줘 고맙긴 하지만 좀비 잡는 좀비를 만들자니…. 수일은 밤샘을 한 보라에게 고개를 돌린다.
“잘돼 가?”
“거의요.”
“철방이 오기 전에 끝내야 하는데?”
“곧 끝나요.”
“그래, 고생이 많다.”
“좀비들의 활약상이 무척 재미있어요.”
수일에게 철방은 파트너다. 뭐든 독창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가진 녀석이다. 좀비만 해도 그렇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수일과 보라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다 끝났어요.”
“그래? 어디 한번 보자.”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철방이 들어온다.
“막 끝났어, 철방아.”
“그래? 보라가 우리 둘에게 좀비를 보내봐.”
보라의 손이 자판 위에서 꼼지락댄다. 수일과 철방은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폰에서 주먹 하나가 불쑥 튀어나온다. 둘은 화들짝 놀란다.
“보라 손맛 매운데?” 수일과 철방이 동시에 입을 연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다시 스마트폰을 해보세요. 제2탄 나갑니다.”
지켜보던 철방이 오른손을 들자 수일과 보라도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하이파이브! 보라야, 정말 수고 많았다.”
다음 날 아침 전철은 평소처럼 붐빈다. 검은 그림자가 휙휙 지나다닌다.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한다. 일곱 시 반, 드디어 괴성이 들린다.
“어?! 웬 주먹질이야?” 한 남자가 중얼거린다.
한 여자는 스마트폰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화들짝 놀란다. 고개 숙여 폰을 하던 사람들은 서로를 살핀다. 몇몇은 피식 웃으며 다시 폰을 한다. 한 녀석이 소리친다.
“이런 시발!”
그는 스마트폰을 던질 기세다. 인상을 찌푸리며 얼굴 닦는 시늉을 한다. 폰에서 사용자의 얼굴로 다시 오물이 튄다.
전철 안 풍경을 화면으로 모니터하던 철방과 보라가 낄낄 웃는다. 전철 안에서는 스마트폰 좀비가 약을 올린다.
“이래도 할래?”
“그래 할 거야! 한다고!” 녀석이 소리친다.
갑자기 스마트폰이 경기를 일으킨다. 오물이 사방으로 튄다. 오물 묻은 주먹이 얼굴로 향한다. 폰을 하던 녀석은 소리친다.
“너 죽을래?” 그러고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는다.
사람들의 시선은 전철 안 모니터에 집중해 있다. 그 소동이 고스란히 모니터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가 웃자 여기저기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온다. 그때 모니터에서 자막과 함께 음악이 흘러나온다.
고개를 드세요, 네? 우리 함께 만들어요, 향기가 나는 전철을요. 옆 사람을 보아요. 미소 띤 얼굴 보이시나요?
# 전철이 멈추자 좀비 그림자가 사람 사이를 뚫고 지나간다. 저쪽에서 오토바이맨은 스마트폰 자판을 연신 두들긴다. 그림자들은 홀린 듯 그의 폰으로 빨려든다.
꿈에서 죽음을 체험하게 해달라는 고객이 있었다. 전해오는 쇠락한 음성에서 그가 중환자란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런 의뢰를 하도록 했을 게다. 오토바이맨 기철방은 그의 소망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죽음이란 소재로 꿈을 만드는 중이다.
꿈을 어떻게 만드느냐고? 살짝 힌트를 준다면 융합기술 활용이다. 프로그래밍과 해킹, 그래픽, 인문학, 그리고 모종의 사회과학. 분명한 건 융합과 통섭을 알아야 한다는 거다.
철방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야경이 화려했다. 도시 야경보다 더 아름다운 별빛…. 생각이 별빛에 머물자 불현듯 죽음의 난해함에 한 줄기 섬광이 일었다. 이럴 때 철방은 생각의 마무리를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고속질주를 한다. 헬멧을 들고 사무실을 나선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 속 음성은 다급했다.
“다림아, 왜?”
“기사도 반질반질 다려야 해.”
그게 다림의 주장이다. 다림질을 해야 글 주름살이 펴지고 각이 선다.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다림은 녹초가 된다. 마감 다림질이 고되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사무실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전철을 탄다. 그날 눈을 떠보니 10시였다. 다림은 밖으로 나왔다.
붐비는 전철에서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열중해 있다. 앞에 앉은 여자가 내린다. 다림은 자리에 앉아 눈을 감는다. 반수면 상태인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옆에 앉은 녀석이 슬그머니 스마트폰으로 들어간다. 여린 얼굴이 대학생 같다. 녀석은 스누피로 변신해 공원을 산책한다. 갑자기 강도 두 명이 나타나 그를 때려눕힌다. 칼로 찌른다. 주머니를 뒤져 폰을 뺏는다. 강도들이 등을 돌리자 그는 벌떡 일어난다.
“내 폰 내놔!”
강도들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선다.
“이거 괴물 아냐? 죽은 놈이 다시 살아났네.”
“그래, 난 스누피 좀비다. 어쩔래?”
“좀비? 맛 좀 봐라.”
강도들의 시퍼런 칼날이 다시 그를 향한다. 그는 날아오는 칼날을 잡고 우적우적 씹는다. 강도들은 기겁하여 도망친다. 스누피 좀비는 그들을 쫓는다.
다림은 고개를 돌린다. 그의 몸은 보이지 않고 양손만 빠르게 움직인다. 맞아, 좀 전에 몸이 폰으로 들어갔지? 아니, 아냐. 다림은 눈을 질금 감았다가 떴다. 그사이 그는 폰에서 세상 밖으로 나와 다림을 향해 눈 수작을 건다. 슬금슬금 몸을 밀착한다. 폰 화면을 다림이 보게 각을 잡는다. 볼륨을 높인다. 이상한 신음이 들린다.
다림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본다. 모두 폰에 빠져 있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좀비였다. 머리는 스마트폰이고 몸과 사지만 사람이다. 손은 연신 폰을 눌러대며 뇌를 조정한다.
좀비들이 다림을 노려본다. 달려들 기세다. 전철이 서자 다림은 뛰어내린다. 좀비들도 뛰어내린다. 다림이 걸으면 그들도 걷고, 다림이 뛰면 그들도 뛴다. 다림은 절박한 심정으로 스마트폰을 든다.
“철방아, 무서워 죽겠어. 빨리 와줄 수 있니?”
철방의 오토바이가 영동대교 북단을 미친 듯이 달린다. 도착하니 다림은 혼자 길가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행인들은 그녀에게 관심도 없다.
“다림아!” 불러도 꼼짝하지 않는다.
“다림아!” 다시 불렀다.
“저리 가! 가까이 오지 말라고….” 다림은 소리친다.
“다림아, 나야 철방이!”
“철방이라고?”
다림은 고개를 든다. 그러다가 철방에게 안기듯 푹 쓰러진다.
다림을 데려다주고 철방은 다시 영동대교 남단을 내달린다. 다림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그의 생각이 고속질주만큼 빠르게 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바로 그거야. 좀비는 좀비로! 진보라가 잘해낼 수 있을 거야. 철방은 달리던 오토바이를 세우고 스마트폰을 든다. 전화 너머에서 보라의 음성이 들린다.
“오빠, 웬일?”
“좀비에 대해 찾아봐!”
“좀비요? 다른 프로그램이나 다른 사용자를 조종하는 악의적 컴퓨터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그건데 좀비를 잡는 좀비 모듈이 필요해.”
“오케이, 알았어요.”
일러스트레이션·오동진
“잘돼 가?”
“거의요.”
“철방이 오기 전에 끝내야 하는데?”
“곧 끝나요.”
“그래, 고생이 많다.”
“좀비들의 활약상이 무척 재미있어요.”
수일에게 철방은 파트너다. 뭐든 독창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가진 녀석이다. 좀비만 해도 그렇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수일과 보라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다 끝났어요.”
“그래? 어디 한번 보자.”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철방이 들어온다.
“막 끝났어, 철방아.”
“그래? 보라가 우리 둘에게 좀비를 보내봐.”
보라의 손이 자판 위에서 꼼지락댄다. 수일과 철방은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폰에서 주먹 하나가 불쑥 튀어나온다. 둘은 화들짝 놀란다.
“보라 손맛 매운데?” 수일과 철방이 동시에 입을 연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다시 스마트폰을 해보세요. 제2탄 나갑니다.”
지켜보던 철방이 오른손을 들자 수일과 보라도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하이파이브! 보라야, 정말 수고 많았다.”
다음 날 아침 전철은 평소처럼 붐빈다. 검은 그림자가 휙휙 지나다닌다.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한다. 일곱 시 반, 드디어 괴성이 들린다.
“어?! 웬 주먹질이야?” 한 남자가 중얼거린다.
한 여자는 스마트폰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화들짝 놀란다. 고개 숙여 폰을 하던 사람들은 서로를 살핀다. 몇몇은 피식 웃으며 다시 폰을 한다. 한 녀석이 소리친다.
“이런 시발!”
그는 스마트폰을 던질 기세다. 인상을 찌푸리며 얼굴 닦는 시늉을 한다. 폰에서 사용자의 얼굴로 다시 오물이 튄다.
전철 안 풍경을 화면으로 모니터하던 철방과 보라가 낄낄 웃는다. 전철 안에서는 스마트폰 좀비가 약을 올린다.
“이래도 할래?”
“그래 할 거야! 한다고!” 녀석이 소리친다.
갑자기 스마트폰이 경기를 일으킨다. 오물이 사방으로 튄다. 오물 묻은 주먹이 얼굴로 향한다. 폰을 하던 녀석은 소리친다.
“너 죽을래?” 그러고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는다.
사람들의 시선은 전철 안 모니터에 집중해 있다. 그 소동이 고스란히 모니터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가 웃자 여기저기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온다. 그때 모니터에서 자막과 함께 음악이 흘러나온다.
고개를 드세요, 네? 우리 함께 만들어요, 향기가 나는 전철을요. 옆 사람을 보아요. 미소 띤 얼굴 보이시나요?
# 전철이 멈추자 좀비 그림자가 사람 사이를 뚫고 지나간다. 저쪽에서 오토바이맨은 스마트폰 자판을 연신 두들긴다. 그림자들은 홀린 듯 그의 폰으로 빨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