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57) 전 대법관의 현직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다. 그는 지난해 11월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위원장직에서 물러난 뒤 마음껏 책 읽고 공부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로스쿨 학생들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을 분석하며 ‘오늘 대한민국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그가 최근 새삼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권익위가 일명 ‘김영란 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을 상반기 중 정부입법으로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히면서다.
김 교수가 권익위원장 시절 입안을 주도한 이 법의 골자는 공직자가 100만 원 이상 금품이나 향응을 받은 경우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하는 것. 지난해 8월 입법예고까지 했지만 반 년째 표류 중이다. 법무부 등 관련 부서의 비협조가 원인으로 꼽힌다. 현행 형법은 대가성 있는 금품수수만 뇌물죄로 처벌한다. 관가에서는 직무관련성이 없는 금품수수 일체를 공직자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 과정에서 입법이 차일피일 미뤄져왔다.
상반기 중 법 국회 제출…화제로 부상
그런데 권익위가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이를 다시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 김 교수도 거들고 나섰다. 최근 출간한 대담집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쌤앤파커스)를 통해 공직생활 도중 목격한 우리 사회 ‘권력형 부패’의 실상을 고백하며 ‘김영란 법’ 제정 필요성을 역설했다. 5월 7일 서강대 캠퍼스에서 만난 그는 “초임 판사 시절 모든 판사가 관행적으로 받는 촌지를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던 때부터 줄곧 이 문제를 고민해왔다”며 “공직자가 곤란한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가 없이 금품을 주고받는 게 왜 문제가 될까. 김 교수는 “그것이 우리 사회 권력형 부패의 대표적인 양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스폰서’라고 하죠. 그들은 무슨 대가를 요구하고 금품을 주지 않아요. 평소 아무 이유 없이 밥 사고 술 사고 용돈도 줍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예요. 그런 사이에서는 청탁을 할 때 굳이 따로 돈을 줄 필요가 없죠. ‘전화 한 통’이면 끝납니다. 그런 게 연줄 아닌가요. 현행 법제 하에서는 이런 행위를 대가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처벌하지 못해요. 하지만 그 고리를 끊지 않으면 절대 권력형 부패를 없앨 수 없습니다.”
실제로 일부 검사가 건설업자로부터 지속적으로 돈과 향응을 접대받아 기소된 사건에서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된 일이 있다. 김 교수는 “이런 풍토가 넓은 의미에서 계층을 고착화하고 좁은 의미에서 부정부패를 만든다”고 지적했다. 계층이 고착화하는 이유는 청탁이나 부패에 가담하려면 일단 그 무리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뇌물은 어쩌면 누구나 줄 수 있어요. 하지만 스폰서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우리나라 사회 지배층 구성원들은 울타리를 쳐놓고 그 안에서 서로 유대를 다지죠. 저는 그걸 ‘엘리트 카르텔’이라고 부릅니다. 그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은 ‘돈 줄 자격’조차 얻지 못하죠.”
김 교수는 자신의 판사 시절 경험을 예로 들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법조계에는 판사출신 변호사들이 ‘실비(室費)’라는 명목으로 판사실에 때때로 3만~5만 원의 촌지를 돌리는 관행이 있었다. 서로 잘 아는 사이끼리 평소 밥 사먹고 차 마시는 데 쓰라고 일정액을 후원해주는 스폰서 구실을 한 셈이다. 그는 “처음 그런 문화를 접하고 당황했지만 하루 종일 얼굴 보는 동료들 앞에서 ‘당신 왜 그러세요? 나는 안 받겠습니다’ 할 수 없어 그냥 넘길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사법시험 합격자가 늘어나고 사법연수원 졸업 뒤 판검사를 거치지 않은 채 바로 변호사로 활동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다.
“판사 출신 변호사들이 주는 실비는 자기가 잘 아는 사람에게만 주는 돈이었어요. 그런데 연수원 수료하고 바로 변호사가 된 사람들은 그런 통로가 없으니 판사에게 찍히는 게 아닐까 불안해하는 것 같더라고요.”
결국 친한 판사가 따로 없는 변호사들은 모든 방에 봉투를 돌리기 시작했다. 명절 때면 최대 5만 원짜리 상품권 같은 게 들어왔다. 돌려주고 싶었지만, 그게 오히려 해당 변호사에게 모욕이 될 것 같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돈을 안 받는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더 큰 상처나 차별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 김 교수는 “이게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다”고 조심스러워했지만, 당시 경험은 그가 우리 사회의 ‘연줄 문화’와 ‘엘리트 카르텔’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스폰서 문화’ ‘엘리트 카르텔’은 사회악
“2011년 권익위원장에 취임한 뒤 당시 기억이 떠올랐어요. 권익위는 ‘부패 방지’와 ‘국민 권리 보호’ ‘민원 해결’ 등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거든요. 어떻게 하면 부패를 막을 수 있을까, 특히 사회 전반을 절망에 빠지게 만드는 권력형 부패를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때 내린 결론이 우리 사회 특유의 연줄 문화를 없애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연줄’을 이용한 청탁은 꼭 돈이 개입되지 않고도 이뤄진다. 김 교수는 또 한 번 자신의 경험을 끄집어냈다. 초임 판사 시절 가까운 가족이 소액 사건 피고가 됐을 때 일이다.
“가족 일이니까 마음이 약해졌어요. 법정에도 안 나가고 일부 인정하는 답변서도 써낸 터라 이기게 해달라고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면피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담당 판사에게 연락을 드렸죠. 마침 한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살아서 내부 전화를 걸었어요.”
얼굴도 모르는 처지에 불쑥 사건 얘기를 꺼낸 김 교수를 선배 판사는 크게 나무랐다. 그는 “판사로서 내 체면이 뭐냐 싶을 정도로 혼이 났다. 그 일이 약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판사 시절 내내 그는 ‘인연’을 기반으로 한 수많은 청탁에 시달려야 했다.
아는 사람끼리 ‘전화 한 통’으로 서로 도와주고 도움 받는 ‘전통’이야말로 우리 사회 부패의 핵심이라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권익위 회의에서 이런 뜻을 밝히자 다른 직원들도 다 공감했다. 그 자리에서 뇌물을 받지 않거나 돈과 무관한 청탁도 처벌할 수 있는 법을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고, 담당부서에서 이를 바탕으로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 법이 만들어지면 업무 과정에서 연줄을 타고 들어오는 각종 청탁에 곤혹스러움을 느끼는 공직자도 보호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전직 상관이 난감한 청탁을 해올 경우 우리 문화에서는 딱 잘라 ‘안 됩니다’라고 하기 어렵지 않나요. 이 법은 그들이 청탁을 거절할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김영란 법’ 제10조는 ‘공직자가 부정청탁을 받았다고 판단하는 때에는 부정청탁을 한 자에게 그 행위가 부정청탁임을 알리고 이를 거절하는 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해야 한다. 다만 그 부정청탁이 거듭되는 때에는 소속기관장 등에게 그 사실을 서면으로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엘리트 카르텔’이 굳건한 우리나라에서 과연 이 법이 제정될 수 있을까. 김 교수는 그러리라 믿는다.
“정부입법이 안 되면 의원입법이라도 하겠다고 관련 자료를 부탁하는 의원들이 있어요. 지난 대통령선거 때 새누리당 정치쇄신위원회에서 내놓은 ‘대통령 친인척 및 특수관계인 부패방지법’에도 이 법의 핵심내용이 반영돼 있고요. 어떤 방식으로든 법이 제정되면 우리 사회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그가 최근 새삼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권익위가 일명 ‘김영란 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을 상반기 중 정부입법으로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히면서다.
김 교수가 권익위원장 시절 입안을 주도한 이 법의 골자는 공직자가 100만 원 이상 금품이나 향응을 받은 경우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하는 것. 지난해 8월 입법예고까지 했지만 반 년째 표류 중이다. 법무부 등 관련 부서의 비협조가 원인으로 꼽힌다. 현행 형법은 대가성 있는 금품수수만 뇌물죄로 처벌한다. 관가에서는 직무관련성이 없는 금품수수 일체를 공직자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 과정에서 입법이 차일피일 미뤄져왔다.
상반기 중 법 국회 제출…화제로 부상
그런데 권익위가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이를 다시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 김 교수도 거들고 나섰다. 최근 출간한 대담집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쌤앤파커스)를 통해 공직생활 도중 목격한 우리 사회 ‘권력형 부패’의 실상을 고백하며 ‘김영란 법’ 제정 필요성을 역설했다. 5월 7일 서강대 캠퍼스에서 만난 그는 “초임 판사 시절 모든 판사가 관행적으로 받는 촌지를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던 때부터 줄곧 이 문제를 고민해왔다”며 “공직자가 곤란한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가 없이 금품을 주고받는 게 왜 문제가 될까. 김 교수는 “그것이 우리 사회 권력형 부패의 대표적인 양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스폰서’라고 하죠. 그들은 무슨 대가를 요구하고 금품을 주지 않아요. 평소 아무 이유 없이 밥 사고 술 사고 용돈도 줍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예요. 그런 사이에서는 청탁을 할 때 굳이 따로 돈을 줄 필요가 없죠. ‘전화 한 통’이면 끝납니다. 그런 게 연줄 아닌가요. 현행 법제 하에서는 이런 행위를 대가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처벌하지 못해요. 하지만 그 고리를 끊지 않으면 절대 권력형 부패를 없앨 수 없습니다.”
실제로 일부 검사가 건설업자로부터 지속적으로 돈과 향응을 접대받아 기소된 사건에서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된 일이 있다. 김 교수는 “이런 풍토가 넓은 의미에서 계층을 고착화하고 좁은 의미에서 부정부패를 만든다”고 지적했다. 계층이 고착화하는 이유는 청탁이나 부패에 가담하려면 일단 그 무리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뇌물은 어쩌면 누구나 줄 수 있어요. 하지만 스폰서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우리나라 사회 지배층 구성원들은 울타리를 쳐놓고 그 안에서 서로 유대를 다지죠. 저는 그걸 ‘엘리트 카르텔’이라고 부릅니다. 그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은 ‘돈 줄 자격’조차 얻지 못하죠.”
김 교수는 자신의 판사 시절 경험을 예로 들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법조계에는 판사출신 변호사들이 ‘실비(室費)’라는 명목으로 판사실에 때때로 3만~5만 원의 촌지를 돌리는 관행이 있었다. 서로 잘 아는 사이끼리 평소 밥 사먹고 차 마시는 데 쓰라고 일정액을 후원해주는 스폰서 구실을 한 셈이다. 그는 “처음 그런 문화를 접하고 당황했지만 하루 종일 얼굴 보는 동료들 앞에서 ‘당신 왜 그러세요? 나는 안 받겠습니다’ 할 수 없어 그냥 넘길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사법시험 합격자가 늘어나고 사법연수원 졸업 뒤 판검사를 거치지 않은 채 바로 변호사로 활동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다.
“판사 출신 변호사들이 주는 실비는 자기가 잘 아는 사람에게만 주는 돈이었어요. 그런데 연수원 수료하고 바로 변호사가 된 사람들은 그런 통로가 없으니 판사에게 찍히는 게 아닐까 불안해하는 것 같더라고요.”
결국 친한 판사가 따로 없는 변호사들은 모든 방에 봉투를 돌리기 시작했다. 명절 때면 최대 5만 원짜리 상품권 같은 게 들어왔다. 돌려주고 싶었지만, 그게 오히려 해당 변호사에게 모욕이 될 것 같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돈을 안 받는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더 큰 상처나 차별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 김 교수는 “이게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다”고 조심스러워했지만, 당시 경험은 그가 우리 사회의 ‘연줄 문화’와 ‘엘리트 카르텔’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스폰서 문화’ ‘엘리트 카르텔’은 사회악
“2011년 권익위원장에 취임한 뒤 당시 기억이 떠올랐어요. 권익위는 ‘부패 방지’와 ‘국민 권리 보호’ ‘민원 해결’ 등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거든요. 어떻게 하면 부패를 막을 수 있을까, 특히 사회 전반을 절망에 빠지게 만드는 권력형 부패를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때 내린 결론이 우리 사회 특유의 연줄 문화를 없애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연줄’을 이용한 청탁은 꼭 돈이 개입되지 않고도 이뤄진다. 김 교수는 또 한 번 자신의 경험을 끄집어냈다. 초임 판사 시절 가까운 가족이 소액 사건 피고가 됐을 때 일이다.
“가족 일이니까 마음이 약해졌어요. 법정에도 안 나가고 일부 인정하는 답변서도 써낸 터라 이기게 해달라고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면피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담당 판사에게 연락을 드렸죠. 마침 한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살아서 내부 전화를 걸었어요.”
얼굴도 모르는 처지에 불쑥 사건 얘기를 꺼낸 김 교수를 선배 판사는 크게 나무랐다. 그는 “판사로서 내 체면이 뭐냐 싶을 정도로 혼이 났다. 그 일이 약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판사 시절 내내 그는 ‘인연’을 기반으로 한 수많은 청탁에 시달려야 했다.
아는 사람끼리 ‘전화 한 통’으로 서로 도와주고 도움 받는 ‘전통’이야말로 우리 사회 부패의 핵심이라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권익위 회의에서 이런 뜻을 밝히자 다른 직원들도 다 공감했다. 그 자리에서 뇌물을 받지 않거나 돈과 무관한 청탁도 처벌할 수 있는 법을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고, 담당부서에서 이를 바탕으로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 법이 만들어지면 업무 과정에서 연줄을 타고 들어오는 각종 청탁에 곤혹스러움을 느끼는 공직자도 보호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전직 상관이 난감한 청탁을 해올 경우 우리 문화에서는 딱 잘라 ‘안 됩니다’라고 하기 어렵지 않나요. 이 법은 그들이 청탁을 거절할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김영란 법’ 제10조는 ‘공직자가 부정청탁을 받았다고 판단하는 때에는 부정청탁을 한 자에게 그 행위가 부정청탁임을 알리고 이를 거절하는 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해야 한다. 다만 그 부정청탁이 거듭되는 때에는 소속기관장 등에게 그 사실을 서면으로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엘리트 카르텔’이 굳건한 우리나라에서 과연 이 법이 제정될 수 있을까. 김 교수는 그러리라 믿는다.
“정부입법이 안 되면 의원입법이라도 하겠다고 관련 자료를 부탁하는 의원들이 있어요. 지난 대통령선거 때 새누리당 정치쇄신위원회에서 내놓은 ‘대통령 친인척 및 특수관계인 부패방지법’에도 이 법의 핵심내용이 반영돼 있고요. 어떤 방식으로든 법이 제정되면 우리 사회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