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금융연수원 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앞에서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 단체인 ‘알바연대’가 최저임금 1만 원 요구 등 아르바이트생의 고충을 담은 엽서를 인수위에 전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용의 질 OECD 최하위인 30위
이런 이유로 불특정 다수이긴 하나 이제 비정규직 문제는 과거 문제에서 바로 지금 ‘내’ 문제, 그리고 ‘우리’의 미래 문제로 인식되는지도 모른다. 2012년 3월 기준 우리나라 비정규직 비율은 전체 노동자의 48%(837만 명)이며, 비정규직(138만 원)과 정규직(277만 원)의 임금 격차는 49.6%나 된다. 게다가 우리나라 저임금 계층 비율은 23.7% (421만 명)이며, 법정 최저임금 미달자는 170만 명(9.6%)이나 된다. 특히 비정규직의 사회보험(32~38%), 퇴직금(30.9%), 상여금(34.1%), 유급휴가(23.9%), 시간외 수당(17.5%) 적용률은 40%에도 채 못 미친다.
최근 비정규직 규모 자체는 그나마 감소 내지 정체 현상을 보인다. 하지만 고용 및 일자리와 연동해 기간제 계약직(14.7%)이나 파견직(1.1%)은 감소 추세인 반면, 파트타임(9.8%)이나 용역근로(3.8%)는 증가하고 있다(표 참조). 이 현상은 개별 기업에서 초단시간 근로(주 15시간 미만 근로)나 아웃소싱(외부 위탁)으로 하도급이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노동시장에서 고용불안과 저임금이 집중된 두 고용 형태의 증가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미래를 반영한 것이다.
서구와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증가는 경제적으로 내수기반을 약화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지지기반을 잠식한다. 사회적으로는 사회·경제적 갈등을 증폭해 사회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박근혜 정부도 국정과제에서 고용률 70% 달성이라는 일자리 목표와 함께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 해결, 즉 고용의 질에 관심을 나타낸다.
우리나라 고용의 ‘양’과 ‘질’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할 때 매우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고용의 양(22위)과 고용률(20위)은 그나마 중하위권이지만, 고용의 질은 30위로 최하위다. 우리나라 고용의 양은 동유럽이나 남유럽과 유사하지만, 고용의 질은 가장 낮아서 남유럽 국가들보다 크게 떨어지며, 멕시코와 가장 가까운 특징을 보인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정부 국정과제 140개 가운데 26개가 고용 및 일자리 정책과 관련돼 있다. 주요 내용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공공부문’(경찰, 소방, 사회서비스)과 ‘민간부문’(청년, 창업, 여성과 고령자, 해외 등)의 일자리 확대 정책이다. 또한 공공부문의 경우 2015년까지 비정규직을 해소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으며,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년 연장 및 연간 근로시간 단축까지 포함했다. 사실 우리나라의 연간 근로시간은 2200시간으로 OECD 회원국 평균(1651시간)보다 549시간이나 긴 편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장시간 노동의 해결방안으로 근로시간 저축휴가제나 대체휴일제 같은 정책을 내용으로 하는 법제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노사정 공동의 사회적 대화 필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가 증가할 경우 양질의 일자리(decent job)가 증가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노사정(勞使政) 삼자가 머리를 맞대고 사회적 대화를 해야 한다. 특히 청년실업 같은 문제는 전 세계적 현상이기에 어느 일방의 정책과 대안으로는 해결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지난 정부에서도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고용의 질을 높이는 일자리 대책의 실효성은 떨어져 보인다. 먼저, 현 정부의 고용률 70% 달성이라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과 정년연장(임금피크제 연동) 문제 등은 여성, 청년, 고령자 등 취약계층 일자리가 증가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일자리 대부분이 계약직이나 단시간 파트타임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일자리 증가는 애초 취지와 달리 고용의 질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서구와 달리 계약직이나 파트타임 혹은 파견직은 상대적으로 정규직과 동일한 임금(시간당)을 적용받지 못할 뿐 아니라, 사회보험 같은 사회안전망의 제도적 혜택에서조차 배제되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고용정책은 일자리의 양과 고용의 유연화에 초점을 맞추기에 일선 현장에선 파트타임이나 파견업체 채용이 더 늘어날 것이다. 이는 2013년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신규 채용의 10% 남짓이 파트타임 일자리로 채워질 전망’이라는 결과에서 추측할 수 있다.
물론 고용의 양과 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고용의 질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고용의 양도 늘리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려면 서구 사례처럼 고용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사정 공동의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도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덴마크나 핀란드처럼 직업훈련, 사회안전망 확충 등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과 소득분배 정책이 병행되지 않을 경우 이전 정부의 전철을 밟을 개연성이 높다. 과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정책은 어떤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 이젠 답을 기다려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