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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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가치 전달 고객을 먼저 보죠”

아모레퍼시픽 송진아 IOPE 브랜드매니저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3-03-18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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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품 가치 전달 고객을 먼저 보죠”
    연재기사를 진행하면서 여 팀장을 여럿 만났지만 자신이 만든 제품을 가져와 홍보한 이는 처음이다. 송진아(36) 아모레퍼시픽 IOPE(아이오페) 브랜드매니저(부장급).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피부가 투명하다. 2시간여 동안 대화를 나누며 공감대를 쌓은 뒤 비결을 묻자 “아이오페 덕분”이라고 답한다. 7년차 아이오페 마케팅 담당자답게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듯하다.

    송 팀장은 2001년 아모레퍼시픽에 입사해 SCM팀(Supply Chain Management Team)에서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PI팀(Process Innovation Team)에서 물류, 마케팅, 영업 개선 프로젝트, 6시그마추진팀에서 변화관리를 하며 회사의 업무 흐름을 파악했다. 그리고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현장업무에 뛰어들었다. 아이오페 마케팅에서 스템셀 라인, 더마 라인, 클리닉 라인에 이어 슈퍼바이탈 어드밴스(리뉴얼 제품), 에어쿠션 어드밴스를 개발했다.

    올해 팀장이 돼 팀원 13명을 이끄는 그는 지난해 첫아이를 출산한 워킹맘이다. 업무 파악하느라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하고 야근하기 일쑤지만 생활 만족도는 높다. 친정부모가 아이를 잘 돌봐주는 데다, 아이도 언젠가 일하는 엄마를 응원해줄 거라고 믿는다. 게다가 팀원들이 동료로 잘 지내던 사람들이라 소통이 수월한 편이다. 팀원을 부하가 아닌 동반자로 여기기 때문에 팀원들과 하루 세 번 이상 대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사내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까. 임번수 아모레퍼시픽 경영지원팀 부장은 그를 “우리 회사에서 업무 계획을 가장 명확하게 세우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운다. 보통 한 제품을 출시하는 데 6~12개월이 필요하지만, 송 팀장은 최단 기간에 최고 성과를 내기 때문이다. 마케팅 업무 속성상 여러 부처와 협의를 거치는데 그 업무를 효율적으로 이끈다고 한다.

    학창 시절 팀 프로젝트가 경쟁력



    송 팀장이 회사에서 인정받는 비결은 뭘까. 그 답은 학창시절에 있었다. 이화여대 경영학과 97학번.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그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마음에 주로 전공 수업을 많이 들었다. 전공 특성상 팀 과제가 많아 주말에도 학교에 나가곤 했다. 그 덕에 그는 ‘혼자 하기 어려운 일도 팀으로 하면 가능하다’는 걸 배웠다. 소득은 이것만이 아니다.

    “과제를 하려면 팀원이 모여야 하는데 한 사람이 번번이 안 된다는 거예요. 주중뿐 아니라 주말에도 아르바이트하느라 바쁘다는 거죠. 게다가 그 사람은 경영학 전공생이 아니라 관련 지식도 부족했어요. 다들 불만이 가득했죠. 그런데 그 언니는 발표를 기막히게 잘하더라고요. 그 덕에 성적도 잘 받고요. 사람 재능은 각기 다르다는 것을 그때 배웠어요(웃음).”

    대학 시절 사회 경험은 또 다른 자산. 그는 아모레퍼시픽 모니터단, 광고회사 모니터단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의견이 제품, 광고에 반영되는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보면서 결과물이 나오려면 다양한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점도 배웠다. 우연치 않게 광고회사에서 아모레퍼시픽 광고를 하면서 회사에 대한 호감도도 상승했다.

    이런 수순이라면 당연히 아모레퍼시픽에 입사할 법하지만 그는 정보기술(IT) 회사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전자상거래가 각광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분야를 개척하고 싶었다. 그러나 7개월간 일하면서 ‘내가 잘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판단이 들었다. 결국 그는 수시 채용으로 아모레퍼시픽에 입사했다. ‘잘할 수 있는 일을 재미있게 하자’ 싶었다.

    “첫 출근을 잊지 못해요. 전 직장에 비해 규모가 어마어마했죠. 컨설팅 인력을 포함해 직원 100여 명이 일사불란하게 회사 기반 시스템을 바꾸고 있었거든요. 생산, 물류, 구매, 인사, 영업, 마케팅 등 다양한 시스템을 개선했죠. 뭔가 개선책을 내려면 본업 자체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애를 먹었어요. 그 덕에 회사가 운영되는 큰 그림을 그렸어요.”

    뒤이어 프로젝트 이노베이션을 진행하면서 부문별 개선 사항을 찾았다. 하지만 끝내 개선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한 예로 초도(월초 주문량이 폭주하는 현상)를 해결할 수 없었다. 물류 양이 한꺼번에 몰리는 탓에 여러 어려움을 겪는데, 현장에서 이를 바꿀 수 없다고 반발한 것이다. 그럴수록 그는 현장에 가고 싶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드디어 그는 2007년 마케팅 부서로 발령받아 신제품을 기획해 생산했다. 물론 현장은 녹록지 않았다. 영업, 생산, 물류, 디자인, 연구소 등 20여 개 부처와 설득, 협의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게다가 여자가 많은 부서인 까닭에 상대방 생각, 컨디션 등을 고려해 섬세하게 소통해야 했다. 욕심이 앞서 다양한 기능을 넣으려다 보니 좋은 결과물도 낼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처음으로 스페셜 홈케어 제품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사용법이 어려워 소비자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했죠. 그때는 제품만 완전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품 외에 사용법, 판매방법 등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더라고요. 이제는 물건 자체가 아니라 제품 가치를 고객에게 전달하는 방법까지 고려합니다.”

    작은 성공은 큰 성공의 밑거름

    계속해서 생산하려면 배워야 하는 법. 그는 2010년 고려대에서 MBA를 시작했다. 주경야독했고, 그 결과 사고 틀이 넓어졌다. 대학원 동기생에게 남편을 소개받았으니 대학원 생활에서 얻은 것이 삶의 절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당하고 야무지게 살아온 송 팀장.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햇볕을 쬐기만 해도 얼굴에서 진물이 터져 나왔다. 당시 진물로 엉긴 피부를 감추려고 붕대를 감았기에 사람들은 그를 나병환자 취급했다. 그는 그때 피부 나쁜 사람들의 설움을 경험했고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어려움은 인간적 갈등이었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할 때 힘들었어요. 지적을 많이 받았죠. 후배들도 이런 경험이 한두 번쯤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후배들에게 하루하루 작은 성과라도 만들어보라고 권해요. 이것이 밑거름이 돼 또 다른 목표를 달성할 수 있거든요. 마음이 어려워도 결국 힘든 건 실체가 아니라 마음이니까 마음만 고쳐먹으면 되니까요.”

    물론 언제나 마인드컨트롤을 잘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그는 주문을 외운다고 한다.

    “그 상사가 항상 잘되면 좋겠고, 그 상사가 시키는 건 사소한 일이라도 잘하고 싶고 그럴 때가 있잖아요. 그런 분이 진정한 리더십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머리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가슴으로 지지해준 덕분이겠죠.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에게 보고서를 던지며 목적도 제대로 안 썼다고 지적해준 분이 지금도 저를 격려해주시는데요. 그분처럼 후배에게 애정을 갖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힘들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봐요. 힘든 일은 어떻게든 끝나더라고요. 어떻게든 하다 보면 길이 열리지 않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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