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원 지음/ 블루엘리펀트/ 220쪽/ 1만2000원
어찌 보면 장애란 인생에 있어 한낱 작은 가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인생의 가시는 아침마다 쿠링가이 사람들을 깨우듯이, 메마른 영혼을 일깨우고 마법 푸딩처럼 줄어들지 않는 사랑을 베풀게 하며 마침내 자신도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듭니다.”
두 살 때 걸린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저자는 대학을 마친 뒤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민을 떠났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호주의 작은 산골마을 쿠링가이에서 살고 있다. 지난 5년간 그곳에서 알게 된 장애인과 그들에게 헌신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를 편지 형식으로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이민자의 삶은 허공에 떠 있다고 한다. 그만큼 다른 나라에 정착하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배타적일 것 같은 호주 사람들은 무척 친절했다. 저자보다 서너 살 많은 아이븐이라는 친구는 늘 무릎을 땅에 댄 채 대화한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저자를 위해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그렇게 눈높이가 같아지면 고개를 바짝 쳐들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돼 편안하고, 또 자신감까지 생겨 서툰 영어가 술술 나온단다.
시드니에는 한국에서 저상버스라고 부르는 닐링버스가 수시로 다닌다. 말 그대로 ‘무릎을 꿇는다’는 뜻을 가진 이 버스는 기계를 이용해 승강구를 보도 높이까지 낮춰 장애인과 고령자가 쉽게 탑승할 수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담긴 것이다.
호주 장애인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저자가 만난 호주 장애인들은 가혹한 운명에 순응하기보다 열정적으로 운명을 개척하고 있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척추를 심하게 다친 브랜카는 휠체어테니스와 휠체어댄스, 경비행기 조종법을 배웠다.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보려고 장애인 친구들과 두 달간 유럽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허벅지 흉터를 아랑곳하지 않고 반바지 차림으로 라켓을 들고 코트로 뛰어드는 것은 물론, 동료에게 도움을 받아 패러글라이딩도 즐긴다.
벌목작업 도중 거대한 나무에 깔려 하반신이 마비된 마크 마치오리는 마음만 먹으면 호주 어느 곳으로든 날아갈 수 있다. 티모라에 있는 장애인항공학교에서 훈련을 거쳐 조종사 면허를 땄기 때문이다. 몸은 비록 불편하지만, 하늘을 날게 됨으로써 자신에게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을, 후배 장애인에게는 역경에 대한 응전을 보여준다.
멜버른 태생으로 양쪽 다리가 없는 워렌은 등반에 열중하고 있다. 하이킹 도중 떨어진 바위에 두 다리가 으스러지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 그는 인공 철제 다리를 무릎에 고정한 채 호주에서 최고로 험준한 산 크래들을 올랐고,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등반에도 성공했다.
저자 삶도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다. 지금도 틈만 나면 배낭을 꾸려 휠체어 뒤에 매단 채 훌쩍 여행을 떠난다. 혼자 떠나는 여행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인생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다는 사실과 인연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담백하지만 감동스러운 저자의 글에는 장애인 같은 약자와 소외된 이에 대한 배려, 세상을 보는 따뜻함이 녹아 있다. 삶을 뜨겁게 열심히 사는 저자에게 ‘한낱 작은 가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