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보컬학원에서 연습을 하는 학생.
서동주(15) 양은 요즘 보컬학원을 알아보느라 바쁘다. 방송사 오디션프로그램에 출연하려고 준비 중인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다.
방송사 오디션프로그램에 지원한 경험이 있는 이모(19) 양도 현재 보컬학원을 알아보고 있다. 그는 “원생이 너무 많아 대기해야 들어갈 수 있는 학원도 있다. 돈을 더 많이 주면 빨리 들어갈 수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1년째 강남에 있는 한 보컬학원에 다니는 조모(19) 군은 “오디션 열풍으로 원생이 10배는 늘었다. 30명도 안 됐는데 지금은 300명이 넘는다. 학원에 연습실이 부족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연습실 예약제’가 생겼을 정도”라고 말했다.
현장 미션 곡 미리 연습시켜
‘대국민 오디션’이라는 말처럼 208만 대 1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기록하며 Mnet ‘슈퍼스타K 4’(이하 슈스케)가 막을 올렸고, 이에 질세라 MBC TV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3’(이하 위탄)와 SBS TV ‘일요일이 좋다-K팝 스타 시즌2’도 예선이 한창이다. 많은 보컬학원이 이에 대비한 커리큘럼과 홍보에 열을 내고 있다. 학원들은 저마다 그동안 배출한 도전자의 이름도 내건다.
몇몇 이름난 학원을 찾아가 오디션프로그램 지원을 위한 수강상담을 받아봤다. A학원 관계자는 “웬만한 오디션프로그램 참가자는 다 우리 학원을 거쳐 갔다. 비리도 좀 있다. 심사위원으로 있을 때 제자를 만나는 경우도 많다. 서로 모른 척하고 눈빛으로만 신호를 보낸다. (현장에서 처음 공개되는) 미션 곡도 내가 먼저 알아내 제자들한테 알려줄 때도 있고. 오디션프로그램을 직접 경험해봤고 PD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봐서 어느 정도 노하우가 있다”고 말했다. B학원 관계자는 ‘방송사 오디션 준비반’을 추천하면서 “해당 오디션에 맞춘 준비가 필요하다. 노래 실력이 같아도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떨어진다. 그 이유는 전략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C학원에서는 “원장님이 슈스케와 위탄에서 지도를 맡았고 다양한 TV 오디션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해 오디션프로그램의 성향, 진행 방향이나 합격 노하우 등을 잘 안다”고 말했다.
각 학원 원장과 강사들은 홈페이지 프로필을 통해 오디션프로그램에서 트레이닝을 맡은 경험은 물론, 과거 가요제 출전, 가수 활동, 코러스 경력 등을 자랑했다. 실제 위탄 멘토로 유명한 연예인도 있었고, 심사위원이나 전담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한 사람도 있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서바이벌 오디션프로그램이 스타에 오르는 초고속 지름길이 돼 연예인지망생이 몰리고 있고 그 프로그램에서 요구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교육받는 단기 속성 강의도 늘었다. 일종의 방송 붐에 따른 맞춤형 프로그램의 증가”라고 말했다. 오디션프로그램의 여파는 학원뿐 아니라 개인 교습을 하는 음악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개인 교습을 찾는 수강생이 늘었기 때문이다.
오디션 대비반 수강료는 대부분 월 30만 원에서 60만 원 사이다. 수업방식은 학원마다 다르지만 일주일 1~3회이며, 개인 교습도 있고 단체 수업도 진행한다. 원생이 많은 탓에 대학 강의처럼 10명 남짓한 학생이 함께 듣는다. 오디션 대비반 수업은 주로 개인의 개성과 스토리를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점에서 입시 수업과 다르다. A학원 관계자는 “노래뿐 아니라 외적인 부분도 많이 신경 쓰고 준비해야 한다. 방송사 오디션프로그램은 그냥 노래대회가 아니라 구구절절한 사연을 요구하고 방송에서 ‘쇼’를 해줄 사람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선 심사 때부터 작가들이 참여해 도전자의 스토리를 검증하기 때문에 학원에서도 학생들과 상담을 자주 하면서 좋은 스토리를 많이 끌어낸다”고 말했다. 선곡도 마찬가지. 학생의 개성과 스토리를 살릴 수 있는 곡을 고른다. 그는 “주로 학생이 가진 목소리의 패턴, 색깔, 리듬감, 성격에 따라 선곡한다.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학생의 경우, 처음에 수줍게 인사했다가 노래를 부르는 순간 돌변할 수 있도록 상반된 느낌의 곡을 선곡한다”고 말했다. 또 국내 유명 곡은 기존 가수를 떠오르게 해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워 피한다. 오디션 성향과 심사위원에 따라 선곡이 달라지기도 한다.
일부 참가자는 학원 전전
요즘 보컬학원에서는 악기수업이 유행이다.
실제 강남 유명 보컬학원에서 레슨을 받는 학생, 개인 연습실에서 노래를 부르는 학생을 만났다. ‘학원 문 열 때 와서 문 닫을 때 간다’고 할 만큼 각자 원석을 다듬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학원에서 보내며 레슨을 받고 또 혼자 연습한다. 강원 강릉에서 상경해 학원에 다닌다는 함모(20) 군은 “그동안 TV 오디션프로그램에는 거의 다 나갔고 이번에는 슈스케에 지원했다. 표정이나 팔 동작을 어떻게 할지 등 노래 외적인 것도 학원에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인천에 사는 조모(19) 군도 강남 보컬학원에 다닌다. 그는 “슈스케에 한 번은 혼자 연습해 나갔고 두 번째는 학원에 다니면서 나갔는데 아무래도 뭣 모르고 오디션을 볼 때보다 트레이닝 받으면서 준비된 상태로 나가니까 자신감이 있었고 실력도 나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학원이 가진 상업성에 실망한 학생도 있다. 홍모(18) 양은 “오디션프로그램에 참가하려고 보컬학원에 두 달 정도 다니다 그만뒀다. 학생들이 현혹될 만한 커리큘럼이나 오디션을 내세워 등록했지만, 막상 다녀보니 수강료만 굉장히 비싸고 학생들의 노래 스타일을 강사 스타일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 같아 판에 박힌 교육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슈스케와 위탄 등에서 보컬 심사와 트레이닝을 맡았던 김민석 트레이너는 “방송사 오디션프로그램을 준비하는 학생이 학원에 다니면 합격 가능성은 높아지겠지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얘기는 아니다. 가능성이 없는 학생은 받지 말고 어설픈 희망보다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송사 오디션프로그램에 수차례 참가하면서 학원의 힘을 느꼈다는 이모(19) 양도 “학원들이 오디션프로그램 이름을 이용해 학생을 모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학원에서 미리 미션 곡을 알고 연습시킨다는 것도 오디션프로그램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덜 다듬어진 원석을 찾겠다던 대국민 오디션프로그램. 원석보다 맞춤 기량과 스토리로 무장한 이들이 오디션 시장에 넘쳐나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