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한국 출판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나라는 일본이었다. 해방 후 서로를 애써 외면하다가 1984년 이후 상대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한국 출판시장에서도 일본을 다룬 책이 인기를 끌었다. 그렇다고 서로를 좋은 시선으로 바라본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일본 때리기’, 일본에서는 ‘한국 혐오증’이 인기를 끌면서 객관적 서술보다 상대를 심하게 모멸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국을 다룬 일반서적 중 일본과 관련한 것 외에는 폭발적 인기를 끈 책이 없었다. 2001년 가을 갑자기 뜬 ‘이슬람’(이희수, 청아출판사)이 거의 유일하다. 그해 일어난 9·11 테러의 원인을 ‘문명의 충돌’로 규명하고자 하는 흐름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한 나라가 아닌 한 문명을 다룬 책이다. 예외적으로 이원복의 만화 시리즈인 ‘먼 나라 이웃나라’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이렇게 외국을 다룬 책의 인기가 실종된 데는 전 세계가 네트워크화된 원인이 클 것이다. 인터넷에서 소개하는 유명지에는 어김없이 한국 사람이 대대적으로 몰렸지만 이들의 욕구를 해결해줄 책은 별로 없었다. 다만 매우 세분화된 관심을 충족시켜주는 책이 그런대로 인기를 끌었다. 서양 문명의 종합 선물 세트인 터키, 산티아고 순례길로 유명한 스페인, 문화예술의 도시 뉴욕과 파리 등을 다룬 책의 출간이 늘어났다. 하지만 대형 베스트셀러로 기억에 남은 책은 없다.
과연 한국 출판시장을 달굴 나라는 어디일까. 필자는 그 유일한 나라가 미국이라 생각한다. 미국은 지금 뜨거운 감자다. 많은 사람이 ‘미국의 몰락’을 말한다. 특히 경제학자이자 미국 서던메서디스트대 교수인 라비 바트라는 ‘뉴 골든 에이지’(리더스북)에서 미국의 몰락을 단언했다. 바트라는 먼저 “경제정책의 부패”를 꼽았다. 그는 “미국 역사상 세금 부담이 가난한 사람에게 그렇게 많이 전가된 적은 없었다”면서 “도덕적 해이, 가족의 해체, 중산층의 몰락, 공직자들의 오만, 무질서, 급속히 확산되는 빈곤,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채, 만연한 범죄, 교실 내 부정행위, 말을 안 듣는 아이들, 빈곤층에 가중되는 세금 부담,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난한 사람의 희생을 대가로 점점 부유해지는 부자들이야말로 망하기 직전의 말기 증세”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하락 이후에는 ‘미국이 파산하는 날’(담비사 모요, 중앙북스), ‘미국의 종말’(나오미 울프, 프레시안북), ‘미국의 굴욕’(크리스 헤지스, 아름드리미디어),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에단 와터스, 아카이브) 등 미국의 ‘몰락’을 말하는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마치 1990년대 중반 ‘일본 때리기’ 책이 봇물 터지듯 나온 것처럼.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학과 교수의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동아시아)는 자신이 한때 ‘천국’으로 여겼던 미국이 왜 ‘지옥’으로 추락하는지를 쉽게 설명한 책이다. 김 교수는 미국의 쇠퇴를 가져오는 결정적 요인은 ‘경제적인 실패’가 아니라 “정직·정의·공평성을 바탕으로 신용이 미덕이 되는 신뢰사회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지적하는 이유들은 바트라의 지적과 일맥상통한다.
이 책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사회과학 서적으로는 이례적으로 2주 만에 7000부나 팔렸다.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열띤 반응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였던 미국이 추락한 이후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읽을 수 있다. ‘아메리칸 드림’이 무너졌으니 우리는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책에 들어 있는 정답을 스스로 찾아보길 바란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
외국을 다룬 일반서적 중 일본과 관련한 것 외에는 폭발적 인기를 끈 책이 없었다. 2001년 가을 갑자기 뜬 ‘이슬람’(이희수, 청아출판사)이 거의 유일하다. 그해 일어난 9·11 테러의 원인을 ‘문명의 충돌’로 규명하고자 하는 흐름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한 나라가 아닌 한 문명을 다룬 책이다. 예외적으로 이원복의 만화 시리즈인 ‘먼 나라 이웃나라’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이렇게 외국을 다룬 책의 인기가 실종된 데는 전 세계가 네트워크화된 원인이 클 것이다. 인터넷에서 소개하는 유명지에는 어김없이 한국 사람이 대대적으로 몰렸지만 이들의 욕구를 해결해줄 책은 별로 없었다. 다만 매우 세분화된 관심을 충족시켜주는 책이 그런대로 인기를 끌었다. 서양 문명의 종합 선물 세트인 터키, 산티아고 순례길로 유명한 스페인, 문화예술의 도시 뉴욕과 파리 등을 다룬 책의 출간이 늘어났다. 하지만 대형 베스트셀러로 기억에 남은 책은 없다.
과연 한국 출판시장을 달굴 나라는 어디일까. 필자는 그 유일한 나라가 미국이라 생각한다. 미국은 지금 뜨거운 감자다. 많은 사람이 ‘미국의 몰락’을 말한다. 특히 경제학자이자 미국 서던메서디스트대 교수인 라비 바트라는 ‘뉴 골든 에이지’(리더스북)에서 미국의 몰락을 단언했다. 바트라는 먼저 “경제정책의 부패”를 꼽았다. 그는 “미국 역사상 세금 부담이 가난한 사람에게 그렇게 많이 전가된 적은 없었다”면서 “도덕적 해이, 가족의 해체, 중산층의 몰락, 공직자들의 오만, 무질서, 급속히 확산되는 빈곤,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채, 만연한 범죄, 교실 내 부정행위, 말을 안 듣는 아이들, 빈곤층에 가중되는 세금 부담,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난한 사람의 희생을 대가로 점점 부유해지는 부자들이야말로 망하기 직전의 말기 증세”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하락 이후에는 ‘미국이 파산하는 날’(담비사 모요, 중앙북스), ‘미국의 종말’(나오미 울프, 프레시안북), ‘미국의 굴욕’(크리스 헤지스, 아름드리미디어),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에단 와터스, 아카이브) 등 미국의 ‘몰락’을 말하는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마치 1990년대 중반 ‘일본 때리기’ 책이 봇물 터지듯 나온 것처럼.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학과 교수의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동아시아)는 자신이 한때 ‘천국’으로 여겼던 미국이 왜 ‘지옥’으로 추락하는지를 쉽게 설명한 책이다. 김 교수는 미국의 쇠퇴를 가져오는 결정적 요인은 ‘경제적인 실패’가 아니라 “정직·정의·공평성을 바탕으로 신용이 미덕이 되는 신뢰사회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지적하는 이유들은 바트라의 지적과 일맥상통한다.
이 책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사회과학 서적으로는 이례적으로 2주 만에 7000부나 팔렸다.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열띤 반응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였던 미국이 추락한 이후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읽을 수 있다. ‘아메리칸 드림’이 무너졌으니 우리는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책에 들어 있는 정답을 스스로 찾아보길 바란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