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호주인이 맨리광장에 찾아와 태극기 게양식을 축하했다.
호주 전통 밴드(Australian Colonial Band)가 부르는 노래 ‘시드니’의 첫 대목이다. 오페라하우스 바로 옆에 있는 왕립식물원의 로즈가든에서 시드니의 10월이 향기롭게 피어난다는 내용으로 노래는 이어진다. 컨트리 뮤직 스타일 노래와 은은한 장미 향기를 만끽하며 왕립식물원의 언덕을 걸어 내려오면 시드니 동서남북으로 뱃길이 열리는 선착장이 나온다. 매년 10월 첫 주에 재즈페스티벌이 열리는 맨리 해변으로 가는 페리가 뱃고동을 울리면 갈매기 떼가 하얗게 피어오른다.
10월 1일 아침, 페리 갑판에 올라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시드니 물항(港)을 20분 남짓 즐기다 보니 어느새 맨리 선착장에 도착했다. 어디선가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올해로 33년째를 맞은 ‘맨리 재즈페스티벌’을 찾아온 거리의 악사들이 튜닝을 하고 있었던 것. 작은 반도에 조성된 맨리 시는 도시 주변에 금빛 모래사장과 ‘노퍽 파인트리’라는 이름의 해송(海松)이 이어져 있다. 세계적으로 소문난 해수욕장이라 늘 관광객으로 붐빈다. 특히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와 여성 토플리스족에게 인기가 높다.
‘다양한 콘셉트’와 연결 호평
이날 맨리 시에서는 태극기 게양식이 열렸다. 오전 10시 진 헤이 시장과 시민들이 국기 게양대 앞에 모였다. 김진수 시드니 총영사와 맨리 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부산 영도구 어윤태 구청장 일행이 도착하자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애국가 선율에 따라 태극기가 게양되자 높다란 야자수 나뭇잎 사이로 태극기와 호주 국기가 정겹게 펄럭였다. 200년 역사의 맨리 시에 사상 처음으로 태극기가 공식 게양된 순간이었다. 태극기 아래에 자리한 맨리 출신 전몰용사 추모탑에는 6·25전쟁에서 전사한 5명의 이름도 적혀 있어 더 의미가 있었다.
2010년 한국주간(Korean Week) 행사는 9월 30일 시드니총영사관 관저에서의 국경일 리셉션으로 시작됐다. 총영사관은 10월 3일 개천절을 앞두고 토니 켈리 뉴사우스웨일스 주 기획부 장관, 존 아퀼리라 의회대표(전 하원의장)와 배리 오패럴 자유당 당수, 존 하티건 News Ltd 회장 등 200여 명을 초청해 ‘국경일 축하의 밤’을 가졌다. 리셉션은 대성황을 거뒀고, 크게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호주 최고 권위의 ‘호주 젊은 연주가 상(Australia Young Performers Awards)’ 대상을 받은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원(25) 씨가 출연해 큰 박수를 받았다. 매년 180여 명이 참가해 8개월 동안 4차례 경연을 펼치는 콩쿠르에서 우승해 호주 클래식 음악계의 샛별로 등장한 김씨의 등장은 이날 함께한 인사들에게 뜻밖의 즐거움을 주었다.
시드니 소재 5개 시청에서 열린 태극기 게양식은 각 지역 특성에 맞게 진행됐다. 캔터베리 시는 자매결연을 한 서울 양천구의 특성을 살렸고, 현대자동차 호주법인이 있는 라이드 시는 한국 기업 홍보, 파라마타 시는 한국 전통문화 홍보에 초점을 맞췄다. 150여 명의 한국 유학생이 재학하는 NSI전문대학에서는 태극기 게양식과 더불어 4일 동안 한국주간 행사를 가졌다. 호주 학생들은 태권도 시범, 한국 민속공연, 한국 전통음식 축제를 즐기면서 “원더풀”을 연발했다.
실질 권한을 가진 호주 지자체들
이 학교는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 출신 유학생이 많이 재학하는 곳이지만 특정 국가의 행사를 갖기는 처음이다. 김진수 총영사는 “한국은 호주의 4대 교역국일 뿐 아니라, 두 나라 모두 국제사회로부터 주목받는 미들파워 국가여서 정치, 경제, 안보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우방국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호주 국민의 한국 인지도는 그렇게 높지 않다”며 “국가 단위의 외교가 현지 지역사회에는 잘 전달되지 않을 수 있기에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고 한국 국가브랜드를 제고한다는 차원에서 태극기 게양식에 다양한 콘셉트를 연결해보았다”고 말했다. 이른바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 외교’다.
호주는 연방정부(Federal Government), 주정부(State Government), 한국의 시·군·구에 해당하는 지방정부(Local Govern ment)의 기능적 특성을 확실히 구분 짓는다. 특정 분야의 외교는 연방정부가 아닌 주정부와 지방정부를 직접 상대해야 한다. 호주가 하나의 연방정부로 통합된 1901년 이전에는 6개 식민지정부가 따로 존재했기 때문에 지금도 주정부의 독립성이 강하게 남아 있다. 호주 헌법 51조에 명시된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기능 및 통치권 분담’에 관한 조항이 ‘느슨한 연방제’의 빌미를 제공한다.
연방정부가 국방, 외교, 금융, 통신, 해양 등에서의 권한을 갖는 대신 주정부는 교육, 경찰, 의료, 철도, 복지 등에서의 권한을 독점적으로 갖는다. 지방정부도 지역개발과 건축 관리, 공공문화, 공중위생 등에서의 권한과 책임을 갖는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전동차를 호주에 수출하려면 연방정부가 아닌 주정부를 상대해야 한다.
김 총영사는 “한국의 지방자치제가 뿌리를 내리면서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도 중앙집권적 현상이 남아 있다. 그러나 200년 가까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시해온 호주에서는 특히 지자체와의 활발한 교류가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자체를 찾아가서 함께 태극기를 게양하고 각종 부대행사를 열어 한국 문화를 알리는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펼칠 예정이다.
10월 6일 오전 11시, 시드니 중심가인 조지스트리트 일대에서 녹색 조끼를 입은 한국인들이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와 담배꽁초 등을 주워서 플라스틱 통에 담았다. 시드니총영사관 외교관들과 시드니한인회 등의 교민단체장들이 참가한 ‘한인 클린업 데이(Clean Up Day)’ 행사가 열린 것. 뉴사우스웨일스 주 상원의원과 여성 경찰 등 현지인도 동참했다.
2008년부터 매달 첫째 수요일에 실시하는 ‘한인 클린업 데이’는 교민 환경운동 자원봉사단체인 진우회와 시드니한인상우회 등이 주관하는 행사지만 이날은 특별히 한국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열렸다. 시드니한인상우회 송석준 회장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행사인데 시드니 시청에서 큰 관심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시드니 한국영화제 극장 입구(왼쪽). ‘한인 클린업 데이’ 행사 장면(오른쪽).
앞서 9월 18일 유엔이 주관하는 ‘클린업 더 월드(Clean Up the World)’ 행사에도 70여 명의 교민이 참가해 시드니 중심부를 흐르는 파라마타 강 청소작업을 펼쳤다. ‘클린업 더 월드’ 창시자인 이안 키어넌 클린업 오스트레일리아 총재는 “파라마타 강을 살리는 행사에 한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크게 감명받았다”고 소감을 표했다.
10월 1일부터 5일까지 제1회 시드니한국영화제도 큰 성과를 거뒀다. 호주에서 열린 첫 번째 한국영화제에 70% 이상의 유료 관객이 입장했다. 별 5개의 관객 평가를 받은 영화도 여러 편이었다. 김영수 홍보영사는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충분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한국 영화의 높은 작품성이 가장 큰 성공요인이었고, 영화제 기간에 헌신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친 30여 명의 자원봉사자의 공이 크다”고 설명했다.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워낭소리’를 관람하려고 5시간이나 운전하고 왔다는 로버트 우드 씨는 “내가 농부여서 농민의 애환과 서정이 담긴 다큐 영화라는 평을 접하고 빗길을 운전해서 왔다. 영화를 보면서 속으로 많이 울었다. 농촌이 무너져가는 모습이 호주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주간의 대단원은 10월 9일에 열린 ‘2010년 한국의 날’ 행사였다. 시드니한인회(회장 김병일) 주관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크리스티나 커닐리 뉴사우스웨일스 주 총리가 참석해서 한국의 날을 축하했다. 그동안 산발적으로 열리던 행사를 10월 초에 묶은 한국주간은 국가브랜드 제고 측면에서 큰 성과를 얻었다. 장미꽃 향기 그윽하게 흐르는 계절에 시드니 곳곳에서 태극기가 휘날리고, 한국 음악이 연주되고, 한국 영화가 상영되고, 한국의 날 행사가 열렸기 때문이다.
“시드니에 오시려거든 한국주간 행사가 펼쳐지는 10월에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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