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 인터넷 오픈마켓을 통해 판매를 시작한 저속전기차 ‘이존(e-ZONE)’의 시내 주행 모습.
‘세컨드리 차량’으로 틈새시장 노려
하지만 정작 저속전기차 업체들은 주가 하락은 일시적일 뿐 블루온의 등장이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블루온을 통해 전기차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커지면 저속전기차의 인지도도 높아질 수 있다며 호재로 여긴다. 실제 9월 13일 SK텔레콤의 인터넷 오픈마켓 11번가를 통해 판매를 시작한 CT·T의 저속전기차 ‘이존(e-ZONE)’은 10월 초 현재 52대가 팔리며 호조를 보이고 있다. CT·T 홍보팀 이준호 차장은 “현대차가 개발한 블루온과 같은 고속전기차는 가솔린 완성차를 대체하려는 것으로 저속전기차와 타깃 시장이 다르다”며 “저속전기차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활성화된 타운카(가까운 동네를 이용하는 차량) 개념으로 틈새시장을 노린다. 예컨대 일산 내부, 강남 내부를 돌아다닐 때 저속전기차를 ‘세컨드리 차량’으로 이용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특히 환경부가 9월 9일 전기자동차 육성 정책을 발표하면서 든든한 후원군도 얻었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전기자동차 보급을 위해 2012년까지 공공기관 전기차 구매를 촉진하는 차원에서 동급 가솔린차와 가격차의 50% 수준을 구매보조금(대당 2000만 원 한도 내)으로 지원하고, 자동차 취·등록 및 운행단계에서 세제 혜택(최대 310만 원)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환경부 교통환경과 관계자는 “이번 정책은 고속과 저속을 망라한다”며 “세제 혜택은 기획재정부와 협의해야 하는 부분이다. 구매보조금은 10월부터 출시되는 전기차를 대상으로, 도로주행을 비롯한 성능 실험 등을 통해 구체적인 지원 금액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속전기차 업계는 환경부의 방침을 환영하면서도 “줄곧 무관심하다 대기업이 움직이니까 생색을 내려 한다”며 서운한 감정을 보였다. 저속전기차 업체 한 관계자는 “저속전기차 연구개발 때는 일체의 지원금도 받지 못했다. 정부가 블루온 개발에 1년간 94억 원을 지원하면서도 중소기업들한테는 ‘알아서 자체 개발하라’는 게 말이 되냐”고 불만을 전했다.
물론 저속전기차 시장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속전기차 시장은 일부 관공서에 제한적으로 보급하는 데 그친 데다, 그나마 시장도 향후 고속전기차와 나눠 가져야 할 정도로 협소하다. 더욱이 속도와 안전성의 문제로 도로주행에 제한을 받고 있고, 도로주행 구간이 지정고시되지 않으면 저속전기차의 도로주행 자체가 불가능해 고속전기차에 비해 타격이 크다.
이에 저속전기차 업체들은 해외지사 설립과 전략적 제휴 등 해외시장 공략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CT·T는 지난 8월까지 미국, 일본 등지로 이존 500∼600대를 공급했다. 중국, 유럽에도 해외법인을 거점으로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전기차 ‘체인지’의 후속 버전을 준비하는 AD모터스는 지난 9월 중국 지사를 선전(深)에 세운 데 이어 10월에는 미국 지사를 캘리포니아 주에 세운다는 계획이다. 특히 국내에선 저속전기차를 중심으로 제품을 내놓고 해외에선 고속전기차로 승부를 건다는 방침이다. 전기차 시대의 도래가 저속전기차에 기회가 될지, 아니면 고속전기차에 밀려 도태하는 계기가 될지 그 후폭풍에 관심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