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선경, ‘Enfolding 280 Hours, installation’, 2009.
일명 흘리기 기법(dripping)으로 대형 캔버스를 불규칙한 선으로 가득 채운 작품 앞에서 농담 삼아 “저건 나도 할 수 있겠다”라고 말하는 친구도 많습니다. 물론 저도 할 수 있고 여러분도 할 수 있죠. 하지만 가장 먼저 시도한 작가가 잭슨 폴록이니 어쩌겠어요.
잭슨 폴록이 미술사에 남게 된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해볼게요. 첫째는 붓을 이성의 지배에서 자유롭게 만들었다는 거죠. 물론 전쟁 직후 예술가들이 더 이상 인간의 이성을 신뢰할 수 없게 된 것도 큰 몫을 했습니다. 둘째는 대형 화폭을 사용함으로써 작가 자신이 작품 속에 들어가 작품을 ‘몸’으로 경험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이가 앨런 카프로인데 미술관 뒤뜰을 자동차 타이어로 채운 뒤, 미술관을 찾은 관객이 타이어 위를 기어 올라가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Yard’(1960)라는 작품인데요.
잭슨 폴록과 다른 점이라면 미술의 재료를 물감이 아닌 일상 오브제(타이어)로 바꿨다는 것과 캔버스 대신 실제 환경을 작품으로 끌어들였다는 것, 그리고 폴록은 자신만이 작품의 경험자인 데 반해 카프로는 관객 역시 작품의 육체적 경험자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흐름은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데 주요 열쇠가 됩니다.
얼마 전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한국인 최초의 개인전이 열린다기에 호기심을 안고, 미술관 5층의 아이리스 앤 B 제럴드 캔터 갤러리로 향했습니다. 갤러리에 들어서는 순간 저도 모르게 “어머나”라는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거대한 붓이 갤러리의 흰 벽을 단숨에 훑고 지나간 듯한 모습에 제 몸을 좀더 가까이 벽에 기울이게 됐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벽의 드로잉은 물감이 아닌 검은색 마스킹테이프를 일일이 손으로 찢고 붙여 만든 게 아니겠어요? 원래 마스킹테이프는 캔버스에 붙여 물감이 그 밖으로 번지지 않고 깔끔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쓰는 재료인데요. 이를 물감 대신 사용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작가인 곽선경 씨는 자신과 재료의 거리가 사라지면서 폭발적인 자유로움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일필휘지’로 만든 것이 아니라 실은 280시간 정도 걸려 완성한 이 작품은 ‘280시간 껴안기’라는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작가가 껴안은 것은 시간만이 아닙니다. 캔버스 대신 실제 3차원적 공간을 작품 안으로 껴안은 것은 물론, 관객이 눈이 아닌 몸으로 작품을 체험할 수 있도록 껴안았습니다.
엄청난 육체노동의 증거인 찢어진 테이프 하나하나를 따라 갤러리 벽과 기둥 사이로 몸을 움직여가며 5km를 가다 보면 작품의 지각 방식이 어떻게 내 몸 안에서 변하는지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전시가 끝나면 모두 철거되는 곽선경 씨의 드로잉은, 그러나 작품을 체험한 공간과 관객에게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내면의 드로잉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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