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이란 얼굴에서 운명(길흉화복)을 보는 일이다. 얼굴에 나타난 그 사람의 됨됨이를 뜻하는 인상과는 구별된다. 사람은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이 가진 정보를 읽어내는 능력이 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몇 살 정도인지,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생물학적 정보뿐 아니라 교육수준, 성격, 현재의 감정상태, 나에 대한 호오(好惡) 같은 무형적인 것까지 1초도 안 돼 알아챈다. 모양, 색채, 움직임 등을 감지하는 광학적 경로를 통해 순간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능력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또 어떤 이는 광학적 경로만이 아니라 비광학적 경로로 상대방을 더욱 상세하게 파악하는 능력을 가졌다.
관상이나 인상에 대한 관심도는 나라마다 차이가 크다. 자신 또는 주변 사람의 운명을 알 수 있다는 관상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지대하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관상이 대중적 관심을 끄는 것은 다른 점술보다 ‘체질’에 맞기 때문이다. 한국인 중에는 우뇌형이 많다. 인구의 70% 정도가 좌뇌보다 우뇌가 발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뇌형 인구 비율이 20%인 유럽과 30%인 일본보다 월등히 높다.
얼굴을 보는 전문적 뇌회로 발달
우뇌는 주로 시각적 정보처리를 담당한다. 자연물의 모양과 움직임, 위치, 거리 등을 눈으로 측정하는 능력, 즉 형태감각과 공간감각이 우뇌의 기능과 상관있다. 한국 선수들이 활쏘기와 골프를 잘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형태와 공간감각이 우수하다 보니 얼굴 보는 능력도 탁월하다. 얼굴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응답속도 및 질을 다른 나라 대학생들과 비교해보면 한국 학생이 적어도 5배는 빠르고 신뢰도도 높다. 얼굴 기억력-얼굴 분별력-얼굴 판독력이 탁월한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얼굴을 보는 전문적인 뇌회로가 발달해 있고, 이것이 우선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런 한국인의 생물학적 뒷받침이 관상술에 대한 관심을 부추기는 한 원인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관상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첫째, 순수한 호기심 때문이다. 조물주가 인간의 얼굴에 감춰놓은 비밀을 알아내고 싶어 하는 지적 동기가 발동한 것이다. 두 번째는 대인관계에서 이익을 보기 위해서다. 사람들에게서 예기치 못하게 당할 수 있는 손해를 미연에 방지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될 사람을 선별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관상에 흥미와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이가 적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배운다고 누구나 고수가 되지는 않는다. 같이 배워도 이룸의 정도는 본인의 천품에 달려 있다.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시각적 정보처리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사람은 사진 찍듯 얼굴을 한 번에 보는 게 아니라, 여러 부분으로 나눠 본 뒤 이를 뇌에서 재구성한다. 이때의 재구성 프로그램이 사람마다 다르다. 따라서 조립한 상(像)도 다르게 마련이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람을 봐도 머릿속에 재구성된 얼굴은 제각기 다르다는 말이다. 사람마다 다르게 만들어놓은 뇌 속의 조립상 때문에, 당연히 해석에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누가 본 조립상이 정확한 것일까. 여기에서 고수와 하수가 구분된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해석하는 능력이나 비광학적 경로를 통한 인지능력에서 실력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의 과거가 기록된다. 사람의 모든 행동은 뇌의 정보처리 결과이고, 뇌가 정보처리를 하는 동안 생기는 신경전기가 얼굴이나 몸에 새어나와 흔적을 남긴다. 이 때문에 얼굴을 통해 어느 정도 그 사람의 과거를 알 수 있다. 가까운 과거라면 더욱 알아보기 쉽다.
사는 방식이 달라지면 인상도 바뀐다. 경험에 따라 뇌의 정보처리 방식이 바뀌고, 그 사람의 됨됨이가 만들어지고 변화할 수도 있다. 인상은 심상(心相)에서 온다. 인상은 본인 스스로의 마음가짐이나 생활의 습관화 같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 인상이 앞으로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는 관상과도 통한다.
인상에도 어느 정도 운명적인 요소가 있다. 예를 들어 인상이 좋다는 이유로 면접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면 인상으로 내가 선택된 것이기 때문이다. 타고난 관상이 피동적인 것이라면 인상은 능동적으로 개척할 수 있는 운명이다. 결국 인상과 관상은 통한다.
문제는 관상 때문에 생길 수 있는 폐해다. 관상은 선입견을 만들어 순수한 인간적 소통을 방해할 수 있다. 관상가들의 주장처럼 관상으로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확률이 80%라고 하자. 그러면 나머지 20%의 부정확함에서 오는 피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설사 관상이 맞더라도 모든 사람이 관상이 좋지 않은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미래지향적 새 상법 제시 필요
또 관상은 발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자칫하면 차단할 수도 있다. 좋지 않은 관상을 가진 사람이 이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자포자기에 빠질 수 있다는 말이다. 관상도 분명 사람이 가진 지적 사고의 산물이지만 이를 지나치게 신봉하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무슨 일이든 대중이 받아들여야 문화가 되고, 문화가 돼야 발전한다. 우리나라에서 관상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그런 만큼 대중적 관심도 높다. 따라서 관상에서 발생한 사회적 폐해에 대한 대처도 필요하다.
옛 상법(相法)의 대가들은 스스로 터득해 경지를 이룬 이 방면의 천재였다. 그렇다고 의고주의(擬古主義)에 매여 이들의 상법을 언제까지나 따를 수는 없다. 시대에 맞는, 가능하다면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상법을 제시해야 한다. 현대 한국인, 특히 1970년대 이후 출생한 한국인의 얼굴과 체격은 과거에 비해 크게 변했다. 길흉화복의 정의도 달라졌고 사회 분위기도 딴판이다. 직능이 단순해 관직이 유일한 출세길이던 과거에는 우뇌가 우세하여 인문학적 소양이 출중한 사람이 존경받았으나, 요즘은 수리 타산적인 좌뇌 우세형이 살아가기 유리한 세상이다.
관상에 대한 관심은 불경기일수록 높아진다. 불안심리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은 앞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을 듯하다. 사회의 정보량이 늘어나면서 이를 처리하는 좌뇌의 활동성이 커지는 대신 형태와 공간 지각력이 저하하는 데 따르는 변화다.
이런 생물학적 정보뿐 아니라 교육수준, 성격, 현재의 감정상태, 나에 대한 호오(好惡) 같은 무형적인 것까지 1초도 안 돼 알아챈다. 모양, 색채, 움직임 등을 감지하는 광학적 경로를 통해 순간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능력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또 어떤 이는 광학적 경로만이 아니라 비광학적 경로로 상대방을 더욱 상세하게 파악하는 능력을 가졌다.
관상이나 인상에 대한 관심도는 나라마다 차이가 크다. 자신 또는 주변 사람의 운명을 알 수 있다는 관상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지대하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관상이 대중적 관심을 끄는 것은 다른 점술보다 ‘체질’에 맞기 때문이다. 한국인 중에는 우뇌형이 많다. 인구의 70% 정도가 좌뇌보다 우뇌가 발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뇌형 인구 비율이 20%인 유럽과 30%인 일본보다 월등히 높다.
얼굴을 보는 전문적 뇌회로 발달
우뇌는 주로 시각적 정보처리를 담당한다. 자연물의 모양과 움직임, 위치, 거리 등을 눈으로 측정하는 능력, 즉 형태감각과 공간감각이 우뇌의 기능과 상관있다. 한국 선수들이 활쏘기와 골프를 잘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형태와 공간감각이 우수하다 보니 얼굴 보는 능력도 탁월하다. 얼굴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응답속도 및 질을 다른 나라 대학생들과 비교해보면 한국 학생이 적어도 5배는 빠르고 신뢰도도 높다. 얼굴 기억력-얼굴 분별력-얼굴 판독력이 탁월한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얼굴을 보는 전문적인 뇌회로가 발달해 있고, 이것이 우선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런 한국인의 생물학적 뒷받침이 관상술에 대한 관심을 부추기는 한 원인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관상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첫째, 순수한 호기심 때문이다. 조물주가 인간의 얼굴에 감춰놓은 비밀을 알아내고 싶어 하는 지적 동기가 발동한 것이다. 두 번째는 대인관계에서 이익을 보기 위해서다. 사람들에게서 예기치 못하게 당할 수 있는 손해를 미연에 방지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될 사람을 선별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관상에 흥미와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이가 적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배운다고 누구나 고수가 되지는 않는다. 같이 배워도 이룸의 정도는 본인의 천품에 달려 있다.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시각적 정보처리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사람은 사진 찍듯 얼굴을 한 번에 보는 게 아니라, 여러 부분으로 나눠 본 뒤 이를 뇌에서 재구성한다. 이때의 재구성 프로그램이 사람마다 다르다. 따라서 조립한 상(像)도 다르게 마련이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람을 봐도 머릿속에 재구성된 얼굴은 제각기 다르다는 말이다. 사람마다 다르게 만들어놓은 뇌 속의 조립상 때문에, 당연히 해석에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누가 본 조립상이 정확한 것일까. 여기에서 고수와 하수가 구분된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해석하는 능력이나 비광학적 경로를 통한 인지능력에서 실력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의 과거가 기록된다. 사람의 모든 행동은 뇌의 정보처리 결과이고, 뇌가 정보처리를 하는 동안 생기는 신경전기가 얼굴이나 몸에 새어나와 흔적을 남긴다. 이 때문에 얼굴을 통해 어느 정도 그 사람의 과거를 알 수 있다. 가까운 과거라면 더욱 알아보기 쉽다.
사는 방식이 달라지면 인상도 바뀐다. 경험에 따라 뇌의 정보처리 방식이 바뀌고, 그 사람의 됨됨이가 만들어지고 변화할 수도 있다. 인상은 심상(心相)에서 온다. 인상은 본인 스스로의 마음가짐이나 생활의 습관화 같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 인상이 앞으로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는 관상과도 통한다.
인상에도 어느 정도 운명적인 요소가 있다. 예를 들어 인상이 좋다는 이유로 면접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면 인상으로 내가 선택된 것이기 때문이다. 타고난 관상이 피동적인 것이라면 인상은 능동적으로 개척할 수 있는 운명이다. 결국 인상과 관상은 통한다.
문제는 관상 때문에 생길 수 있는 폐해다. 관상은 선입견을 만들어 순수한 인간적 소통을 방해할 수 있다. 관상가들의 주장처럼 관상으로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확률이 80%라고 하자. 그러면 나머지 20%의 부정확함에서 오는 피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설사 관상이 맞더라도 모든 사람이 관상이 좋지 않은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미래지향적 새 상법 제시 필요
또 관상은 발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자칫하면 차단할 수도 있다. 좋지 않은 관상을 가진 사람이 이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자포자기에 빠질 수 있다는 말이다. 관상도 분명 사람이 가진 지적 사고의 산물이지만 이를 지나치게 신봉하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무슨 일이든 대중이 받아들여야 문화가 되고, 문화가 돼야 발전한다. 우리나라에서 관상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그런 만큼 대중적 관심도 높다. 따라서 관상에서 발생한 사회적 폐해에 대한 대처도 필요하다.
옛 상법(相法)의 대가들은 스스로 터득해 경지를 이룬 이 방면의 천재였다. 그렇다고 의고주의(擬古主義)에 매여 이들의 상법을 언제까지나 따를 수는 없다. 시대에 맞는, 가능하다면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상법을 제시해야 한다. 현대 한국인, 특히 1970년대 이후 출생한 한국인의 얼굴과 체격은 과거에 비해 크게 변했다. 길흉화복의 정의도 달라졌고 사회 분위기도 딴판이다. 직능이 단순해 관직이 유일한 출세길이던 과거에는 우뇌가 우세하여 인문학적 소양이 출중한 사람이 존경받았으나, 요즘은 수리 타산적인 좌뇌 우세형이 살아가기 유리한 세상이다.
관상에 대한 관심은 불경기일수록 높아진다. 불안심리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은 앞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을 듯하다. 사회의 정보량이 늘어나면서 이를 처리하는 좌뇌의 활동성이 커지는 대신 형태와 공간 지각력이 저하하는 데 따르는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