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도넛부터 뉴욕에서 온 럭셔리한 유기농 수제품 도넛까지, 도넛 종류도 참 다양해졌어요.스트레스 받을 땐 초콜릿 도넛을 쇼핑해보세요.
마음이 허한 이번 주 ‘잇위크’의 ‘잇아이템’은 도넛입니다. 도넛은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가 참 높은 아이템이죠. 1000원짜리 컵라면이나 3500원짜리 백반을 혼자 먹으면 배는 부르지만 어쩔 수 없이 생계형 모드에 빠지게 돼요. 하지만 같은 가격으로 혼자 도넛을 먹는 건 나름 호사스럽고 럭셔리하답니다. 불경기일 때 럭셔리 브랜드의 립스틱을 사면 고개가 빳빳하게 세워지잖아요.
초콜릿과 땅콩이 덮인 별 모양 도넛이나 딸기 시럽이 코팅된 하트 모양 도넛은 퇴행 욕구를 느낄 때 선택할 만해요. 긴 직사각형의 바는 다른 사람과 나눠먹기 좋고요.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도넛 지존은 링도넛이죠. 저도 도넛이 빵 아닌 도넛임을 선언하는, 가운데 구멍 뚫린 동그란 링도넛을 가장 좋아해요. 링도넛은 지극히 합리적이면서도 모던하고 아름다운 형태죠. 바우하우스의 정신이 담긴 것 같기도 하고, 디자인의 클래식 같기도 해서 두 개의 원을 한참 바라봅니다.
그러나 같은 도넛도 참 다양해요. 교보문고 앞 포장마차에서 아저씨가 그 자리에서 튀겨주는 도넛이 있는가 하면─뜨거울 때 설탕(슈거파우더가 아니라)밭에 살짝 굴린 도넛은 세계 최고의 맛이죠─요즘은 뉴요커들이 좋아하고 이름도 어려운 도넛플랜트뉴욕시티라는 럭셔리 도넛이 인기랍니다.
‘커피 앤드 도넛’이란 카피로 유명한 던킨도넛은 회사와 집 근처 어디에나 가게가 있고 링도넛이 1000원 안팎의 ‘착한’ 가격이란 점이 좋아요. 도넛을 직접 고르니까 카운터 너머에서 집게를 두드리고 있는 직원에게 복잡한 도넛 이름을 제대로 발음해야 한다는 초조함도 없어요.
크리스피크림 도넛은 재벌회사 오너가 유학시절 즐겨 먹던 맛을 잊지 못해 들여왔다고 해서 유명해졌죠(여러 가지로 부럽습니다). ‘겨우’ 도넛가게 앞에 샤넬과 루이비통 백을 든 멋쟁이 여성들이 길게 줄 서 있는 모습이 재미있었고요. 여기선 도넛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데다, 기다리는 동안 베스트셀러 링도넛을 하나씩 주니까 미안해서라도 하나쯤 더 사게 돼요. 또 다른 재벌회사 GS리테일이 들여온 미스터도넛은 일본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라는데, 쫄깃한 맛이 개성 있어서 마니아가 많더라고요.
도넛플랜트뉴욕시티는 철과 나무로 이뤄진 ‘팩토리’(공장)스런 모던한 외관과 도넛타일로 구성된 인테리어 때문에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아니나 다를까, 일본에서 유명한 디자이너 스기야마가 인테리어를 맡았다고 하더군요. 도넛도 양극화를 겪고 있다면 도넛플랜트가 ‘하이엔드’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겠죠. 트랜스 지방 걱정도 없고,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달걀도 들어 있지 않은 유기농 수제품이라는데, 그래서인지 오후에 가면 도넛이 ‘매진’된 경우가 많더라고요(웨이팅 리스트라도 써야 하나요?). 크기는 일반 도넛의 약 1.6배 되는데 가격은 3, 4배쯤 돼요.
도넛 시장이 매년 30%씩 성장해서 올해 2000억원쯤 된다고 해요. 단것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도넛에 관심이 많은 건, 바로 도넛가게 창업을 원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죠. 도넛을 앞에 놓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머릿속이 복잡할 땐 도넛 쇼핑을 해보세요. 가을 성수기를 맞아 도넛가게들마다 아몬드와 계피,커피를 넣은 도넛들이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나와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