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장한 이인제 의원의 선영(논산시 연산면 어은리). 이장한 무덤 뒤에 험석(險石)이 눈에 띈다(오른쪽).
전통적으로 이장을 하는 데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조선 후기 왕실과 사대부들에게 풍수 고전으로 읽혔던 ‘인자수지(人子須知)’에는 이장을 해야 할 다섯 가지 경우를 열거하고 있다.
‘무덤이 가라앉을 때, 무덤의 풀이 말라죽을 때, 집안에 음란한 일이 생기거나 젊은 사람이 죽을 때, 집안에 패역무도한 인물이 나거나 다치는 일이 거듭될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산이 없어지고 재판이 거듭될 때’다.
조선시대에도 까닭 없이 이장 금지
다섯 가지 경우 모두 반복적으로 발생할 때 이장을 해야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이장하려고 봉분을 파헤쳤는데 광중(壙中·시체가 놓이는 무덤의 구덩이 부분) 상태가 좋으면 중단해야 한다’는 단서도 달아놓았다. 이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장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이 의원 선영의 경우 특별히 이장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비록 그가 대권을 잡는 데 실패했지만 당시 엄청난 지지를 받았고, 지금도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영 이장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그것이 풍수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필자도 그런 분위기 조성에 일조한 바 있다. 다름 아니라 2002년 ‘신동아’(2월호)에 이 의원 선영에 대해 풍수적 감정을 해놓았는, 당시 그리 좋게 평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고문(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의 조부 묘와 모친 묘는 산의 얼굴이 아니라 등에 해당한다. 즉 배신을 당할 수 있는 형세다. 특히 저 멀리 보이는 계룡산 정상을 포함해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우백호의 기세가 무섭다. …자칫하면 천옥(天獄·산이 가깝게 둘러싸여 있는 험악한 지형)이 될 수 있는 자리다. 이 무덤을 향해 불어오는 역풍 역시 만만치 않다.”
필자가 이렇게 감정한 것은 당시 이 의원이 민주당 ‘황태자’로서 가장 강력한 대권 후보여서 ‘대권이 가능한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땅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점을 뺀다면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는 자리다.
그렇다면 새로 이장한 자리는 풍수적으로 어떤 곳일까? 새로 이장한 자리는 기존의 자리에서 멀지 않은 맞은편 산 능선으로 옮겼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선문대에서 교양과목으로 풍수 강의를 하는 최낙기 선생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산의 얼굴이 아닌 등 쪽에 모셔 청룡백호가 모두 무정(無情)하다. 돌줄(石脈)을 보고 자리를 잡은 듯하지만 혈장이 형성되지 않아 불안정한 자리다. 그러나 이전 자리보다는 밝아 보여 좋다. 아마추어 지관이 잡은 자리로 보인다.”
한마디로 ‘오십보백보’가 아니라 ‘오십보육십보’라는 이야기다. “더구나 무덤 뒤의 험석(險石)들은 풍수에서 극도로 꺼리는 금기사항인데 이를 범하고 있음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이인제 의원이 정치인이기 때문에 이러 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취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로서 많은 권력 지향자들이 조상의 무덤을 명당으로 옮겼다는 소문이 나돈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의지’도 참된 자아와 타자의 완성(成己成物·자신과 사회 모두의 완성)을 지향할 때 국민들과의 진정한 교감이 이루어지며, 길지(吉地) 역시 절로 주어진다는 것을 점을 알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