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생동하는 5월 회사원 K 씨는 가족과 함께 주말 나들이에 나섰다. 그런데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던 K 씨의 얼굴이 갑자기 찌푸려졌다. 디지털카메라의 전원을 표시하는 부분에 빨간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1회용 건전지를 사다 끼워도 전원이 오래가지 않으니 모처럼의 나들이가 김이 빠질 수밖에 없다.
IT(정보기술) 산업이 발전하면서 휴대전화나 노트북, 디지털카메라, MP3 플레이어 등 휴대용 전자제품을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는 세상이 됐다. 이들 제품은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발전해가는데,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전원(電源·battery)이다.
휴대용 전자제품들은 충전지의 수명이 길지 않아 자주 충전시켜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K 씨의 경우처럼 난데없이 전원이 소진돼 사용자를 난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더욱 세고 오래가는 전원 개발 경쟁에 불을 당겼고, 최근 미국에서 개발된 10년 이상 쓸 수 있는 전지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로체스터 대학 컴퓨터공학부 필립 포쳇 교수팀은 획기적인 ‘원자력 전지(Nuclear Battery)’를 개발해 재료과학 분야의 권위지인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 최근호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개발한 원자력 전지의 기술을 베타배트사로 바로 이전했기 때문에 상용화된 제품이 곧 나올 전망이다.
기존 원자력 전지 10배 이상 효율
원자력 전지 자체는 이미 반세기 전에 개발된 발명품이다. 그런데 이번에 포쳇 교수팀이 원자력 전지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이다. 1954년 미국 RCA 연구소에서는 트리튬 등 방사성 동위원소에서 나오는 β선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해 전력을 발생시키는 원자력 전지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원자력 전지는 특수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원자력 전지의 원리는 가정집 지붕에 설치돼 있는 태양전지와 매우 흡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태양전지는 태양에서 나오는 빛 입자를 포착해 전류를 만드는 반면, 원자력 전지는 태양 대신 방사성 동위원소에서 나오는 전자를 포착해 전류를 만든다.
전자의 움직임을 붙잡아 전기를 만드는 것은 반도체의 광기전력 효과에 바탕을 두는데 p형 반도체와 n형 반도체를 조합하면 된다. p형 반도체와 n형 반도체를 붙여놓으면 반도체 내부에 전자가 들어가서 음의 전하(전자)와 양의 전하(정공)를 만든다. 발생된 전자와 정공은 각각 n형과 p형 반도체로 이동해 양쪽의 전극에 모아진다. 이 두 전극을 도선(導線)으로 연결하면 전류가 흐른다는 원리다.
문제는 에너지 측면에서 봤을 때 원자력 전지가 태양전지보다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필요한 만큼의 전기를 얻기 위해서는 값비싼 원료를 많이 사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원자력 전지의 성능이 떨어지는 이유는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하면서 방출되는 β선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서 한곳으로 모아 전자의 흐름으로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포쳇 교수는 “지난 50여년 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이 원자력 전지의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했지만, 아직까지도 충분한 전류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면서 “이번 연구를 통해 기존의 원자력 전지보다 10배 이상 효율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포쳇 교수는 비교적 간단한 방법을 적용해 방사성 동위원소가 방출하는 β선을 더 잘 포착하는 전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표면이 평평한 실리콘 대신 작은 구멍이 수없이 나 있는 기판을 사용한 것이다. 연구팀은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구멍을 부식하는 방법을 사용해 실리콘 기판 위에 팠다. 구멍의 너비는 1㎛(마이크로미터, 1㎛는 1m의 100만분의 1), 깊이는 40㎛에 지나지 않는다.
원자력 에너지 사용 ‘태권V’ 상상 아닌 현실로
실리콘 기판 위에 판 구멍은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됐을 때 방출되는 전자를 최대한으로 붙잡는 구실을 한다. 마치 사람이 우물에 빠졌을 때 나오기 힘든 것처럼 전자가 어떤 방향으로 방출되든지 간에 벽에 부닥쳐 빠져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포쳇 교수팀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원자력 전지의 효율을 10배 높이는 데 성공했는데, 훨씬 균일하게 격자식으로 구멍을 만들면 160배까지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원자력 전지를 실제로 사용하려면 단어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포쳇 교수는 “전지 내부에서 방출되는 β선은 매우 미약하기 때문에 종이 한 장으로도 방사능 차폐가 가능하다”면서 “기존의 다른 전지처럼 밀봉하면 방사능을 방출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현재까지 원자력 전지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 때문에 자주 교체하기 힘든 특수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남극과 북극의 기상관측용 기기나 심해 탐사 장비, 인공위성의 전원 등이다. 이번에 개발된 원자력 전지가 상용화되면 훨씬 싼값으로 이들 분야에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력 전지를 좀더 작게 만들면 휴대용 전자제품에도 사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러면 10년 동안 충전하지 않아도 되는 휴대전화나 노트북 등이 가능하게 된다. 더욱 작게 만들면 심장 박동기 등 인체에 사용하는 의학장비에도 활용할 수 있다. 심장 박동기는 심장이 원활히 뛸 수 있도록 전기적 신호를 보내주는 장치로, 현재 리튬 이온 전지가 많이 사용되는데 5~6년마다 전지를 교체해줘야 한다는 불편이 있다. 이번에 개발된 원자력 전지를 응용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로봇 태권V, 마징가Z, 우주소년 아톰, 육백만불의 사나이 등 공상과학 만화나 영화에 등장해 큰 인기를 모았던 이들 주인공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원자력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로봇이나 사람 몸에 장착하려면 동력원은 원자력 전지임이 분명하다. 원자력 전지가 변신을 통해 획기적으로 성능이 개선되면서 막강한 원자력의 에너지를 직접 이용한다는 이런 공상이 더 이상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닐 전망이다.
IT(정보기술) 산업이 발전하면서 휴대전화나 노트북, 디지털카메라, MP3 플레이어 등 휴대용 전자제품을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는 세상이 됐다. 이들 제품은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발전해가는데,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전원(電源·battery)이다.
휴대용 전자제품들은 충전지의 수명이 길지 않아 자주 충전시켜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K 씨의 경우처럼 난데없이 전원이 소진돼 사용자를 난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더욱 세고 오래가는 전원 개발 경쟁에 불을 당겼고, 최근 미국에서 개발된 10년 이상 쓸 수 있는 전지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로체스터 대학 컴퓨터공학부 필립 포쳇 교수팀은 획기적인 ‘원자력 전지(Nuclear Battery)’를 개발해 재료과학 분야의 권위지인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 최근호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개발한 원자력 전지의 기술을 베타배트사로 바로 이전했기 때문에 상용화된 제품이 곧 나올 전망이다.
미국 로체스터 대학에서 개발한 원자력 전지의 모습.
원자력 전지 자체는 이미 반세기 전에 개발된 발명품이다. 그런데 이번에 포쳇 교수팀이 원자력 전지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이다. 1954년 미국 RCA 연구소에서는 트리튬 등 방사성 동위원소에서 나오는 β선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해 전력을 발생시키는 원자력 전지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원자력 전지는 특수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원자력 전지의 원리는 가정집 지붕에 설치돼 있는 태양전지와 매우 흡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태양전지는 태양에서 나오는 빛 입자를 포착해 전류를 만드는 반면, 원자력 전지는 태양 대신 방사성 동위원소에서 나오는 전자를 포착해 전류를 만든다.
전자의 움직임을 붙잡아 전기를 만드는 것은 반도체의 광기전력 효과에 바탕을 두는데 p형 반도체와 n형 반도체를 조합하면 된다. p형 반도체와 n형 반도체를 붙여놓으면 반도체 내부에 전자가 들어가서 음의 전하(전자)와 양의 전하(정공)를 만든다. 발생된 전자와 정공은 각각 n형과 p형 반도체로 이동해 양쪽의 전극에 모아진다. 이 두 전극을 도선(導線)으로 연결하면 전류가 흐른다는 원리다.
문제는 에너지 측면에서 봤을 때 원자력 전지가 태양전지보다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필요한 만큼의 전기를 얻기 위해서는 값비싼 원료를 많이 사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원자력 전지의 성능이 떨어지는 이유는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하면서 방출되는 β선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서 한곳으로 모아 전자의 흐름으로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포쳇 교수는 “지난 50여년 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이 원자력 전지의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했지만, 아직까지도 충분한 전류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면서 “이번 연구를 통해 기존의 원자력 전지보다 10배 이상 효율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포쳇 교수는 비교적 간단한 방법을 적용해 방사성 동위원소가 방출하는 β선을 더 잘 포착하는 전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표면이 평평한 실리콘 대신 작은 구멍이 수없이 나 있는 기판을 사용한 것이다. 연구팀은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구멍을 부식하는 방법을 사용해 실리콘 기판 위에 팠다. 구멍의 너비는 1㎛(마이크로미터, 1㎛는 1m의 100만분의 1), 깊이는 40㎛에 지나지 않는다.
원자력 에너지 사용 ‘태권V’ 상상 아닌 현실로
실리콘 기판 위에 판 구멍은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됐을 때 방출되는 전자를 최대한으로 붙잡는 구실을 한다. 마치 사람이 우물에 빠졌을 때 나오기 힘든 것처럼 전자가 어떤 방향으로 방출되든지 간에 벽에 부닥쳐 빠져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포쳇 교수팀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원자력 전지의 효율을 10배 높이는 데 성공했는데, 훨씬 균일하게 격자식으로 구멍을 만들면 160배까지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원자력 전지를 실제로 사용하려면 단어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포쳇 교수는 “전지 내부에서 방출되는 β선은 매우 미약하기 때문에 종이 한 장으로도 방사능 차폐가 가능하다”면서 “기존의 다른 전지처럼 밀봉하면 방사능을 방출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현재까지 원자력 전지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 때문에 자주 교체하기 힘든 특수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남극과 북극의 기상관측용 기기나 심해 탐사 장비, 인공위성의 전원 등이다. 이번에 개발된 원자력 전지가 상용화되면 훨씬 싼값으로 이들 분야에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력 전지를 좀더 작게 만들면 휴대용 전자제품에도 사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러면 10년 동안 충전하지 않아도 되는 휴대전화나 노트북 등이 가능하게 된다. 더욱 작게 만들면 심장 박동기 등 인체에 사용하는 의학장비에도 활용할 수 있다. 심장 박동기는 심장이 원활히 뛸 수 있도록 전기적 신호를 보내주는 장치로, 현재 리튬 이온 전지가 많이 사용되는데 5~6년마다 전지를 교체해줘야 한다는 불편이 있다. 이번에 개발된 원자력 전지를 응용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로봇 태권V, 마징가Z, 우주소년 아톰, 육백만불의 사나이 등 공상과학 만화나 영화에 등장해 큰 인기를 모았던 이들 주인공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원자력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로봇이나 사람 몸에 장착하려면 동력원은 원자력 전지임이 분명하다. 원자력 전지가 변신을 통해 획기적으로 성능이 개선되면서 막강한 원자력의 에너지를 직접 이용한다는 이런 공상이 더 이상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닐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