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그 옛날 중국 대륙을 격동의 소용돌이로 몰고 갔던 위-촉-오 삼국의 상쟁(相爭)이 국내 프로야구를 통해 환생한 느낌이다. 올 시즌 부동의 3강을 이루며 천하삼분의 대업을 이룬 두산 김경문(47), 롯데 양상문(44), 삼성 선동열(42) 감독. 희한하게도 이들은 각각 고려대 78, 79, 81학번 동문. 나이는 최대 다섯 살까지 차이 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김경문이 졸업반 때 양상문이 3학년, 선동열이 신입생으로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다.
서로의 속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고려대 출신 40대 사령탑 트리오의 대권 도전사가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차별화되는 지도 철학을 삼국지에 나오는 영웅호걸에 비유해 풀어본다.
●김경문 졸업반, 양상문 3학년, 선동열 신입생 한솥밥 먹었던 사이
때는 1년 7개월여 전인 2003년 가을. ‘국보’ 선동열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위원과 일본 주니치 코치 연수까지 4년간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그가 국내 지도자로 첫발을 내딛으려 하자 천하가 들썩거렸다.
이때 두산 김인식 감독(현 한화)은 ‘태양(SUN)’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재계약을 포기한 채 야인으로 돌아갔고, LG 이광환 감독은 계약 기간이 1년 남았는데도 2군행을 자처했다.
이 와중에 먼저 대권을 잡은 이는 LG 양상문 코치. ‘만년 꼴찌’ 롯데는 우승 가능성이 있는 팀을 원하는 선동열의 외면을 받자 차선으로 연고팀 스타인 양 코치를 택했다. 이에 취임 후 양 감독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선동열이 두산 사령탑이 될 경우에 대비해 대학 시절 찰떡궁합을 이뤘던 두산 김경문 코치를 수석코치로 내정한 것.
그러나 일이 제대로 되려고 그랬는지 꼭 일주일 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선동열에 대한 협상 우선권을 가졌지만 그의 다양한 요구를 다 들어주기가 벅차다고 판단한 두산은 울며 겨자 먹기로 영입 포기를 선언하고, 역시 차선책이었던 김경문 코치를 승격시켰다.
물론 이때는 이미 선동열의 마음이 전격 지원을 약속한 삼성에 기울어져 있던 상태. ‘사부’ 김응룡 감독이 5년 장기 계약의 세 번째 시즌을 치렀지만 차기 대권을 보장받은 ‘감독급 수석코치’로 내정돼 있던 상태였다.
이틀 후 선동열의 삼성행이 발표되자 ‘닭 쫓던 개’ 격이 된 다른 구단에서도 연쇄 대폭발이 일어났다. 선동열의 고향 팀 기아는 김성한 감독(현 군산상고)과 재계약했고, LG는 동기생 라이벌인 이순철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김인식 감독의 사퇴를 시작으로, 8팀 중 5팀의 사령탑을 들썩거리게 한 ‘선동열 지진해일’은 불과 3주일 만에 일어났다.
그로부터 1년 후 삼성은 계약이 1년 남은 김응룡 감독을 현장 출신 최초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올리고 선동열 수석코치에게 감독을 맡김으로써 천하삼분지계의 대미를 장식한다. 따라서 건국과 관련된 부분만 보면 선동열은 위(魏)의 조조, 양상문은 촉(蜀)의 유비, 김경문은 오(吳)의 손권을 연상케 한다.
한(漢)의 천자를 끼고 노른자위인 중원을 장악한 위는 삼성이다. 선동열은 이를 바탕으로 심정수, 박진만 같은 최고의 장수와 모사를 두루 끌어 모으는 복을 누렸다.
이에 비해 1987년 롯데를 떠나, 지금은 없어진 청보로 갔던 양상문은 대업을 이루지 못한 채 오랫동안 타 지역을 전전하며 고향 팀이 황폐해져가는 과정을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다. 공명(孔明)을 얻기 전 임협(任俠)의 우두머리에 불과했던 유비와 흡사하다.
김경문은 9년간 두산에서 우승컵을 두 번이나 안은 김인식의 후광이 커 보인다. ‘강동의 호랑이’로 불렸던 아버지 손견과 형 손책이 불의의 사고로 죽자 가업을 이어받아 더욱 번성케 한 손권이 바로 그다.
일생을 통해 조조가 유비를 끝까지 괴롭혔지만 손권은 함부로 넘보지 못한 게 삼성이 올해도 여전히 롯데에는 절대 강세(5승2패)를 보이는 반면 두산(2승4패)에는 애를 먹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롯데와 두산은 3승3패로 호각지세.
●대업은 누가 이룰 것인가
사실 이제 갓 사령탑에 오른 세 감독의 지도 철학을 논하는 것은 너무 이른 감이 있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현재진행형으로 훗날 역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당사자들도 이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은다. 게다가 이들은 지도자의 여러 유형 중에서 용장(勇將), 지장(智將)보다는 하나같이 덕장(德將)에 가깝다.
이들은 선발투수의 로테이션은 철저하게 지키고, 아주 형편없이 무너지지 않는 한 5이닝 이상을 보장한다. 타순이나 보직 변동도 거의 없다. 선수의 능력을 믿고 이들이 해보겠다는 의욕을 보이면 끝까지 밀어준다.
굳이 차이를 따지자면 선동열은 아버지, 김경문은 어머니, 양상문은 형님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도 결국은 서로 비슷하다는 얘기다.
먼저 양상문은 영화 ‘친구’에 나오는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4년 꼴찌 롯데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코칭스태프는 고교 시절부터 동고동락했던 선후배 동기생들로 꾸렸다. 이는 유비가 전국의 인재를 두루 등용한 조조 손권과는 달리 도원결의를 맺은 관우 장비와의 형제애를 기반으로 일사불란함을 자랑했던 것과 맥을 같이한다.
여기에 양상문은 자칫하면 조조로 비춰지는 석사 출신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지역적 특수성과 결합된 ‘부산 사나이’의 개념을 도입했다. 4년간 꼴찌로 어차피 더 이상 잃을 게 없는데 까짓것 죽든 살든 한번 해보자는 것.
이에 비해 선동열은 예전의 엄한 아버지는 아니지만 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오게 만드는 현대식 아버지의 모습이다. 전술은 물론 문학에도 능했던 조조처럼 개인의 역량을 놓고 보면 문무를 통달한 그를 따라갈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양준혁, 임창용 같은 슈퍼스타도 선동열 앞에 서면 스스로가 초라해 보이는 이유다. 때문에 선수들은 선동열이 한마디만 해도 귀 기울이게 되니, 절로 선수단의 통합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반면 김경문은 자상한 어머니의 전형이다. 모든 것을 대화로 풀어간다. 전혀 매를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처럼 호된 맛은 덜하다. 가끔씩은 잔소리로 들리기도 하지만 선수들은 결국 다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하해와 같은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1700여년 전 위-촉-오의 삼국지는 진(晉)의 무제(武帝)에 의해 끝났지만, 국내 프로야구의 삼국지는 바야흐로 시작이다. 과연 천하통일의 대업은 누가 이룰 것인가. 그 결말이 너무나 궁금하다.
서로의 속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고려대 출신 40대 사령탑 트리오의 대권 도전사가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차별화되는 지도 철학을 삼국지에 나오는 영웅호걸에 비유해 풀어본다.
●김경문 졸업반, 양상문 3학년, 선동열 신입생 한솥밥 먹었던 사이
롯데 양상문
이때 두산 김인식 감독(현 한화)은 ‘태양(SUN)’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재계약을 포기한 채 야인으로 돌아갔고, LG 이광환 감독은 계약 기간이 1년 남았는데도 2군행을 자처했다.
이 와중에 먼저 대권을 잡은 이는 LG 양상문 코치. ‘만년 꼴찌’ 롯데는 우승 가능성이 있는 팀을 원하는 선동열의 외면을 받자 차선으로 연고팀 스타인 양 코치를 택했다. 이에 취임 후 양 감독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선동열이 두산 사령탑이 될 경우에 대비해 대학 시절 찰떡궁합을 이뤘던 두산 김경문 코치를 수석코치로 내정한 것.
그러나 일이 제대로 되려고 그랬는지 꼭 일주일 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선동열에 대한 협상 우선권을 가졌지만 그의 다양한 요구를 다 들어주기가 벅차다고 판단한 두산은 울며 겨자 먹기로 영입 포기를 선언하고, 역시 차선책이었던 김경문 코치를 승격시켰다.
물론 이때는 이미 선동열의 마음이 전격 지원을 약속한 삼성에 기울어져 있던 상태. ‘사부’ 김응룡 감독이 5년 장기 계약의 세 번째 시즌을 치렀지만 차기 대권을 보장받은 ‘감독급 수석코치’로 내정돼 있던 상태였다.
이틀 후 선동열의 삼성행이 발표되자 ‘닭 쫓던 개’ 격이 된 다른 구단에서도 연쇄 대폭발이 일어났다. 선동열의 고향 팀 기아는 김성한 감독(현 군산상고)과 재계약했고, LG는 동기생 라이벌인 이순철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김인식 감독의 사퇴를 시작으로, 8팀 중 5팀의 사령탑을 들썩거리게 한 ‘선동열 지진해일’은 불과 3주일 만에 일어났다.
두산 김경문
한(漢)의 천자를 끼고 노른자위인 중원을 장악한 위는 삼성이다. 선동열은 이를 바탕으로 심정수, 박진만 같은 최고의 장수와 모사를 두루 끌어 모으는 복을 누렸다.
이에 비해 1987년 롯데를 떠나, 지금은 없어진 청보로 갔던 양상문은 대업을 이루지 못한 채 오랫동안 타 지역을 전전하며 고향 팀이 황폐해져가는 과정을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다. 공명(孔明)을 얻기 전 임협(任俠)의 우두머리에 불과했던 유비와 흡사하다.
김경문은 9년간 두산에서 우승컵을 두 번이나 안은 김인식의 후광이 커 보인다. ‘강동의 호랑이’로 불렸던 아버지 손견과 형 손책이 불의의 사고로 죽자 가업을 이어받아 더욱 번성케 한 손권이 바로 그다.
일생을 통해 조조가 유비를 끝까지 괴롭혔지만 손권은 함부로 넘보지 못한 게 삼성이 올해도 여전히 롯데에는 절대 강세(5승2패)를 보이는 반면 두산(2승4패)에는 애를 먹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롯데와 두산은 3승3패로 호각지세.
●대업은 누가 이룰 것인가
삼성 선동열
이들은 선발투수의 로테이션은 철저하게 지키고, 아주 형편없이 무너지지 않는 한 5이닝 이상을 보장한다. 타순이나 보직 변동도 거의 없다. 선수의 능력을 믿고 이들이 해보겠다는 의욕을 보이면 끝까지 밀어준다.
굳이 차이를 따지자면 선동열은 아버지, 김경문은 어머니, 양상문은 형님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도 결국은 서로 비슷하다는 얘기다.
먼저 양상문은 영화 ‘친구’에 나오는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4년 꼴찌 롯데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코칭스태프는 고교 시절부터 동고동락했던 선후배 동기생들로 꾸렸다. 이는 유비가 전국의 인재를 두루 등용한 조조 손권과는 달리 도원결의를 맺은 관우 장비와의 형제애를 기반으로 일사불란함을 자랑했던 것과 맥을 같이한다.
여기에 양상문은 자칫하면 조조로 비춰지는 석사 출신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지역적 특수성과 결합된 ‘부산 사나이’의 개념을 도입했다. 4년간 꼴찌로 어차피 더 이상 잃을 게 없는데 까짓것 죽든 살든 한번 해보자는 것.
이에 비해 선동열은 예전의 엄한 아버지는 아니지만 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오게 만드는 현대식 아버지의 모습이다. 전술은 물론 문학에도 능했던 조조처럼 개인의 역량을 놓고 보면 문무를 통달한 그를 따라갈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양준혁, 임창용 같은 슈퍼스타도 선동열 앞에 서면 스스로가 초라해 보이는 이유다. 때문에 선수들은 선동열이 한마디만 해도 귀 기울이게 되니, 절로 선수단의 통합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반면 김경문은 자상한 어머니의 전형이다. 모든 것을 대화로 풀어간다. 전혀 매를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처럼 호된 맛은 덜하다. 가끔씩은 잔소리로 들리기도 하지만 선수들은 결국 다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하해와 같은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1700여년 전 위-촉-오의 삼국지는 진(晉)의 무제(武帝)에 의해 끝났지만, 국내 프로야구의 삼국지는 바야흐로 시작이다. 과연 천하통일의 대업은 누가 이룰 것인가. 그 결말이 너무나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