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모 원작자 방학기씨.
정형수(이하 정): ‘감격시대’ ‘바람의 파이터’ ‘다모 남순이’ 등 선생님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렇게 인연이 닿을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드라마를 보시면서 ‘이게 아닌데’ 할 때도 있으시죠?
방학기(이하 방): 작가가 시청자들의 심리를 꿰뚫어보고 드라마의 인과관계, 갈등구조, 멜로라인 등을 잘 설정했어요. 작가의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들리는 듯해요.
정: 단행본으로 나온 네 권짜리 ‘다모’를 읽고 또 읽으면서 여러 번 시놉시스를 수정했습니다. 원작에서는 황보 종사관을 중심으로 얽혀 있는데 드라마에서는 채옥 중심으로 관계를 재배치했습니다.
방: 결과적으로 좋지 않습니까? 채옥과 황보의 안타까움이 젊은이들을 열광하게 하고 있죠. 서로 다가갈 수도, 그렇다고 안 다가갈 수도 없는 상황을 아주 잘 설정해놓았어요.
“액션 호쾌하지만 현실성 결여”
정: 하지만 원작의 캐릭터와 인물들의 관계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부분이 많아 아쉽습니다. 예를 들어 원작에서는 황보 종사관이 기생 벽화를 사랑하고 채옥은 종사관을 사랑하죠. 자신의 감정을 눌러야만 하는 채옥은 무예를 통해 감정표현을 대신합니다. 마치 무예가 애정행위처럼 그려지죠. 만화에서는 그것이 잘 살아나는데 드라마에서는 무술연기가 참 어렵습니다.
방: 10년 전부터 사극을 하는 PD나 영화제작자 가운데 ‘다모’를 탐내지 않은 사람이 없을 만큼 수차례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자는 제의가 있었어요. 그때마다 왜 그런지 내키지 않았습니다. 미루고 미루다 몇 년 전 MBC와 계약을 하면서 여주인공 채옥 역으로 딱 떠오르는 배우가 있었어요. 얼음여자 린칭샤(임청하). ‘동방불패’니 ‘동사서독’이니 많은 영화에서 임청하의 모습은 온몸에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살기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다모’를 드라마화하더라도 채옥 역을 맡을 배우 찾기가 정말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지금 하지원씨는 연기도 좋고 눈빛도 살아 있지만 무술을 통한 감정표현이 약해요.
정: 드라마나 영화의 무술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죠. 날아다니는 와이어액션은 호쾌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어요.
방: 드라마의 무술에 대해 좀더 이야기하자면, 기본적으로 남자의 무술과 여자의 무술은 달라요. 남자의 힘의 근원은 어깨고 여자는 엉덩이 쪽에서 힘이 나오기 때문이죠. 중국 18기를 보면 여자의 무술 중에 이런 게 있어요. 체구가 큰 남자가 덮쳐올 때 여자는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몸의 중심을 살짝 이동하면서 남자의 어깨를 쳐서 상대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낭심과 같은 급소를 쳐서 쓰러뜨립니다. 또 여자의 무술 중 가장 극적인 것이 손가락 튕기기예요. 덩치 큰 상대가 덮치는 순간 여자가 상대의 눈자위 사이를 손가락으로 튕기면 눈앞이 캄캄해진 상대는 주저앉아버려요. 그런 무술들을 보여주었다면 드라마 ‘다모’가 훨씬 더 깊은 인상을 남겼을 텐데…. 저로서는 채옥이 좀더 크고 강고하며 독립적인, 여성해방 운동가적인 모습으로 그려졌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어요.
정: 원작에서는 채옥이 양민의 딸로 나중에 광대패의 일원이 되어 무예를 배우게 되죠. 드라마에서는 양반가의 딸로 역모에 얽혀 집안이 풍비박산하는 바람에 관비로 급전직하해 다모가 되는데, 어떤 시청자가 이런 지적을 했습니다. ‘진정한 여성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보여주려면 채옥을 평민으로 그려야 하지 않겠느냐. 양반에서 노비로 전락한 것에 대한 복수심과 울분이 우선이 되면 진정한 민초들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요. 장성백도 마찬가집니다. 원작에서는 혁명을 꿈꾸는 역할이지만 드라마에서는 마치 복수를 위해 싸우는 것 같거든요. 솔직히 신분이 급전직하하는 쪽이 시청자들의 동정심을 유발할 수 있고, 언젠가 복권돼서 잘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가 작용해 흥행에는 유리하죠. 그런 점까지 지적하는 시청자들이 있으니 무서울 정돕니다. 그런데 요즘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가 황보윤입니다. 어떻게 보세요?
다모 방송작가 정형수씨.
정: 아이고,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그렇게 야비한 모습으로 그리면 큰일나죠. 현실이 힘든데 드라마까지 고통스러워서야. 위로받고 싶어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황보를 순정만화의 주인공 같은 캐릭터로 그렸습니다. 주인공들 외에도 마축지의 인기가 상당해요.
방: 하룻밤에 천리를 걷는다 해서 마축지 아니오? 만화는 정지화면이고 드라마는 동영상이니까 남다른 발놀림을 클로즈업하거나 하면 마축지라는 캐릭터를 좀더 극대화할 수 있을 텐데….
정: 예, 원작에서 마축지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리는 장면이 많이 나오죠. 드라마에서는 1회 엔딩 신인, 마축지가 시장통을 마구 달리는 장면에서 그런 분위기를 살리려 했지만 충분치 않았어요. ‘다모’를 무협멜로라고 하는데 저는 이 작품을 접하면서 싸움이라는 상황에서 가장 극적인 감정이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대신 죽을 수 있고, 대신 죽일 수 있고. 선생님께서는 ‘다모’뿐만 아니라 무협물을 많이 그리셨는데, 무협의 주제를 ‘두려움’이라고 하셨죠?
방: 최배달 선생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제가 처음 최배달 선생을 만났을 때 이런 질문을 했어요. ‘선생님, 무섭지 않았습니까?’ 그랬더니 그분이 하하하 하고 웃으며 전라도 사투리로 ‘방선상이 뭘 아는구나’ 하며 머리를 앞으로 콱 내밀어요. 그분 대머리거든. 20대 후반부터 30대까지 승부를 가릴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졌다며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를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재차 물었죠. “언필칭 투지니 투혼이니 하는 소리는 말짱 꽝이네요?’ 그랬더니 그분 말씀이 ‘그런 거 있다, 모든 두려움과 공포의 단계를 넘어서면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오늘 내가 죽더라도 죽는 값이나 하고 죽자는 생각이 들면서 투지가 생긴다’고 하더군요. 어설픈 삼류만화나 소설을 보면 처음부터 간이 커서 굉장한 용사인 것처럼 나오는데 그건 아니에요. 우리의 삶이 곧 두려움이고, 두려움에서 도덕과 윤리가 생겨나죠. 내가 무협물을 그리면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은 단순히 누구와 누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두려워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입니다.
정: 드라마 ‘다모’가 원작의 몇 퍼센트를 반영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원작의 향기가 얼마나 살아 있느냐가 중요하죠. 채옥의 비애와 슬픈 사랑에 시청자들이 감정이입을 할 수만 있다면 저로서는 성공했다고 봅니다.
방: MBC가 ‘다모’로 시작해 조선조 커리어우먼들의 이야기를 한번 시리즈로 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귀천을 막론하고 그들이 얼마나 명민하고 얼마나 잘난 여자인지 알려주는 작품을 써보세요.
마지막으로 원작만화의 재출간 계획에 대해 묻자 방씨는 “시중에서 원작을 볼 수 없다는 점이 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고 드라마 시청률을 높이는 데 일조하지 않았느냐”며 웃는다. 1300장에 달하는 원화가 언제쯤 다시 세상 구경을 하게 될지 ‘다모’ 팬들은 애가 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