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동안 도서정가제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던 교보문고가 ‘인터넷 교보문고’를 통해 대대적인 할인판매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교보문고측은 개점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그것도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30% 할인판매하는 것이라 해명했지만, 업계에서 교보문고가 차지하는 위상으로 보아 그 여파가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출판계는 교보문고의 할인판매로 인해 도서정가제 존폐를 둘러싼 논란이 재연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작년에 도서정가제를 놓고 인터넷 서점과 ‘혈전’을 벌인 출판계로서는 다시 이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악몽’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도서정가제보다 더 폭발력이 강한 ‘뇌관’이 논란의 배후에 숨어 있다. 출판계와 인터넷 서점 사이의 공방전을 지켜보면서 일반독자들이 출판사가 매긴 책값이 과연 적절한지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25년 전보다 9.3배 올랐을 뿐
실제로 작년의 정가제 논란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을 보면, 이 점을 문제 삼은 경우가 많았다. 할인판매를 하면 출판사의 이익이 줄기 때문에 정가제를 고수하려는 것이고, 인터넷 서점이 할인판매하는 것은 그만큼 책값에 거품이 많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정가제 파괴라는 발등의 불을 끄기에 정신이 없던 출판계는 네티즌들의 의구심을 속시원히 풀어주지 못했다. 일반독자의 의혹을 해소해 주지 않는다면, 정가제와 관련한 여론이 어디로 기울 것인지 분명하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시급히 해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내 책값이 적절한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책값을 어떻게 결정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한국출판연구소의 백원근 선임연구원은 책값 책정 유형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출혈형이다. 초쇄의 채산점을 최소화하는 것인데 중쇄 가능성이 높은 문예물·아동도서·학습참고서 등에 적용된다. 둘째는 코스트 플러스형(cost-plus pricing). 제작 원가에 일정이익을 더하는 형태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학술서가 이 유형에 든다. 셋째는 추종형(market pricing)으로 비슷한 책의 시중가격을 참고해 값을 정한다. 베스트셀러를 노리는 출판물의 책값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넷째는 절충형으로 이윤을 계상하지만 시중가격도 참조하는 형태다. 마지막으로 프라이스 라인형(price line pricing)이 있다. 정가를 미리 정하는 것을 말하는데, 구매욕구에 맞게 출판물을 개발하는 경우에 적용한다.
국내 출판사들은 주로 절충형 형태로 책값을 정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국출판사업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출판사의 61.5%가 유사도서의 가격을 참조하되 제작원가에 수익률을 감안하여 책값을 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사도서의 가격을 참고하지 않고 제작원가 및 수익률에 따라 정가를 정한다는 출판사는 19.4%에 지나지 않았고, 수익률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출판사의 유사도서 정가를 기준으로 삼는 출판사는 13.9%에 이르렀다. 이 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 우리 책값은 대체로 눈치가격이라 할 수 있다. 말이 좋아 절충형이지 책의 종류에 상관없이 시장에서 가격저항을 일으키지 않을 범위에서 책값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같은 책값 결정형태는 출판사가 충분한 수익률을 확보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 재판을 찍어야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형태로 책값을 결정한다. 일지사 김성재 사장은 ‘출판의 이론과 실제’에서 “영국이 직접생산비의 4배를, 일본이 3배를, 미국이 적어도 6배를 정가로 매기는 데 비해 우리 나라는 2배 반 안팎”이라 분석했다. 여기서 말하는 직접생산비란 종이값·인쇄값·제본값 등을 가리킨다. 책값 상승률도 일반 소비자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출판계에서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드는 예가 바로 설렁탕 값이다. 1975년 설렁탕 한 그릇 값은 256원이었는데, 1999년에는 4111원으로 16배 뛰었다. 영화관람료와는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무려 26배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에 책 한 권의 평균 가격은 9.3배 올랐을 뿐이다.
출판칼럼니스트 표정훈씨의 조사를 보면, 우리의 책값이 외국보다 훨씬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너선 스펜스의 ‘칸의 제국’의 번역본 책값은 1만3000원인데, 원서의 하드카버 값은 27.50달러(3만5750원, 이하 미화 1달러를 1300원으로 계산했다)나 된다.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최근 두 권의 양장본으로 재출간했는데, 각 권 정가가 8500원이다. 그런데 94년 출간한 원서의 정가는 15달러(1만9500원)다. 번역본 두 권을 합친 값이 한 권의 원서 정가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최근 번역 출간한 다니엘 핑크의 ‘프리에이전트의 시대가 오고 있다’의 원서 정가는 24.95달러(3만2435원)고, 이 책의 번역본 정가는 1만5000원이다.
국내 책값이 상대적으로 싼 편이라는 사실을 국제적으로 입증한 예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다. 우리나 미국이나 이 책이 번역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두 나라 책값을 비교하는 데 좋은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국내 번역본 정가가 7800원인 이 작품의 영어 번역판 정가는 13달러(1만6900원)다.
이같은 단순비교에서 반드시 참고할 사항이 있다. 번역본의 경우 해외 저작권자에게 지불하는 저작권료와 역자에게 주는 번역비를 감안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국내 저자에게 지불하는 인세가 10% 정도라면, 번역본에는 저작권료와 번역료에 최소 12%의 인세를 지출한다. 이런저런 요소를 포함하면 국내 책값이 외국의 경우보다 얼마나 싼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책도 엄연히 상품인 만큼 그 ‘교환가치’의 적절성을 문제 삼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아주머니 술도 싸야 사먹는다”고, 독자 입장에서 좀더 싼 값으로 원하는 책을 사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책값에 대한 불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것은 모든 상품에 대해 소비자들이 걸 수 있는 ‘딴죽’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맞이한 문제적 현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백해진다. 책값이 비싸다고 생각할 만큼 함량 미달의 책을 시장에 쏟아놓은 출판계에 1차적 책임이 있다. 눈앞의 이익에 연연해 허섭쓰레기 같은 책들을 양산한 출판계의 물량주의가 결국 할인판매와 책값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자칫하면 게도 구럭도 다 잃을 우를 범한 출판계의 자성이 요구된다.
독자에게도 당부의 한마디. “한 권의 책이 삶을 바꾼다”는 고전적인 발언들을 기억한다면 책은 여전히 ‘사용가치’의 측면에서 평가해야 하는 ‘문화상품’이다. 서점에 가보면(아니,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보면) 책이 넘칠 것 같지만, 막상 읽고 싶은 책을 찾으면 출판되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우리 출판은 아직 ‘보호관찰’ 대상이다. 이제 관심을 바꿔보자. 마땅히 나와야 할 책이 나왔는지, 그리고 나온 책은 제대로 쓰였고, 올바로 옮겨졌는지를 놓고 토론과 논쟁을 벌이자는 것이다. 책값 문제는 그 다음에 시비를 걸어도 결코 늦지 않다.
출판계는 교보문고의 할인판매로 인해 도서정가제 존폐를 둘러싼 논란이 재연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작년에 도서정가제를 놓고 인터넷 서점과 ‘혈전’을 벌인 출판계로서는 다시 이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악몽’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도서정가제보다 더 폭발력이 강한 ‘뇌관’이 논란의 배후에 숨어 있다. 출판계와 인터넷 서점 사이의 공방전을 지켜보면서 일반독자들이 출판사가 매긴 책값이 과연 적절한지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25년 전보다 9.3배 올랐을 뿐
실제로 작년의 정가제 논란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을 보면, 이 점을 문제 삼은 경우가 많았다. 할인판매를 하면 출판사의 이익이 줄기 때문에 정가제를 고수하려는 것이고, 인터넷 서점이 할인판매하는 것은 그만큼 책값에 거품이 많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정가제 파괴라는 발등의 불을 끄기에 정신이 없던 출판계는 네티즌들의 의구심을 속시원히 풀어주지 못했다. 일반독자의 의혹을 해소해 주지 않는다면, 정가제와 관련한 여론이 어디로 기울 것인지 분명하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시급히 해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내 책값이 적절한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책값을 어떻게 결정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한국출판연구소의 백원근 선임연구원은 책값 책정 유형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출혈형이다. 초쇄의 채산점을 최소화하는 것인데 중쇄 가능성이 높은 문예물·아동도서·학습참고서 등에 적용된다. 둘째는 코스트 플러스형(cost-plus pricing). 제작 원가에 일정이익을 더하는 형태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학술서가 이 유형에 든다. 셋째는 추종형(market pricing)으로 비슷한 책의 시중가격을 참고해 값을 정한다. 베스트셀러를 노리는 출판물의 책값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넷째는 절충형으로 이윤을 계상하지만 시중가격도 참조하는 형태다. 마지막으로 프라이스 라인형(price line pricing)이 있다. 정가를 미리 정하는 것을 말하는데, 구매욕구에 맞게 출판물을 개발하는 경우에 적용한다.
국내 출판사들은 주로 절충형 형태로 책값을 정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국출판사업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출판사의 61.5%가 유사도서의 가격을 참조하되 제작원가에 수익률을 감안하여 책값을 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사도서의 가격을 참고하지 않고 제작원가 및 수익률에 따라 정가를 정한다는 출판사는 19.4%에 지나지 않았고, 수익률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출판사의 유사도서 정가를 기준으로 삼는 출판사는 13.9%에 이르렀다. 이 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 우리 책값은 대체로 눈치가격이라 할 수 있다. 말이 좋아 절충형이지 책의 종류에 상관없이 시장에서 가격저항을 일으키지 않을 범위에서 책값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같은 책값 결정형태는 출판사가 충분한 수익률을 확보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 재판을 찍어야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형태로 책값을 결정한다. 일지사 김성재 사장은 ‘출판의 이론과 실제’에서 “영국이 직접생산비의 4배를, 일본이 3배를, 미국이 적어도 6배를 정가로 매기는 데 비해 우리 나라는 2배 반 안팎”이라 분석했다. 여기서 말하는 직접생산비란 종이값·인쇄값·제본값 등을 가리킨다. 책값 상승률도 일반 소비자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출판계에서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드는 예가 바로 설렁탕 값이다. 1975년 설렁탕 한 그릇 값은 256원이었는데, 1999년에는 4111원으로 16배 뛰었다. 영화관람료와는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무려 26배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에 책 한 권의 평균 가격은 9.3배 올랐을 뿐이다.
출판칼럼니스트 표정훈씨의 조사를 보면, 우리의 책값이 외국보다 훨씬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너선 스펜스의 ‘칸의 제국’의 번역본 책값은 1만3000원인데, 원서의 하드카버 값은 27.50달러(3만5750원, 이하 미화 1달러를 1300원으로 계산했다)나 된다.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최근 두 권의 양장본으로 재출간했는데, 각 권 정가가 8500원이다. 그런데 94년 출간한 원서의 정가는 15달러(1만9500원)다. 번역본 두 권을 합친 값이 한 권의 원서 정가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최근 번역 출간한 다니엘 핑크의 ‘프리에이전트의 시대가 오고 있다’의 원서 정가는 24.95달러(3만2435원)고, 이 책의 번역본 정가는 1만5000원이다.
국내 책값이 상대적으로 싼 편이라는 사실을 국제적으로 입증한 예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다. 우리나 미국이나 이 책이 번역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두 나라 책값을 비교하는 데 좋은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국내 번역본 정가가 7800원인 이 작품의 영어 번역판 정가는 13달러(1만6900원)다.
이같은 단순비교에서 반드시 참고할 사항이 있다. 번역본의 경우 해외 저작권자에게 지불하는 저작권료와 역자에게 주는 번역비를 감안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국내 저자에게 지불하는 인세가 10% 정도라면, 번역본에는 저작권료와 번역료에 최소 12%의 인세를 지출한다. 이런저런 요소를 포함하면 국내 책값이 외국의 경우보다 얼마나 싼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책도 엄연히 상품인 만큼 그 ‘교환가치’의 적절성을 문제 삼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아주머니 술도 싸야 사먹는다”고, 독자 입장에서 좀더 싼 값으로 원하는 책을 사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책값에 대한 불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것은 모든 상품에 대해 소비자들이 걸 수 있는 ‘딴죽’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맞이한 문제적 현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백해진다. 책값이 비싸다고 생각할 만큼 함량 미달의 책을 시장에 쏟아놓은 출판계에 1차적 책임이 있다. 눈앞의 이익에 연연해 허섭쓰레기 같은 책들을 양산한 출판계의 물량주의가 결국 할인판매와 책값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자칫하면 게도 구럭도 다 잃을 우를 범한 출판계의 자성이 요구된다.
독자에게도 당부의 한마디. “한 권의 책이 삶을 바꾼다”는 고전적인 발언들을 기억한다면 책은 여전히 ‘사용가치’의 측면에서 평가해야 하는 ‘문화상품’이다. 서점에 가보면(아니,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보면) 책이 넘칠 것 같지만, 막상 읽고 싶은 책을 찾으면 출판되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우리 출판은 아직 ‘보호관찰’ 대상이다. 이제 관심을 바꿔보자. 마땅히 나와야 할 책이 나왔는지, 그리고 나온 책은 제대로 쓰였고, 올바로 옮겨졌는지를 놓고 토론과 논쟁을 벌이자는 것이다. 책값 문제는 그 다음에 시비를 걸어도 결코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