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집합. 대낮 훈련으로 파김치가 된 후보생들이 한밤중에 다시 내무반 옥상에 집합했다. 이들은 셔츠와 바지를 있는 대로 걷어올린 채 다리를 벌리고 하늘을 향해 두팔을 쳐들어 X자를 만든다. 고개를 쳐들고 입을 벌려 혀까지 내밀면 준비 완료. ‘몸의 표면적을 최대한 넓힌’ 자세다. 어두운 새벽 바닷바람이 이들을 공격한다. 그렇게 한 시간, 또 한 시간.
‘우리가 뭘 잘못했기에 이렇게 괴롭히나’. 원망도 굳어가는 몸 속으로 점차 묻힌다. 고문도 그런 고문이 따로 없다…. 항한(抗寒) 훈련. 추위에 대한 내성을 키우기 위한 코스로 정신력이 버틸 수 있는 끝까지 가야 하는 악몽의 기억이다.
“다시 훈련을 받으라고 한다면요? 글쎄요. 아마 입대 안 할 것 같습니다.” 후보생들은 지난 14주를 떠올리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듯 하나같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한번이니까 했죠.”
강철 같은 근육과 구릿빛 피부, 차마 말을 걸기도 힘든 독기 품은 눈동자…. 최초의 여성 해병 장교들을 만나러 경남 진해의 해군사관학교로 가는 길에 그려진 이미지는 냉혹한 여전사의 모습,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그들은 달랐다. 대신 20대 중반, 활기찬 단발머리 아가씨들이 거기 있었다.
“피자, 아구찜, 햄버거….” 지금 먹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수십 가지 대답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훈련 일정이 마침내 끝나간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절도 있는 모습 사이사이로 풋풋하고 밝은 웃음이 배어나온다.
해병대 사령부가 지난해 12월 선발한 여자 학사 장교 후보생 7명. 한국전쟁 이후 해병사(史)를 통틀어 최초의 여성 장교들이다. 남자들도 주저하는 해병대를 자원해 훈련을 마친 이들을 만난 것은 임관식 전날인 지난 6월28일.
이 후보생들이 지난 3월21일 가방을 짊어지고 경북 포항에 있는 교육훈련단을 찾을 때만 해도 자신감과 여유가 있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자긍심, 아침 조깅과 등산으로 비축한 체력을 되새기며 자신 있게 병영 문을 들어섰다. 그렇지만 해병대는 역시 해병대다.
정밀 신체검사, 내무교육 등을 거쳐 3월26일 정식으로 96기 OCS(officer candidate school : 간부 후보생 학교)에 입교한 이들을 기다린 것은 차갑기 이를 데 없는 표정의 훈육관들과 상상을 초월하는 프로그램들이었다. 여자라고 열외는 없었다. 함께 입교한 남자 동기들로 이루어진 각 조에 1~2명씩 편성되어 똑같은 훈련을 받았다. 취침과 샤워를 제외한 모든 일정이 동일한 과정과 평가에 의해 진행되었다.
6시 기상, 10시30분 소등 같은 일과표상의 일정은 그저 글자들일 뿐, 훈련에는 밤과 낮이 따로 없다. 복종주·필승주 등 각 주마다 붙은 이름들 역시 매일 흙바닥을 기는 후보생에게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 연일 계속하는 얼차려와 체련훈련, 한밤중에 불어대는 ‘빵빠레’(비상소집)가 기억에 남는 전부다. “이들은 전투 요원입니다. 작전시 전선의 최일선에서 소대장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훈련의 목표고요.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전혀 고려사항이 될 수 없습니다.” 훈련대대장 서성근 중령은 단호히 말한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훈련관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딱 한마디 하시더군요. ‘여기서 네 꿈을 포기한다면 아깝지 않겠어?’ 자리로 돌아와 다시 훈련을 받았습니다.” 황수경 소위(24)는 입교 후 처음 며칠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누구나 그렇듯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남들 보는 앞에서는 참았지만 혼자 있는 곳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훈련이 5주를 넘긴 어느 날, 갑자기 집에 편지를 쓰라는 지시에 어리둥절해하던 후보생들은 “오늘이 어버이날”이라는 말을 듣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미처 그리워할 여유도 없었던 가족이었다. “흔히 언제 집 생각이 나느냐고 묻지만, 사실 생각 못합니다. 아무 생각도 없어지거든요.” 가족들이 들으면 서운할 지 모르지만 그게 사실이라는 조윤정 소위(24)의 말이다.
큰 부상은 없었지만 작은 상처들은 이들을 내내 괴롭혔다. 바뀐 환경과 고된 훈련을 버거워하는 근육과 인대들이 쉴새없이 비명을 질러댄 것. 그렇지만 김윤전 소위(26)는 현역 해병대 대위인 남자친구에게도 아프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고된 훈련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단호히 반대한 남자친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 가끔씩 이루어지는 전화통화는 그저 ‘잘 있니’ ‘잘 있어’ 수준으로 끝났다.
훈련이 한창이던 6~7주. 말로만 듣던 유격은 오히려 우스웠다. 겁먹은 남자 동기들이 보여준 모습은 더욱 그랬다. 헬기의 굉음이 귓전을 때리는 레펠 하강코스. 0.5초도 못 되는 순간 아찔한 바닥을 보며 주춤하는 사이 와락 등짝을 떠미는 훈련관의 손에 하늘을 난다. “뭐, 별것 아니네 싶더군요. 처음엔 엄청 겁낸 것도 사실이지만. 누가 유격한 얘기 하며 폼 잡으면 이제 마음껏 비웃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김성애 소위(24)의 당찬 소감이다. 예전에는 술 먹고 밤새도록 군대 얘기만 하는 예비역들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자기가 그러지 않을지 걱정된다며 시원스레 웃는다.
육체적으로 가장 고달프던 것은 10주차 과정인 IBS(소형 고무보트)훈련이었다. 침투 상황을 가정해 조별로 고무보트를 타고 해안에 다다른 뒤 이를 다시 머리에 이고 육지에서 이동하는 해병대 전통의 핵심 훈련과정. 웬만한 남자는 모두 나가떨어진다는 힘든 코스다.
출렁이는 보트는 한 사람만 기운이 빠지면 균형이 무너진다. 갯벌에 더러워진 얼굴 따위에 신경이 쓰일 리 없다. 남은 것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생각뿐. 입에서는 난생 처음 욕이 튀어 나온다. “가장 무서운 것은 사이드(side : 훈련에서 낙오한 사람을 일컫는 은어)가 되는 겁니다. 내놓고 말들은 안하지만 그렇게 낙인 찍힐 때 입는 자존심의 상처가 가장 크죠.” 고근영 소위(25)는 자존심이야말로 훈련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총검술, 사격, 각개전투, 화생방, 수류탄 투척…. 그렇게 하나씩 고된 훈련코스를 넘어서자 어느새 100일 교육과정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훈육관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여성 후보생들에게 각 부대에 배치 받았을 때 가장 걱정이 되는 점을 묻자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로 한결같았다. 남성다움을 미덕으로 삼는 해병대에서 여자가 동료로, 또는 상관으로 인정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염려. 인적사항의 ‘장래 희망’란에 여자 후보생의 절반이 ‘최초의 여성 해병대 장성’을 적을 만큼 포부는 크지만 다가올 현실은 만만치 않을 것임에 분명하다. 어쩌면 지나간 14주의 훈련은 이들이 가야 할 군인의 길에 비하면 작은 한걸음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훈련 종료를 하루 남긴 28일 저녁 식사시간. ‘평생을 함께할 전우애’로 똘똘 뭉친 이들은 갖가지 얘기를 나누기에 바쁘다. 오래된 친구처럼 어깨를 툭툭 치며 장난을 거는 남녀 후보생들. ‘남자와 여자 후보생들이 따로 모이는 것은 아닐까’라는 추측은 기우(杞憂)였다. “여자 후보생들이 함께 있어 어색하지 않느냐”고 묻자 한 남자 후보생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반문한다. “남자들만 모여 있는 게 더 부자연스러운 거 아닙니까?”
가장 보수적이라는 해병대에도 변화의 바람은 거셌다. 이제 막 태어난 여성 해병 장교들은 제도의 변화를 앞지르는 힘찬 젊은이들이었다. 독기어린 눈동자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영화 속 어느 군인 못지않게 늠름해 보였다. 어쩌면 여성 해병 장교는 이미 오래 전에 탄생해야 옳은 일이었다. 누구보다도 당당한 ‘자매’들과 그들의 남자 동료들이 함께 지키는 나라에서 부모형제는 옛 군가 가사처럼 단잠을 이룰 수 있으리라.
‘우리가 뭘 잘못했기에 이렇게 괴롭히나’. 원망도 굳어가는 몸 속으로 점차 묻힌다. 고문도 그런 고문이 따로 없다…. 항한(抗寒) 훈련. 추위에 대한 내성을 키우기 위한 코스로 정신력이 버틸 수 있는 끝까지 가야 하는 악몽의 기억이다.
“다시 훈련을 받으라고 한다면요? 글쎄요. 아마 입대 안 할 것 같습니다.” 후보생들은 지난 14주를 떠올리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듯 하나같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한번이니까 했죠.”
강철 같은 근육과 구릿빛 피부, 차마 말을 걸기도 힘든 독기 품은 눈동자…. 최초의 여성 해병 장교들을 만나러 경남 진해의 해군사관학교로 가는 길에 그려진 이미지는 냉혹한 여전사의 모습,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그들은 달랐다. 대신 20대 중반, 활기찬 단발머리 아가씨들이 거기 있었다.
“피자, 아구찜, 햄버거….” 지금 먹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수십 가지 대답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훈련 일정이 마침내 끝나간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절도 있는 모습 사이사이로 풋풋하고 밝은 웃음이 배어나온다.
해병대 사령부가 지난해 12월 선발한 여자 학사 장교 후보생 7명. 한국전쟁 이후 해병사(史)를 통틀어 최초의 여성 장교들이다. 남자들도 주저하는 해병대를 자원해 훈련을 마친 이들을 만난 것은 임관식 전날인 지난 6월28일.
이 후보생들이 지난 3월21일 가방을 짊어지고 경북 포항에 있는 교육훈련단을 찾을 때만 해도 자신감과 여유가 있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자긍심, 아침 조깅과 등산으로 비축한 체력을 되새기며 자신 있게 병영 문을 들어섰다. 그렇지만 해병대는 역시 해병대다.
정밀 신체검사, 내무교육 등을 거쳐 3월26일 정식으로 96기 OCS(officer candidate school : 간부 후보생 학교)에 입교한 이들을 기다린 것은 차갑기 이를 데 없는 표정의 훈육관들과 상상을 초월하는 프로그램들이었다. 여자라고 열외는 없었다. 함께 입교한 남자 동기들로 이루어진 각 조에 1~2명씩 편성되어 똑같은 훈련을 받았다. 취침과 샤워를 제외한 모든 일정이 동일한 과정과 평가에 의해 진행되었다.
6시 기상, 10시30분 소등 같은 일과표상의 일정은 그저 글자들일 뿐, 훈련에는 밤과 낮이 따로 없다. 복종주·필승주 등 각 주마다 붙은 이름들 역시 매일 흙바닥을 기는 후보생에게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 연일 계속하는 얼차려와 체련훈련, 한밤중에 불어대는 ‘빵빠레’(비상소집)가 기억에 남는 전부다. “이들은 전투 요원입니다. 작전시 전선의 최일선에서 소대장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훈련의 목표고요.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전혀 고려사항이 될 수 없습니다.” 훈련대대장 서성근 중령은 단호히 말한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훈련관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딱 한마디 하시더군요. ‘여기서 네 꿈을 포기한다면 아깝지 않겠어?’ 자리로 돌아와 다시 훈련을 받았습니다.” 황수경 소위(24)는 입교 후 처음 며칠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누구나 그렇듯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남들 보는 앞에서는 참았지만 혼자 있는 곳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훈련이 5주를 넘긴 어느 날, 갑자기 집에 편지를 쓰라는 지시에 어리둥절해하던 후보생들은 “오늘이 어버이날”이라는 말을 듣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미처 그리워할 여유도 없었던 가족이었다. “흔히 언제 집 생각이 나느냐고 묻지만, 사실 생각 못합니다. 아무 생각도 없어지거든요.” 가족들이 들으면 서운할 지 모르지만 그게 사실이라는 조윤정 소위(24)의 말이다.
큰 부상은 없었지만 작은 상처들은 이들을 내내 괴롭혔다. 바뀐 환경과 고된 훈련을 버거워하는 근육과 인대들이 쉴새없이 비명을 질러댄 것. 그렇지만 김윤전 소위(26)는 현역 해병대 대위인 남자친구에게도 아프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고된 훈련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단호히 반대한 남자친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 가끔씩 이루어지는 전화통화는 그저 ‘잘 있니’ ‘잘 있어’ 수준으로 끝났다.
훈련이 한창이던 6~7주. 말로만 듣던 유격은 오히려 우스웠다. 겁먹은 남자 동기들이 보여준 모습은 더욱 그랬다. 헬기의 굉음이 귓전을 때리는 레펠 하강코스. 0.5초도 못 되는 순간 아찔한 바닥을 보며 주춤하는 사이 와락 등짝을 떠미는 훈련관의 손에 하늘을 난다. “뭐, 별것 아니네 싶더군요. 처음엔 엄청 겁낸 것도 사실이지만. 누가 유격한 얘기 하며 폼 잡으면 이제 마음껏 비웃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김성애 소위(24)의 당찬 소감이다. 예전에는 술 먹고 밤새도록 군대 얘기만 하는 예비역들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자기가 그러지 않을지 걱정된다며 시원스레 웃는다.
육체적으로 가장 고달프던 것은 10주차 과정인 IBS(소형 고무보트)훈련이었다. 침투 상황을 가정해 조별로 고무보트를 타고 해안에 다다른 뒤 이를 다시 머리에 이고 육지에서 이동하는 해병대 전통의 핵심 훈련과정. 웬만한 남자는 모두 나가떨어진다는 힘든 코스다.
출렁이는 보트는 한 사람만 기운이 빠지면 균형이 무너진다. 갯벌에 더러워진 얼굴 따위에 신경이 쓰일 리 없다. 남은 것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생각뿐. 입에서는 난생 처음 욕이 튀어 나온다. “가장 무서운 것은 사이드(side : 훈련에서 낙오한 사람을 일컫는 은어)가 되는 겁니다. 내놓고 말들은 안하지만 그렇게 낙인 찍힐 때 입는 자존심의 상처가 가장 크죠.” 고근영 소위(25)는 자존심이야말로 훈련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총검술, 사격, 각개전투, 화생방, 수류탄 투척…. 그렇게 하나씩 고된 훈련코스를 넘어서자 어느새 100일 교육과정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훈육관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여성 후보생들에게 각 부대에 배치 받았을 때 가장 걱정이 되는 점을 묻자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로 한결같았다. 남성다움을 미덕으로 삼는 해병대에서 여자가 동료로, 또는 상관으로 인정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염려. 인적사항의 ‘장래 희망’란에 여자 후보생의 절반이 ‘최초의 여성 해병대 장성’을 적을 만큼 포부는 크지만 다가올 현실은 만만치 않을 것임에 분명하다. 어쩌면 지나간 14주의 훈련은 이들이 가야 할 군인의 길에 비하면 작은 한걸음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훈련 종료를 하루 남긴 28일 저녁 식사시간. ‘평생을 함께할 전우애’로 똘똘 뭉친 이들은 갖가지 얘기를 나누기에 바쁘다. 오래된 친구처럼 어깨를 툭툭 치며 장난을 거는 남녀 후보생들. ‘남자와 여자 후보생들이 따로 모이는 것은 아닐까’라는 추측은 기우(杞憂)였다. “여자 후보생들이 함께 있어 어색하지 않느냐”고 묻자 한 남자 후보생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반문한다. “남자들만 모여 있는 게 더 부자연스러운 거 아닙니까?”
가장 보수적이라는 해병대에도 변화의 바람은 거셌다. 이제 막 태어난 여성 해병 장교들은 제도의 변화를 앞지르는 힘찬 젊은이들이었다. 독기어린 눈동자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영화 속 어느 군인 못지않게 늠름해 보였다. 어쩌면 여성 해병 장교는 이미 오래 전에 탄생해야 옳은 일이었다. 누구보다도 당당한 ‘자매’들과 그들의 남자 동료들이 함께 지키는 나라에서 부모형제는 옛 군가 가사처럼 단잠을 이룰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