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는 흔들리고 있는가. 자민련과 JP가 다시 시계추와 같은 진폭을 보이고 있다. 자민련을 양쪽에서 끌어당기는 양대 지남철은 국회법 개정과 민주당과의 합당이다. 두 가지 요인이 정반대편에서 중간에 놓인 JP와 자민련을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
사상 유례없는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싼 여야 대치상황으로 국회법 개정 문제가 ‘초미의 현안’에서 일단 자취를 감췄다.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듯하던 국회법 개정 문제가 다시 7월 임시국회로 넘어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재차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다. 국회법 개정은 원내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현행 20석에서 14석으로 낮춰 가까스로 교섭단체를 구성한 자민련이 다시 비교섭단체로 추락하는 것을 막는다는 단순한 의미 이상의 복선이 깔려 있다.
여권 일각의 6월 국회 처리 불가피론이 있음에도 지지부진 상태에 머물렀던 이 문제가 다시 관심을 끌게 만든 것은 뜻밖에도 한나라당 의원들이었다. 논의에 물꼬를 튼 강재섭 부총재는 지난 6월22일 “교섭단체 의석기준은 자민련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나중에 우리 당의 요구사항을 자민련이 들어주는 식의 협조체제를 구축하면 좋을 것”이라며 “이같은 내용을 이회창 총재에게 건의했다”고 밝혔다. 강부총재는 25일 한나라당 당직자회의에서도 “자민련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좋다”고 재차 강조했다.
최병렬 박희태 부총재도 같은 주장을 내놓았다. 최부총재는 26일 “이총재가 자민련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겠다고 한 다짐(지난 1월 민주당 의원 4명이 자민련으로 이적했을 때 이총재가 ‘민의에는 어긋나지만 실체는 인정한다’고 한 발언)은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최부총재는 또 “이총재의 말은 정치적 약속”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처럼 부총재 3명이 국회법 개정에 대한 자민련의 입장을 옹호하고 나서자 이회창 총재 주변은 곤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김무성 총재비서실장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당 견해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일축한 데 이어, 27일에는 이총재가 직접 “당론을 바꿀 입장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총재와 측근 인사들이 정작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당론 변경에 따른 입장의 곤궁함, 그 자체 때문이 아닌 듯하다. 강재섭 최병렬 부총재의 발언은 한나라당 주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천기누설’과 같은 것. 다시 말해 이회창 총재가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 국회법 개정안에 찬성했다는 식의 모양새를 갖추고 자민련과 JP에게 생색을 낼 수 있어야 하는데, 두 부총재가 사전에 이를 발설하는 바람에 김이 다 새버렸다는 얘기다. 이같은 분위기는 이총재가 26일 “그 문제는 내게 맡겨달라”고 함구령을 내린 것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같은 사정에 따라 27일의 한나라당 총재단 회의에서는 부총재들 사이에 서로 인상 찌푸리는 감정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류 인사인 하순봉 부총재가 “부총재들이 민감한 문제를 밖에서 얘기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자중하자”고 책망하는 투로 말하자 강부총재도 “마치 나무라는 것 같다”고 날카롭게 대응한 것. 최부총재 역시 “부총재 두 명이 한 말에 대해 총재가 공개적으로 함구령을 내린 것은 유감”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사실 이총재 측근 인사들은 국회법 개정 문제와 관련해 “시기의 문제만 남았다” “이총재가 ‘큰 정치’를 할 것”이라고 흘리는 등 자민련 요구를 언제 들어줘야 이총재의 이미지 고양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인지에 신경을 써온 터였다.
그렇다면 이회창 총재와 한나라당은 왜 이제 와서 당론을 바꾸면서까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이와 관련한 한나라당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최근 다시 불거진 민주당과 자민련의 합당론을 차단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사실. 물론 내년 대선후보를 자민련이 맡는 조건이란 전제가 붙긴 했지만, 자민련 이양희 사무총장이 26일 “민주당과 자민련 간 합당을 위한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 데 이어, 민주당 박상규 사무총장도 27일 “합당 문제는 당내에서 공식 논의한 적이 없지만, 합당할 경우 금년 말이나 내년 초가 좋을 것”이라고 화답한 것에서도 보듯 양당의 합당론이 구체화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물론 자민련이 정말 합당을 원한다고 보기는 아직 불투명하다. 내년 대선후보를 자민련이 맡는 조건을 내세웠다는 것은 합당보다 ‘합당 불가’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많다. 이런 해석에 동의하는 사람은 JP가 점차 DJP 공조에서 발을 빼고 싶어하는 마음을 이양희 총장의 발언을 통해 드러낸 것이란 추론을 내세운다. 이 상태로라면 정권 재창출이 어려운 만큼 더 늦기 전에 DJP 공조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
그러나 정반대의 해석도 만만치 않다. 조건을 내세운 합당론을 꺼낸 것 자체가 이제부터 합당을 위한 적극적인 협상 테이블에 앉겠다는 의사 표시라는 시각이다. 이런 시각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자민련이 지방자치단체장을 획득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추정을 근거로 한다. 광역자치단체장의 경우 대전시와 충남도를 제외하면 안심할 만한 곳이 별로 없다는 것. 따라서 그럴 바에는 차라리 합당으로 지방선거의 시너지 효과를 도모하는 것이 존립 근거를 지키는 길이라는 얘기다.
한나라당 입장에서 보더라도 DJP 연합군을 상대하는 것보다, 3자 대립의 구도에서 지방선거를 치러야 훨씬 더 유리할 것이란 점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민주당과 자민련 후보가 각기 출마해 서로 난타전을 벌일 경우, 여권 성향표가 갈라지고 야권 성향표는 결집하는 어부지리를 얻을 수도 있다. 이런 점들을 예상한다면 지방선거가 사실상의 대선 전초전이라 할 때 민주당과 자민련의 합당은 어떻게든 막아야 하고, 그 미끼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동의 카드를 활용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국회법 개정에 숨어 있는 노림수는 이 정도가 아니다. 교섭단체 구성요건이 완화하면 민주당과 한나라당, 자민련 세 곳 중 어느 곳이든 분열 움직임이 싹틀 것이고, 이에 따라 정치권 지형도가 바뀔 가능성이 증폭된다. 그리고 시중의 관측과 달리 한나라당보다는 민주당이 분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시나리오다. 늘 한나라당의 분열을 우려하는 이회창 총재가 국회법 개정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것도 이 사안이 오히려 민주당의 동요를 자극하는 쪽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내부 보고서를 접한 다음이었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의 한 부총재는 “지금 우리 당의 분위기는 이미 (청와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세종로까지 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완화해도 당에서 이탈할 세력은 거의 없다는 것이 내부 판단이다. 비주류 인사들도 지금으로서는 운신 폭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내년 대선 이전에 이탈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고 말한다. 김원웅 의원처럼 당내 보수파 의원들과 심각한 이념적 갈등을 보이는 의원들도 대선 이전에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것이 당내 관측이다.
이에 반해 민주당은 △소장파와 동교동계 구파와의 알력 △동교동계의 전반적인 세력 위축 △청와대를 장악한 동교동계 구파의 독주에 대한 반감의 확산 △정권 교체 이후 참여한 구여권 출신들의 소외감 △대통령 후보 경선 등 많은 분열 요인이 있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자체 분석이다. 특히 정풍 파동을 거치며 표출한 소장파와 동교동계 구파와의 알력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 소속의원 세미나를 계기로 확실히 동교동계로 자리매김한 김민석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동영 최고위원에 대해 “오히려 쇄신·개혁대상”이라고 비난하는 등 돌아오지 못할 강을 넘어선 듯한 분위기다.
대통령 후보 경선만 하더라도 누가 후보가 된다 해도 이후의 수습이 매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중권 대표는 정체성 문제로 인해, 이인제 최고위원과 노무현 고문은 그들에 대한 감성적 문제로 인해 이탈 세력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 더구나 막판까지도 이들 후보가 이총재보다 경쟁력이 높다는 확신이 서지 않고, 따라서 재집권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볼 경우 원심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당을 하나 만들 정도의 인원과 자금 문제가 충분하겠느냐는 물음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겠지만, 막상 14석으로 교섭단체 구성요건이 낮아지면 신당 창당에의 유혹은 훨씬 강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분열하지 않더라도 분열의 씨앗이 상존하고 당 구성원들의 역량이 합쳐지기 힘든 분위기 조성만으로도 차기 대선과 연계하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다고 보는 것이 한나라당의 전략인 셈이다.
동교동계가 완벽하게 민주당을 지배하고 있다면 사정은 또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갈수록 당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하는 추세다. 한화갑 최고위원의 최근 수차례 청와대 독대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바로 이러저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동교동계의 결속과 당에 대한 지배력 고양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법 개정 문제는 이처럼 차기 대선 구도의 틀을 짜는 과정에서 하나의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그 와중에 JP와 자민련은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 사이에서 여전히 줄타기를 하고 있다. 어쩌면 이를 즐기는 듯도 하다. 지금으로서는 국회법 개정이 어느 쪽에 유리하게 돌아갈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정치 고수들끼리의 고난도 게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사상 유례없는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싼 여야 대치상황으로 국회법 개정 문제가 ‘초미의 현안’에서 일단 자취를 감췄다.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듯하던 국회법 개정 문제가 다시 7월 임시국회로 넘어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재차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다. 국회법 개정은 원내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현행 20석에서 14석으로 낮춰 가까스로 교섭단체를 구성한 자민련이 다시 비교섭단체로 추락하는 것을 막는다는 단순한 의미 이상의 복선이 깔려 있다.
여권 일각의 6월 국회 처리 불가피론이 있음에도 지지부진 상태에 머물렀던 이 문제가 다시 관심을 끌게 만든 것은 뜻밖에도 한나라당 의원들이었다. 논의에 물꼬를 튼 강재섭 부총재는 지난 6월22일 “교섭단체 의석기준은 자민련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나중에 우리 당의 요구사항을 자민련이 들어주는 식의 협조체제를 구축하면 좋을 것”이라며 “이같은 내용을 이회창 총재에게 건의했다”고 밝혔다. 강부총재는 25일 한나라당 당직자회의에서도 “자민련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좋다”고 재차 강조했다.
최병렬 박희태 부총재도 같은 주장을 내놓았다. 최부총재는 26일 “이총재가 자민련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겠다고 한 다짐(지난 1월 민주당 의원 4명이 자민련으로 이적했을 때 이총재가 ‘민의에는 어긋나지만 실체는 인정한다’고 한 발언)은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최부총재는 또 “이총재의 말은 정치적 약속”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처럼 부총재 3명이 국회법 개정에 대한 자민련의 입장을 옹호하고 나서자 이회창 총재 주변은 곤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김무성 총재비서실장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당 견해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일축한 데 이어, 27일에는 이총재가 직접 “당론을 바꿀 입장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총재와 측근 인사들이 정작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당론 변경에 따른 입장의 곤궁함, 그 자체 때문이 아닌 듯하다. 강재섭 최병렬 부총재의 발언은 한나라당 주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천기누설’과 같은 것. 다시 말해 이회창 총재가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 국회법 개정안에 찬성했다는 식의 모양새를 갖추고 자민련과 JP에게 생색을 낼 수 있어야 하는데, 두 부총재가 사전에 이를 발설하는 바람에 김이 다 새버렸다는 얘기다. 이같은 분위기는 이총재가 26일 “그 문제는 내게 맡겨달라”고 함구령을 내린 것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같은 사정에 따라 27일의 한나라당 총재단 회의에서는 부총재들 사이에 서로 인상 찌푸리는 감정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류 인사인 하순봉 부총재가 “부총재들이 민감한 문제를 밖에서 얘기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자중하자”고 책망하는 투로 말하자 강부총재도 “마치 나무라는 것 같다”고 날카롭게 대응한 것. 최부총재 역시 “부총재 두 명이 한 말에 대해 총재가 공개적으로 함구령을 내린 것은 유감”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사실 이총재 측근 인사들은 국회법 개정 문제와 관련해 “시기의 문제만 남았다” “이총재가 ‘큰 정치’를 할 것”이라고 흘리는 등 자민련 요구를 언제 들어줘야 이총재의 이미지 고양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인지에 신경을 써온 터였다.
그렇다면 이회창 총재와 한나라당은 왜 이제 와서 당론을 바꾸면서까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이와 관련한 한나라당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최근 다시 불거진 민주당과 자민련의 합당론을 차단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사실. 물론 내년 대선후보를 자민련이 맡는 조건이란 전제가 붙긴 했지만, 자민련 이양희 사무총장이 26일 “민주당과 자민련 간 합당을 위한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 데 이어, 민주당 박상규 사무총장도 27일 “합당 문제는 당내에서 공식 논의한 적이 없지만, 합당할 경우 금년 말이나 내년 초가 좋을 것”이라고 화답한 것에서도 보듯 양당의 합당론이 구체화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물론 자민련이 정말 합당을 원한다고 보기는 아직 불투명하다. 내년 대선후보를 자민련이 맡는 조건을 내세웠다는 것은 합당보다 ‘합당 불가’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많다. 이런 해석에 동의하는 사람은 JP가 점차 DJP 공조에서 발을 빼고 싶어하는 마음을 이양희 총장의 발언을 통해 드러낸 것이란 추론을 내세운다. 이 상태로라면 정권 재창출이 어려운 만큼 더 늦기 전에 DJP 공조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
그러나 정반대의 해석도 만만치 않다. 조건을 내세운 합당론을 꺼낸 것 자체가 이제부터 합당을 위한 적극적인 협상 테이블에 앉겠다는 의사 표시라는 시각이다. 이런 시각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자민련이 지방자치단체장을 획득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추정을 근거로 한다. 광역자치단체장의 경우 대전시와 충남도를 제외하면 안심할 만한 곳이 별로 없다는 것. 따라서 그럴 바에는 차라리 합당으로 지방선거의 시너지 효과를 도모하는 것이 존립 근거를 지키는 길이라는 얘기다.
한나라당 입장에서 보더라도 DJP 연합군을 상대하는 것보다, 3자 대립의 구도에서 지방선거를 치러야 훨씬 더 유리할 것이란 점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민주당과 자민련 후보가 각기 출마해 서로 난타전을 벌일 경우, 여권 성향표가 갈라지고 야권 성향표는 결집하는 어부지리를 얻을 수도 있다. 이런 점들을 예상한다면 지방선거가 사실상의 대선 전초전이라 할 때 민주당과 자민련의 합당은 어떻게든 막아야 하고, 그 미끼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동의 카드를 활용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국회법 개정에 숨어 있는 노림수는 이 정도가 아니다. 교섭단체 구성요건이 완화하면 민주당과 한나라당, 자민련 세 곳 중 어느 곳이든 분열 움직임이 싹틀 것이고, 이에 따라 정치권 지형도가 바뀔 가능성이 증폭된다. 그리고 시중의 관측과 달리 한나라당보다는 민주당이 분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시나리오다. 늘 한나라당의 분열을 우려하는 이회창 총재가 국회법 개정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것도 이 사안이 오히려 민주당의 동요를 자극하는 쪽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내부 보고서를 접한 다음이었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의 한 부총재는 “지금 우리 당의 분위기는 이미 (청와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세종로까지 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완화해도 당에서 이탈할 세력은 거의 없다는 것이 내부 판단이다. 비주류 인사들도 지금으로서는 운신 폭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내년 대선 이전에 이탈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고 말한다. 김원웅 의원처럼 당내 보수파 의원들과 심각한 이념적 갈등을 보이는 의원들도 대선 이전에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것이 당내 관측이다.
이에 반해 민주당은 △소장파와 동교동계 구파와의 알력 △동교동계의 전반적인 세력 위축 △청와대를 장악한 동교동계 구파의 독주에 대한 반감의 확산 △정권 교체 이후 참여한 구여권 출신들의 소외감 △대통령 후보 경선 등 많은 분열 요인이 있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자체 분석이다. 특히 정풍 파동을 거치며 표출한 소장파와 동교동계 구파와의 알력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 소속의원 세미나를 계기로 확실히 동교동계로 자리매김한 김민석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동영 최고위원에 대해 “오히려 쇄신·개혁대상”이라고 비난하는 등 돌아오지 못할 강을 넘어선 듯한 분위기다.
대통령 후보 경선만 하더라도 누가 후보가 된다 해도 이후의 수습이 매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중권 대표는 정체성 문제로 인해, 이인제 최고위원과 노무현 고문은 그들에 대한 감성적 문제로 인해 이탈 세력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 더구나 막판까지도 이들 후보가 이총재보다 경쟁력이 높다는 확신이 서지 않고, 따라서 재집권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볼 경우 원심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당을 하나 만들 정도의 인원과 자금 문제가 충분하겠느냐는 물음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겠지만, 막상 14석으로 교섭단체 구성요건이 낮아지면 신당 창당에의 유혹은 훨씬 강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분열하지 않더라도 분열의 씨앗이 상존하고 당 구성원들의 역량이 합쳐지기 힘든 분위기 조성만으로도 차기 대선과 연계하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다고 보는 것이 한나라당의 전략인 셈이다.
동교동계가 완벽하게 민주당을 지배하고 있다면 사정은 또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갈수록 당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하는 추세다. 한화갑 최고위원의 최근 수차례 청와대 독대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바로 이러저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동교동계의 결속과 당에 대한 지배력 고양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법 개정 문제는 이처럼 차기 대선 구도의 틀을 짜는 과정에서 하나의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그 와중에 JP와 자민련은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 사이에서 여전히 줄타기를 하고 있다. 어쩌면 이를 즐기는 듯도 하다. 지금으로서는 국회법 개정이 어느 쪽에 유리하게 돌아갈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정치 고수들끼리의 고난도 게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