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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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사로잡는 ‘한여름 밤 아리아’

방데지방 퓌뒤푸 야외 오페라…프랑스 대혁명에 반기 든 농민들 모습 그려 큰 인기

  • 입력2005-07-22 13: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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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객 사로잡는 ‘한여름 밤 아리아’
    프랑스의 서부 낭트와 라로셀 사이에 위치한 방데(Vendee) 지방 조그만 산골 농촌 마을인 퓌뒤푸(Puy du Fou)는 주변에 별다른 문화유산이나 역사적 유물도 없고 자연경관도 다른 지역에 비해 별로 뛰어나지 않지만 해마다 여름이면 25만에서 30만명의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이 마을에서 여름철 주말 밤마다 열리는 야외 오페라를 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말이 오페라일 뿐 이 야외 오페라에는 무대도 없고, 무대가 없으니 어떠한 무대장치도 있을 리 만무하다. 단지 이 야외 오페라는 200여년 전에 불타 반쯤 무너져 내린 고성과 조그만 호수가 있는 야외 들판에서 공연되며 상연작도 이 마을의 역사를 담은 창작곡이 해마다 되풀이될 뿐이다. 게다가 주인공들은 전부 아마추어들이다. 그럼에도 여름철만 되면 수많은 국내외 인파가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퓌뒤푸의 오페라가 담고 있는 내용 때문이다. 프랑스는 역사상 같은 민족끼리 세 차례 내전을 벌였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다른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구교와 신교가 종교전쟁을 벌이면서 1572년 성 바르텔레미 대학살을 통해 센 강을 피로 물들이기도 했고, 프랑스 대혁명의 와중에는 방데 지방의 농민들이 공화파 혁명정부에 반대해 3년 동안이나 농민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보불전쟁 직후인 1871년 파리에 공산주의적 자치정부를 세웠던 파리코뮌 정부는 이를 진압한 베르사유 정부군과 내전을 치러내기도 했다. 야외 오페라가 열리는 퓌뒤푸는 바로 대혁명기 농민전쟁의 발화지인 방데 지방에 위치한 조그만 마을이다. 이 오페라가 다루고 있는 소재 역시 반혁명 농민전쟁이다.

    영미권 역사가들은 현대사라는 개념을 주로 1차세계대전 이후의 20세기사를 지칭하면서 사용하는 반면, 프랑스 역사가들은 같은 개념을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부터 오늘날까지의 역사를 가리킬 때 사용한다. 그 이유는 대혁명을 통해 구체제의 질서를 혁파하고 오늘날 프랑스의 모든 근간이 되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변혁을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프랑스 공화국’이라는 국호, 삼색기와 라 마르세예즈, 자유-평등-박애라는 국가적 이념을 탄생시킨 것이 모두 대혁명이기 때문에 전국민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역사다.

    따라서 대혁명 기간 중 1793년에서 1795년 사이에 일어난 방데 지방의 반혁명 농민전쟁은 왕당파와, 왕당파를 후원한 일부 정치적 가톨릭 성직자들의 선동에 의한 농민들의 반혁명 반공화정 반란으로 평가받으며 프랑스 역사에서 전체적으로 무시되거나 역사적으로도 수치스러운 사건쯤으로 치부되었다. 방데 지방의 후손들은 19세기 내내 반혁명 전쟁을 일으킨 선조들 탓에 골수 가톨릭 왕당파, 반혁명주의자들이란 조롱을 받아왔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역사가들이 방데 반혁명전쟁을 프랑스 대혁명의 커다란 이념이나 원칙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대혁명이 가져온 급격한 제도상의 변화에 대해 체질적으로 안정을 추구하는 농민들이 소극적으로 반대하거나 저항한 사건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방데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선조들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200년 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선조들의 죽음을 새롭게 조명하고 공화파 혁명군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간 조상들의 한풀이 한마당을 공개적으로 마련한 것이다.

    퓌뒤푸 마을의 야외 오페라는 이런 배경을 바탕에 깔고 1978년 여름 최초로 열렸다.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공연예술가 한명 없이 퓌뒤푸 주변 마을에서 참여를 희망한 방데 주민들이 시원한 여름날 밤 모여 춤추고 노래하고 얘기를 나누며 조상들의 넋을 위로하기 시작한 것이다. 첫행사 이후 매해 여름철마다 되풀이되어온 이 한풀이 굿 한마당이 여기저기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가들도 다녀가고 프랑스 전역에서, 그리고 해외에서도 퓌뒤푸 마을의 아마추어 오페라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 결과 지금까지 22년 동안 600만명 이상이 야외 오페라를 관람하게 된 것이다.

    관람객이 몰려들면서 오페라가 열리는 들판에는 대형 철제 관람석이 설치되었고 1989년부터 마을 숲 35ha에는 민속촌 같은 중세 마을을 복원시켜 놓아 낮시간이면 동네 주민들이 중세의 복장을 하고 텃밭을 가꾸거나 장작불에 빵을 굽고 가축을 키우면서 그 당시 생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마을 곳곳에 크고 작은 공연장을 마련해 바이킹의 침략과 이에 맞선 방어전투 장면, 말 위에서 싸우는 중세 기사들의 전투나 사냥 장면, 마술쇼, 마장술 등 갖가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중세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숲에는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해 식물원과 조그만 동물원, 호수의 분수쇼 등 해마다 새로운 볼거리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마을 사람들끼리의 한바탕 축제를 보러오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종합적인 테마공원을 만든 것이다. 이 역사적-생태적 종합 테마공원은 야간 오페라가 없는 여름철 주중에도 계속 개장하고 있다. 몰려드는 관광객과 테마공원으로 인해 퓌뒤푸는 마을 자체가 이미 커다란 부가가치를 수반하는 유명 관광상품이 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야외 오페라만큼은 처음 시작하던 때의 순수성을 지켜가고 있다. 참여배우들은 계속해서 퓌뒤푸 주변의 15개 마을 주민들이고, 대도시로 떠났다가 여름 바캉스를 맞아 고향을 찾은 이 지역 출신 젊은이들도 포함되어 있다. 오페라에 참여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일상적인 생업에 종사하다가 여름철 바캉스 기간에만 연습을 한 뒤 야간 오페라에 참여한다. 야외의 넓디 넓은 들판에서 오페라가 열리기 때문에 음악과 조명만큼은 들판 구석에 위치한 중앙통제소에서 담당하고 있지만 이조차도 관련 분야를 전공한 방데 지방의 후손들이 맡고 있다. 직접 야외무대에 서지 못한 주민들은 관광객을 위한 주차안내나 매표업무를 돕고 관광안내소 등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오페라와 테마공원, 각종 부대시설에 참여하는 주민 자원봉사자는 무려 1만4000여명에 이른다.

    아이들이 손잡고 뛰어다니며 노래하는 농민전쟁 이전의 평화로운 농촌의 모습, 씨 뿌리고 추수하고 하늘에 감사드리는 농민들, 전통적인 마을의 축제, 그리고 멀리서부터 전해진 혁명 발발 소식, 평화로운 농촌 마을을 들썩거리게 한 공화파 혁명정부의 급진적 조처와 이에 대한 불만, 왕당파와 가톨릭 성직자들에 의한 반혁명 전투, 실제 대혁명기에 불타 외벽만 남아 있는 호숫가 뒤편에서 불타오르는 고성, 승자도 패자도 없었던 내전에서 희생당한 모든이들을 위한 진혼곡, 살아남은 사람들과 후손들, 호숫가 주변에서 벌어지는 미래를 위한 화려한 불꽃놀이. 이것이 1시간40분에 걸친 오페라공연의 전부이다.

    매년 여름 같은 기간에 열리는 이탈리아의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발은 2000여년 전에 지어진 고대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에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무대장치와 함께 베르디, 로시니, 비제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를 보여준다. 그러나 같은 시간 퓌뒤푸 마을에서 열리는 야외 오페라만큼은 오늘도 순수성을 고집하고 있다. 관람객이 많건 적건 방데 사람들은 해마다 똑같은 오페라를 공연할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공연을 보면서 자신의 조상들이 막무가내로 비난받아야 할 반혁명주의자들이 아니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그리고 설령 관람객이 없더라도 불행했던 과거 역사를 넘어 새로운 미래를 위한 축제의 한마당으로 남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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