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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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금융 이끄는 블록체인, 네거티브 규제로 기업 자율 보장해야”

효율·보안성 높은 ‘새로운 화폐 시스템’… 각국 중앙은행 CBDC 도입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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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2-04-1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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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한 가상자산거래소의 가상자산 시세 전광판. [뉴시스]

    서울 한 가상자산거래소의 가상자산 시세 전광판. [뉴시스]

    최근 한 스타트업은 블록체인 기술로 금융기관의 환전, 대출을 효율화하는 서비스를 개발했으나 모호한 규제에 막혀 론칭에 실패했다. 블록체인업계 관계자는 “블록체인 기술을 실제 산업이나 금융 현장에 적용하려 해도 규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적잖다”고 토로했다.

    블록체인(block chain) 기술이 미래 경제와 사회를 바꿀 총아로 부상했지만 현장에서는 규제 벽이 높다는 호소가 들린다. 전문가들은 “미래 먹을거리 산업인 블록체인의 발전을 위해 과감한 지원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제3자 필요 없는 새로운 화폐 시스템”

    블록체인은 소규모 데이터인 ‘블록(block)’을 P2P(peer to peer) 형태로 이뤄진 ‘체인(chain)’과 같은 데이터 환경에 기록하는 분산원장(分散元帳) 관리 기술이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인물이 2008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듬해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처음 발행됐다. 운영자가 모든 정보의 통제권을 독점하는 기존 서버·데이터베이스 기반 시스템과 달리 블록체인은 참여자들이 원장 관리에 참여할 수 있다. 일단 서로 연결된 블록은 수정·삭제하기 어려워 해킹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도 특징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탈중앙성과 효율성, 보안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도시 인프라 운영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는 스마트시티 구축이 대표적이다. 일부 전문가는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나 민주주의가 출현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 단계에서 블록체인이 가장 각광받는 분야는 금융산업이다. 블록체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2008년 공개한 ‘비트코인: 개인 대 개인 전자 화폐 시스템(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제하 논문에서 “나는 완전히 개인 대 개인 방식이며 신뢰할 수 있는 제3자가 필요치 않은 새로운 전자 화폐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고 천명했다. 거래 정보를 모든 블록에 기록하고 참여자가 이를 공유하는 특성상 블록체인은 어느 금융기관보다 높은 신뢰성과 보안성을 확보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암호화폐 시장 규모도 급성장하고 있다. 금융정보분석원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기준 국내 암호화폐 시가총액(거래소별 코인 가치)은 55조2000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 글로벌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1조8020억 달러(약 2206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에 주요국 중앙은행까지 블록체인 기반의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발행을 검토하고 나섰다. CBDC는 일종의 디지털 법정 화폐로, 이미 상용화된 디지털 금융 거래와 달리 시중은행을 거칠 필요가 없다. 결제와 송금 과정이 간편해 금융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것. 중앙은행 처지에선 통화 정책을 펴기가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은행은 이미 ‘디지털 위안화(e-CNY)’를 개발해 CBDC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당초 달러 패권 유지를 위해 CBDC에 회의적이던 미국도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민주적 가치에 부합하는 CBDC 개발을 촉진하겠다”고 밝히는 등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은 카카오 자회사 그라운드X를 사업자로 선정해 CBDC 모의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블록체인업계에선 올해 하반기 즈음이면 CBDC 도입을 위한 초기 단계의 기술적 준비가 끝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런 분위기에 발 맞춰 시중은행들도 디지털 자산 관련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1월 신한은행은 디지털 자산 수탁업체 한국디지털자산수탁에 전략적 지분 투자를 감행했다. 같은 해 7월 우리은행도 블록체인 기술업체와 디지털자산 수탁 합작법인 ‘디커스터디’를 설립했다.

    문제는 금융 현장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는 법과 제도에 있다. 지난해 3월 시행된 개정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에 따라 거래소 간 가상자산 이동 기록을 수집·보관하는 ‘트래블 룰(travel rule)’이 적용됐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권고한 일종의 ‘가상자산 실명제’라고 할 수 있다. 원화로 100만 원 이상 가상자산을 이전하는 사업자는 고객 이름과 가상자산 주소를 기록해 상대 거래소에 제공해야 한다. 투명한 자산 거래를 위해 필요한 제도지만, 블록체인 기반의 금융산업 전반을 관장하는 포괄적 제도는 아니다. 이에 대해 한국블록체인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수용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특금법이 제정됐지만 블록체인산업 활성화보다 규제 중심의 제도”라면서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가상자산과 관련해 ‘업권법’(業權法: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근거법) 도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 시장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지난해 5월 검찰총장 퇴임 후 정치 행보 와중에 블록체인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만나 업계 현안에 대해 청취하기도 했다. 대선 과정에선 디지털자산 부당 거래를 근절할 ‘디지털산업진흥청’ 설립 및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공약했다. 다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블록체인 등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에 조예가 깊은 민간 전문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블록체인 분야 전문가들은 적어도 부총리급 장관을 둔 전담 부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부산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블록체인 관련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려 해도 중앙 부처가 제동을 거는 등 규제 장벽도 여전히 높다.

    “디지털 전환 중요한 시점”

    박수용 교수는 “지금은 금융뿐 아니라 교육·보건·산업 등 전 분야의 디지털 전환 측면에서 중요한 시점”이라며 “새 정부가 디지털자산과 관련해 금융위원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디지털자산위원회’나 규제보다 산업 진흥에 중점을 둔 ‘디지털금융산업진흥원’ 같은 기관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블록체인 기술이 가장 적극적으로 적용된 분야는 디지털자산 시장이다. 현실 자산을 암호화폐화하고 예술 작품도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화하는 식이다. 아쉽게도 이제까지는 정부가 이러한 블록체인과 금융의 결합을 대체로 위험한 것으로 치부해 금지·규제 중심의 정책을 펴왔다. 블록체인 같은 신산업 분야는 금지 사항만 정하는 ‘네거티브(negative) 규제’로 대응해야 한다. 자금세탁 같은 불법 행위는 엄벌해 소비자를 보호하되, 그렇지 않은 다양한 사업 시도에 대해선 기업 자율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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