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레오강에서 훈련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동아DB]
부진한 경기력에 구설만 많다
이후 대표팀은 오스트리아로 날아갔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시작한 곳이었다. 당시 대표팀은 인스부르크 전지훈련을 통해 최종 23인을 선정했다. 신태용호도 비슷한 시나리오를 꿈꿨을 터다. 선선한 날씨에,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꾸려져 있었다. 수비진의 조직력 강화와 공격 옵션의 담금질로 러시아월드컵 본선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 볼리비아, 세네갈과 평가전도 잡아놓았다. 신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지 만 1년도 안 된 지금, 최정예 멤버가 호흡을 맞춘 시간도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더없이 소중한 경기였다. 마지막 2경기 180분 동안 하나라도 더 끄집어내 본선에 대비해야 했다.하지만 기대는 대부분 엇나갔다. 어째 흘러가는 모양새가 뒤죽박죽이었다. 볼리비아와는 득점 없이 무승부, 세네갈과는 비공개로 맞붙어 0-2로 패했다. 이기지 못할 수 있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직전에도 잉글랜드와 1-1로 비겼고, 프랑스에겐 2-3으로 졌다. 상대 수준 등은 고려해야겠으나, 모의고사 성적이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과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결과보다 실망스러웠던 건 내용이다. 명확히 무엇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수비 조직은 무르고, 공격 날은 무뎠다. 첫 경기 스웨덴전에 맞춰 조율 중이라고는 해도, 전체적으로 삐걱대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논란 아닌 논란도 계속 일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여론의 불같은 반응이 따랐다. 이를 토대로 한 취재진의 질문에 당사자가 항변하는 구도로 흘러갔다. 꼬투리를 잡아 의도적으로 흔든다는 시선도 있지만, 그만큼 평탄치 못한 행보라는 것을 가리키는 지표이기도 했다. 가령 ‘파워프로그램’. 강도 높은 훈련과 휴식을 번갈아 반복하며 몸 상태를 올리는 피지컬 관리법이다. 열흘간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치르는 단기전에 대비, 쏟는 힘을 극대화하려는 작전 가운데 하나로 통한다. 신 감독은 오스트리아 입성 당시 “파워프로그램을 하고 싶어도 그럴 여건이 안 된다”며 망설였다. 실제 선수 개개인의 소속 리그 및 출전 시간이 달랐고, 이에 따른 체력 수준도 판이했다. 하지만 6월 5일 급작스레 이를 실시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여기까지는 대표팀 고유 권한이다. 좋은 성과를 내려면 무엇이든 해야 할 시기다. 다만 볼리비아전에서 선수단 전체가 몸이 무거워 보이자 거센 역풍이 불었다. 신 감독은 직후 “계획했던 일정”이라고 털어놨다. 이번 월드컵 준비 과정을 철저히 가리려 했던 신 감독이다. 정보전에 크게 좌우될 수 있기에 일리가 있다. 다만 가뜩이나 좋지 못한 경기 내용에 앞뒤 말까지 다르다 보니 지켜보는 이들의 전폭적 지지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경기력과 직결되는 부분도 있었다. 대표팀은 볼리비아를 상대로 4-4-2를 가동했다. 김신욱-황희찬 투 스트라이커 체제로 발을 맞췄다. 지금까지 메인 포메이션으로 활용해온 형태에 새로운 조합을 내세웠다. 역시 대표팀 고유의 권한이다. 본선에서 활용할 시스템과 선수를 다양하게 점검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무득점으로 경기를 마친 뒤 신 감독의 ‘트릭’ 발언이 또다시 불을 붙였다. 전술적 변칙을 논하려 했던 신 감독의 구상대로라면 트릭 대신 더 적확한 표현이 나와야 했다. 긁어 부스럼 만들 수 있는 말에 여론은 쉼 없이 요동쳤다. 축구팬들의 신경이 곤두선 월드컵이라면 더욱 신중히 답해야 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이제는 자신감 싸움
6월 7일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티볼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볼리비아와 평가전에서 황희찬(오른쪽)이 골키퍼의 마크를 피하고 있다. [동아DB]
대표팀 코칭스태프도 이 경기를 지켜보며 운영 방안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유럽 특유의 피지컬 등을 이유로 쉽지 않은 경기를 예상했다. 다만 외부에서는 의외로 해볼 만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체격이 큰 상대팀 선수 개개인의 움직임이 둔하니 공략법이 없지 않으리란 얘기다. 지난달 명단 발표 당시 “스피드가 빠른 이승우가 스웨덴 수비진을 헤집어놓을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던 신 감독의 노림수와도 맞물리는 바가 있다. 스웨덴리그에서 뛴 적이 있어 상대 선수의 습성을 잘 아는 문선민도 비슷한 점을 짚었다.
물론 우려도 크다. 대표팀 코치로 브라질월드컵에 다녀왔던 한 지도자는 “월드컵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무대다. 선수들이 갑자기 지면에서 발을 제대로 못 떼는 경우도 생긴다”고 지적했다. 중압감에 휩싸여 평소만큼 뛰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더 나아가 월드컵을 미리 경험한 선수들이 한 발짝씩 더 뛰며 어린 자원들을 독려하는 원 팀 플레이를 강조했다.
월드컵 열기가 확실히 떨어졌다. 척도 중 하나인 광고 판매율부터 크게 감소했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9회 연속 진출한 본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어떻게든 스웨덴, 멕시코, 독일과 차례로 부딪혀야 한다. 이제부터는 자신감 싸움이다. 손흥민이 “어떻게 자신감을 챙겨 나가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줄곧 말해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실수해도 뻔뻔히 밀어붙여야 할 시기가 왔다. 한국 축구를 성원한 팬들이 정녕 원하는 건 지레 물러서지 말고 대차게 싸우는 그림일 테다. 이는 다음 월드컵으로 이어지는 연속성 차원에서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무릎을 꿇더라도 뭔가를 건질 수 있는 패배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