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철 기자]
사진 속 얼굴을 몰라봤다면 당신은 ‘아재’가 맞다. 지난해 6월 그의 주례사를 촬영한 ‘인생선배의 개념 주례사’라는 동영상은 1월 17일 현재 조회 수가 793만 건을 넘어섰다. 내용은 결혼해서 꼭 해야 할 것과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얘기였다. 꼭 해야 할 것은 배우자의 꿈이 무엇인지를 공유하고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평생의 조력자가 되라는 것이었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배우자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일로, ‘비교를 통해 얻는 것은 비참과 교만뿐’이라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남편이 아내의 가사와 육아를 돕는 게 아니라 함께 나눠 해야 하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꿈에 대한 이야기는 젊은이들의 가슴을 덥혔고, 가사분담에 관한 이야기는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난해 12월 그가 공동집필한 신간 ‘일취월장’이 출간됐다. 한 달 만에 4만 부가 팔렸고 1월 둘째 주 기준 교보문고 경제·경영 부문 2위에 올랐다. ‘일을 잘하기 위한 8가지 원리’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어렵게 회사에 들어간 신입사원의 63%가 퇴사를 생각하고, 그렇게 퇴사해 창업해도 5년 뒤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30%밖에 안 되는 한국 사회 직장인을 겨냥했다고 했다. 574쪽 분량의 이 책은 내공이 탄탄했다.
1월 15일 저자인 신영준 박사의 사무실이 있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올해 나이 서른여섯. 그러니까 서른다섯 나이에 주례선생이 된 거다. 게다가 신랑인 이웅구 체인지그라운드 대표는 그보다 겨우 한 살 적다고 했다. 먼저 삼성디스플레이에 근무하다 팽개치고 나온 그의 남다른 인생행로에 대해 물었다.
“싱가포르국립대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디스플레이 개발책임연구원으로 있었으니까 안정적 인생이 보장된 삶이었죠. 노벨물리학상 수상자(2010년 수상자인 안드레 가임 경)와 공동논문을 발표하는 영광을 누렸고, 삼성에서도 계속 상위 고과를 받았으니까 아마 마흔 즈음이면 부장이 됐을 거예요. 그런데 2014년 난임과 유산의 어려움을 이기고 딸을 낳고 나니 ‘이렇게 나만 잘 사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딸이 과연 이 사회에서 행복하게 자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민 가는 것도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그렇지만 외국에는 인종차별은 물론 문화적 차이도 있기 때문에 결국 이 땅에서 행복할 때 딸의 행복이 가장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그래서 제 딸이 컸을 때 불합리한 일로 불행해지는 일이 없도록 내가 한국 사회를 한번 바꿔보자는 생각으로 2015년 삼성을 나오게 된 겁니다.”
돈키호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다섯 살인 딸을 위해 세상을 바꾸려 그 좋은 직장을 그만뒀다니. 그런데 그걸 실천하는 방식은 매우 현실적이고 전략적이었다. 그는 ‘공부법’이라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솔루션을 통해 영향력을 획득하고, 다시 이를 지렛대 삼아 사람들을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시키겠다는 플랜을 세운 뒤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고 있다.
실제로 그는 싱가포르국립대와 삼성에서 후배나 부하직원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들의 역량을 끌어내는 멘토 역할을 하면서 이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래서 회사 밖에서 그가 준비한 첫 아이템은 엉뚱하게도 영어단어장이었다.
실제 원어민이 사용하는 영어단어를 빅데이터를 활용한 빈도수 통계에 따라 우선순위로 제시한 ‘BIGVOCA core’다. 2016년 출간된 이 책은 영어학습지 부문 1등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베스트셀러 종합순위 3위에도 오를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공돌이’가 만든 영어단어장
소셜미디어를 통해 폭발적 조회 수를 기록한 신영준 박사의 동영상 캡처 화면.
영문학이나 어학 전공자도 아닌 그는 과연 어떻게 영어단어 빈도수와 관련된 빅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을까. 정답은 구글에 있었다. 구글을 창업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전 세계 모든 책을 스캔해 디지털화하는 ‘구글 북스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전자문서화한 책이 2000만 권을 넘어섰는데 구글은 이 중 2007년까지 작업한 영어책의 어휘 통계를 검색할 수 있는 ‘Ngram Viewer’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Ngram Viewer에 팩토리라는 영어단어를 입력하면 1400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팩토리가 전체 단어 가운데 몇%씩 쓰였는지 그래프로 제시됩니다. 저는 구글의 원데이터에 접근할 권한이 없어 수만 개의 말뭉치를 입력해 그 빈도수를 하나하나 조사하다 보니 3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죠. 이런 식의 빅데이터로 접근한 영어단어장이 한국은 물론 해외에도 없어서 지금까지 14만 부가 판매됐고 일본과 대만에도 판권을 팔았습니다. 지난 연말 일본 최대 영어교재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했는데 벌써 2쇄를 찍었다고 하더군요.”
인터뷰 도중 신 박사가 가장 많이 되풀이한 말은 “세상이 바뀌었다니까요”였다. 그의 말처럼 “영문학과 전혀 무관한 공돌이가 만든 영어교재가 국내시장을 넘어 해외시장에까지 진출한 사건”이 가능해진 것도 그 때문이다. 세상이 통계적 합리성에 기초해 움직이는 복잡계라는 통찰이 그 핵심에 있다.
“파레토 법칙 아시죠? 소득 상위 20%가 전체 소득의 80%를 차지한다는 그 법칙이 복잡계의 작동 방식입니다. 이를 ‘멱법칙’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신문사 기사 가운데 조회 수 1~10위까지 있다고 할 때 1위와 10위의 조회 수 차이는 수십%가 아니라 수백%로 확 벌어집니다. 이는 출판계에서 베스트셀러 1위와 10위의 판매량, 영화계에서 흥행성적 1위와 10위의 관객 숫자 차이에도 적용 가능하죠.”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통계 및 수치에 입각한 합리적 사고와 예측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특히 의사결정권을 지닌 4050 이상 세대가 이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 보니 그 아랫세대에게 ‘삽질’을 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그의 문제의식이다.
“한국 기성세대의 훌륭한 점은 자녀교육을 잘 시켰다는 데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문해력(文解力) 조사에서 한국 10대는 1위예요. 2030도 중간은 됩니다. 문제는 4050세대인데 꼴찌에서 3번째입니다. 문해력은 낮은 순에서 높은 순으로 1~5급으로 분류되는데 한국 4050세대의 문해력은 2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정상적 토론이 불가능한 레벨이라는 소리죠. 왜 그럴까요. 그분들은 책을 읽지 않습니다. 1년에 평균 3권도 안 읽는데 어떻게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자녀들이 일터에 나와 제대로 일하려 해도 의사결정권을 쥔 부모 세대 때문에 온갖 불합리와 감정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에 봉착해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그가 바꿔야 할 대상은 세상이 아니라 이미 바뀐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인 셈이었다. 신 박사는 2030세대와 4050세대 사이에 끼어 있는 자신이 그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셜미디어를 집중 공략하다
[조영철 기자]
그를 한나라의 고조 유방이라고 한다면 고 작가가 장량이고, 이 대표는 병참과 후방지원을 전담한 소하라 할 수 있다. 책벌레인 고 작가는 신 박사와 함께 어떤 콘텐츠를 제공할 것인지를 기획하고 그에 대한 자료 수집과 집필을 전담했다. 사업가적 수완이 좋은 이 대표는 신 박사와 고 작가가 만든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젊은이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신 박사와 고 작가의 콤비 플레이로 탄생한 첫 책이 2017년 1월 출간된 ‘완벽한 공부법’이다. 각종 시험과 업무에 시달리는 2030세대를 겨냥해 어떻게 해야 학습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 구체적 노하우를 전달한 책이었다. 신 박사가 고안한 데일리 리포트(DR)를 쓰라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공부나 일을 할 때 2시간 간격으로 자신의 몰입도를 good/so so/bad로 나눠 매일 평가, 기록하다 보면 더 적은 시간으로 더 효과적인 성취가 가능하다는 것. 이 책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홍보와 맞물려 15만 부가 팔린 스테디셀러가 됐고, ‘인생공부’와 ‘체인지그라운드’의 조회 수를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신 박사는 이를 통해 2030세대의 인기 강사로 급부상했다. 실제 그에겐 한 달에 적을 땐 15개, 많을 땐 50개의 유료 강연 요청이 쏟아진다고 한다. 진짜 놀라운 것은 지난 3년간 펴낸 6권의 책 인세 수입과 한 달에 다섯 번가량의 유료 강연료 외에 활동은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장이란 직함 아래 체인지그라운드의 최고의사결정권자 역할을 맡고 있고, 로크미디어 출판사 단행본 기획과 마케팅을 총괄하지만 월급을 한 푼도 받지 않습니다. 사실 지난해 인세 수입과 강연료를 합치면 제가 삼성 다닐 때 연봉보다 많습니다. 나머지는 사회공헌 활동이라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일합니다. 전국 서점을 찾아다니면서 지금까지 1000여 분의 고민 상담을 해드렸고, 매달 다섯 번 이상 10~20명을 대상으로 카페에서 무료강연도 펼쳤습니다. 커피값도 제가 내고 책을 무료로 사드릴 때도 많죠. 그렇게 3000여 건의 고민 상담을 해드리다 보니 우리 국민의 고민 역시 멱법칙을 따르고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상위 20%를 차지하는 공통 고민을 해결해주면 전체 고민의 80%가 해소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교육기업인 대교와 손잡고 가칭 ‘대국민 고민해결상담 프로젝트’도 진행하려 합니다.”
고 작가와 두 번째 공동작업 산물인 ‘일취월장’은 4050세대를 겨냥했다. 고 작가는 이 책의 집필을 위해 경영서 200여 권을 독파하고 동아일보에서 발간하는 경영전문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3년 치를 샅샅이 훑어봤다고 한다. 신 박사도 경영서 70여 권을 읽고 고 작가가 쓴 초고를 바탕으로 넣고 뺄 것을 결정해 한국적 상황에 맞는 이론화작업을 펼쳤다.
‘이기적 이타주의자’가 되자
신영준 박사가 펴낸 책들. [사진 제공 · 로크미디어]
하지만 ‘일취월장’의 혜택을 가장 많이 입은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 ‘일취월장’은 3월을 목표로 2개의 스타트업 창업을 준비 중이던 저 자신을 위한 CEO 공부용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는 영어교육 플랫폼 업체(가칭 안드로메디안)이고 다른 하나는 학습용 인공지능(AI) 개발업체(가칭 더 비)입니다. 안드로메디안은 저나 고 작가가 안드로메다에서 온 사람 같다는 얘기를 들어 지은 이름이고, 더 비는 최고를 지향한다는 목적에서 The Best의 약자이자 B의 자세로 A를 지향하자는 의미로 지었습니다.”
그렇다면 ‘일취월장’의 내용 가운데 어떤 부분이 가장 큰 공부가 됐을까.
“첫 장에 등장하는 ‘운’이죠. ‘일취월장’이 다른 경영이론서와 크게 차이 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성공에는 운이 크게 작용하는데 기업가는 대부분 자신의 통찰력 덕분에 성공했다고 착각하는 것이 패착의 원인이 됩니다. 인생처럼 기업 운영에서도 자기성찰 능력이 중요합니다. 세상이 운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면 오히려 운이 나쁠 때에 대비하는 더 치밀한 경영의 토대를 마련하게 됩니다.”
‘일취월장’에선 ‘굿 컴퍼니’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그 대표적 사례로 언급된 미국 홀푸드 마켓의 창업자 존 맥키는 “나는 충분히 부유해졌다”며 2007년 이후 연봉 1달러만 받고 이익 대부분을 직원과 지역사회에 돌려주고 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람은 먹지 않고 살 수 없다. 기업은 이익을 내지 않고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먹기 위해 살지 않는다. 기업도 이익을 내기 위해서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
신 박사는 ‘일취월장’을 쓰면서 한국적 굿 컴퍼니의 사례를 열심히 찾았지만 실패했다며 한국적 굿 컴퍼니를 직접 만들고 싶다고 했다.
“굿 컴퍼니가 많아지려면 (미국 경영학자) 애덤 그랜트가 말한 ‘이기적 이타주의자’가 많아져야 합니다. 뜨거운 열정을 가졌다면 그럴수록 더 냉정해져야 합니다. 동기가 숭고할수록 결과 중심의 사고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더 좋아지고 제 딸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