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상한(?) 선택을 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이야기입니다. 넥센은 7월 31일 지난해 세이브 1위(36세이브)였던 김세현(30·개명 전 김영민)과 ‘대주자 전문 요원’ 유재신(30)을 KIA 타이거즈로 보내고 왼손투수 손동욱(28)과 역시 왼손투수 이승호(18)를 데려오는 2 대 2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이로써 넥센은 올해 네 차례 트레이드로 선수 5명을 내보내고 6명을 받았습니다. 한 팀이 한 시즌에 트레이드를 4번이나 한 건 2006년 두산 베어스 이후 처음입니다.
넥센이 옛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해 ‘우리 히어로즈’라는 이름으로 프로야구 1군 무대에 뛰어든 게 2008년. 그 후 10년 동안 프로야구에서 진행된 트레이드는 총 51번입니다. 그중 22번(42.3%)이 넥센 선수가 나가거나 들어오는 트레이드였습니다. 물론 넥센이 이렇게 선수를 많이 바꾼 데는 창단 초창기 자금 부족도 한몫했습니다. 하지만 넥센은 창단 후 지난해 처음으로 흑자(약 189억8350만 원)를 기록하며 재정적으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데요. 그런데도 선수를 이렇게 계속 바꾸는 이유는 뭘까요.
현재를 미래로 바꾸기
넥센이 올해 추구하는 방향은 확실합니다. 넥센에서 올해 네 차례 트레이드로 내보낸 선수는 평균 나이 28세, 받은 선수는 22.5세입니다. ‘즉전감’(즉시전력감)인 베테랑 선수를 내주고 유망주를 받아온 겁니다. 현재와 미래를 바꾼 셈이죠. 또 받은 선수 6명은 모두 투수고 이 중 5명은 왼손잡이입니다. 그리고 왼손투수 가운데 3명은 신인선수 지명회의(드래프트) 1라운드 출신입니다. 요컨대 올해 넥센의 트레이드 키워드는 ‘가능성 있는 왼손투수 수집’입니다.현역 시절 왼손투수였던 고형욱(46) 넥센 단장은 지난해까지 스카우트 팀장을 지냈습니다.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황금사자기를 비롯해 전국고교야구대회를 찾아다니며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고 단장은 “왜 저 선수를 데려왔느냐”고 트레이드 배경을 물을 때마다 “꾸준히 지켜본 선수”라고 답할 때가 많습니다. ‘강속구 왼손투수는 지옥에 가서라도 데려오라’는 야구 격언이 있습니다. 하지만 야구 격언에는 ‘유망주는 유망주일 뿐’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넥센은 이렇게 즉전감을 내주고 유망주를 모으는 것으로 꾸준히 전력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고 단장은 “넥센 왕조를 만들고 싶다. 트레이드를 통해 첫발을 내디뎠다고 보면 된다”며 “2~3년 뒤에는 정말 좋은 선수가 우리 팀에서 많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넥센 팬들이 쓰는 은어 가운데 ‘싸융짱문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사이버투수’ 김세현, 강윤구(27·NC 다이노스), 장시환(30·롯데 자이언츠), 문성현(26·상무), 오주원(32·개명 전 오재영)을 가리킵니다. 이들 모두 넥센에서 애지중지 키운 유망주였지만 결국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한 채 3명이 팀을 떠났습니다. 그만큼 넥센은 투수를 못 키우기로 소문난 팀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이드암 한현희(24)와 오른손 정통파 조상우(23)가 잇달아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두 선수가 부상으로 빠진 지난해에도 ‘옆구리 투수’ 신재영(28)이 15승7패 평균자책점 3.90으로 신인상을 타면서 마운드를 지켰습니다. 올해도 오른손 정통파 최원태(20)가 경기당 거의 6이닝을 소화하면서 8월 9일 현재 9승(6패)을 기록해 선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넥센에게 부족한 건 왼손투수입니다. 현재는 왼손잡이 앤디 밴 헤켄(38)이 팀 에이스를 맡고 있지만 외국인 투수라는 한계에다 마흔을 앞둔 나이가 걸림돌입니다. 고 단장 역시 “트레이드를 진행하면서 투수진의 좌우 균형을 맞추려 애썼다. 그래야 원활한 마운드 운용이 가능하다”며 “김광현(SK 와이번스), 양현종(KIA) 이후 뛰어난 왼손투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 학생 야구 무대에서도 좋은 왼손투수가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한국 야구에서 왼손투수가 한층 귀해지면 트레이드로 데려온 선수들의 가치가 더욱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효율적 트레이드가 우승 못한 이유?
넥센은 프로야구 10개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모(母) 기업이 없습니다. 그 탓에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전력 보강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역시 넥센이 트레이드 시장에서 ‘큰손’이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넥센에서 ‘선수 가치’라고 하면 팀 전력 향상 외에도 트레이드 시장에서 ‘교환가치’라는 뜻도 담고 있는 셈입니다. 트레이드 시장에서 승자가 되려면 값이 떨어지기 시작한 선수를 비싸게 팔고, 값이 오르기 전 선수를 싸게 사오는 게 핵심입니다.
일반적으로 넥센이 ‘선수 팔이’를 그만뒀다고 평가하는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조중근(35·경찰야구단 코치)을 kt 위즈에, 서동욱(33)을 KIA에 대가 없이 내준 두 사례를 제외하면 넥센발(發) 트레이드는 모두 12건. 이 12건을 통해 넥센은 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Wins Above Replacement·WAR) 66.2를 얻었습니다. 트레이드 덕에 넥센은 1년 평균 5.5승(≒66.2÷12)을 더 거둔 셈입니다. 하지만 트레이드로 자꾸 이득을 보면 상대 팀에서 ‘너희랑은 트레이드 안 한다’고 나올 게 당연한 일. 넥센은 다른 팀도 확실히 챙겼습니다. 같은 기간 이 트레이드 12번을 통해 상대 팀은 WAR 52.3을 얻었습니다. 넥센과 트레이드하면서 평균 4.4승(≒52.3÷12)을 추가로 기록한 겁니다.
이성훈 SBS 기자가 ‘야구친구’에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넥센은 같은 기간 각 구단에서 지명한 신인선수 누적 WAR가 NC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팀이기도 합니다(표 참조). 2013년 1군 무대에 뛰어든 NC가 신생팀 우선지명권을 활용했다는 걸 감안하면 넥센의 신인선수 보는 눈이 퍽 정확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선수를 잘 뽑고 잘 데려왔다고 우승한 것도 아닙니다. 구단은 ‘가을야구’에 만족할지 몰라도 넥센 팬은 우승을 원할 겁니다. ‘우승 프리미엄’을 받아야 모 기업 없는 구단 가치도 올라갈 게 당연한 일.
김정준 전 한화 이글스 코치는 “넥센이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등 꾸준히 강한 팀, 좋은 팀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 넥센이 우승하지 못했던 이유도 가장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과연 이 효율은 앞으로 넥센을 어디로 이끌고 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