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1

2020.08.07

항공업계 2차 타격, 기내식과 부품 '줄도산' 위기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20-08-02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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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이터링업체 3월 이후 생산량 90% 감소

    • 항공부품 납품 안 돼 8개월 분량 공장에 쌓여

    • “실직 납품중단 자금고갈 3중고, 연말까지 버티기 힘들어”

    텅 비어 있다시피 한 대한항공 케이터링센터 내부.

    텅 비어 있다시피 한 대한항공 케이터링센터 내부.

    항공업계가 시계제로에 빠졌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인수합병(M&A)이 무산된 데 이어, 아시아나항공 역시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인 HDC현대산업개발이 ‘재실사’를 요구하면서 ‘인수 포기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 맏형인 대한항공 또한 사면초가 위기에 처했다. 4월 국책은행을 통해 1조2000억 원의 긴급 유동성을 지원받는 대가로 유휴자산 매각을 약속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대했던 서울 송현동 부지 매각은 서울시 공원조성계획과 충돌하면서 미뤄졌고, ‘알짜사업’인 기내식과 기내면세품 사업을 매물로 내놓았지만 한진그룹 경영권을 놓고 조원태 회장 진영과 분쟁 중인 3자 주주연합(KCGI·반도건설·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제동을 걸고 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올 연말 이후 닥칠 항공업 종사자의 대량실직. 현재 정부로부터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고 있는 유급휴직자는 대형항공사를 포함해 국적항공사 8곳의 1만7905명, 무급휴직자는 6336명으로 전체 직원의 65%에 달한다. 지원금 지급 기한이 당초 8월 말에서 연말로 늘어나긴 했으나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현 위기가 항공사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업계는 “항공사가 무너지면 항공업 관련 모든 산업이 줄도산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분석에 의하면 우리나라 항공 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종사자는 약 25만 명에 달한다. 따라서 국내 항공 산업이 붕괴할 경우 16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국내총생산(GDP) 11조 원이 증발한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대한항공 케이터링센터 매각 진행 중

    전 세계적으로 항공기 운항이 거의 중단되면서 케이터링 납품 식수가 90% 이상 줄어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항공기 운항이 거의 중단되면서 케이터링 납품 식수가 90% 이상 줄어들었다.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기내 케이터링을 비롯해 항공 정비, 항공유 등의 수요가 자동으로 급감한다. 먼저 가장 눈에 띄는 분야가 기내식 사업이다. 현재 국내에는 대한항공 케이터링센터를 비롯해 LSG스카이셰프코리아, 게이트고메코리아, 샤프도앤코코리아, CPS 등 5개 업체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한항공은 사내에서 기내식을 조달하지만, 대한항공을 제외한 다른 글로벌 항공사들은 LSG스카이셰프코리아 혹은 게이트고메코리아를 통해 기내식을 조달받는다. 



    독일항공사 루프트한자 계열인 LSG스카이셰프코리아는 2019년 기준 매출액이 731억 원에 달한다. 중국 하이난항공그룹 계열의 게이트고메코리아는 지난해 1537억 원 매출을 기록했다. 샤프도앤코는 지상조업 및 항공정비 사업체인 샤프에비에이션케이(Sharp Aviation K)와 오스트리아 기내식업체 도앤코(DO&CO)가 합작해 만든 곳으로, 매출액은 2018년 기준 70억 원 정도. 특히 이 업체는 할랄식품(회교도가 먹는 음식) 기내식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해왔다. 이 밖에도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티웨이 등 저비용항공사(LCC)를 주 거래처로 하는 CSP가 있다.

    해당 업체들의 매출이 바닥을 치기 시작한 건 3월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하늘길이 막히면서다. 매각을 준비 중인 대한항공 케이터링센터는 코로나19 사태 전에는 하루 약 8만 개의 기내식을 만들었지만 현재는 3000개도 만들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인천국제공항 화물터미널 인근에 위치한 대한항공 인천 케이터링센터는 대한항공 자사뿐 아니라 인천국제공항에 취항하는 외국 항공사에도 기내식을 제공해왔는데, 현재는 대한항공과 진에어 두 군데에만 기내식을 공급한다.

    대규모 냉장고 시설은 창고로 사용 중이며, 항공기에 차곡차곡 실려 있어야 할 카트도 공장 안에 수북이 쌓여 있다. 총 2100여 명의 케이터링센터 직원 가운데 600여 명이 권고사직으로 퇴사했고, 협력업체의 경우에도 직원 1300명을 대상으로 무급휴직 및 권고사직이 이뤄졌다. 현재 이곳으로 출근하는 인원은 35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대한항공은 7월 초 기내식 사업 매각을 결정하고, 국내 2위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거리두기’ 분위기에 기내식 수요 회복 힘들 듯

    나머지 업체도 사정이 비슷하다. LSG스카이셰프코리아는 3월 이후 생산량이 90% 감소했다. 하루 1만5000개씩 생산하던 기내식을 현재는 1500개밖에 만들지 않고 있다. 거래 항공사 수도 17개에서 5개로 줄었다. 직원 수는 협력업체까지 포함해 400명 정도인데, 이 중 절반 이상이 휴직 상태다. 완성된 기내식을 비행기로 실어 나라는 트럭도 총 14대 중 6대만 운행하고 있다. 

    김기진 LSG스카이셰프코리아 지사장은 “정부에서 나오는 고용유지지원금으로 인건비를 충당하고 있다”며 “임차료도 인천국제공항공사 측이 20% 할인해주고 있지만, 지금 같은 상태가 1년 이상 지속된다면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설령 코로나19가 종식된다 하더라도 기내서비스 수요가 다시 살아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 지사장은 “향후 몇 년 동안은 비행기에서 식사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 것”이라며 “지금도 승무원과 승객 간 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내식 메뉴를 하나로 통일하고 내용물도 간소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유럽항공안전국은 승객과 승무원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는 기내서비스 표준을 발표했고, 조만간 전 세계가 이를 수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기내식 생산업체 간 경쟁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김 지사장은 “수요가 줄어들면 업체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조만간 몇몇 업체는 도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납품 길 막힌 항공부품 제조업체들

    항공부품 제조업체 공장에 납품 기일이 지난 항공부품들이 쌓여 있다. [사진제공․ 하이즈항공]

    항공부품 제조업체 공장에 납품 기일이 지난 항공부품들이 쌓여 있다. [사진제공․ 하이즈항공]

    항공업계 위기는 항공부품 제조업으로도 이어진다. 현재 국내 항공부품 제조업체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중심으로 경남 사천시와 진주시 근처에 60여 개가 몰려 있다. 이들은 대부분 비행기 기체에 들어가는 부품들을 만들어 보잉, 에어버스, 코막 등 글로벌 항공기 제조사에 납품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비행기 제조 수요가 전멸하다시피 하면서 공장에는 이미 만들어놓은 제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보잉787 날개 부분에 사용되는 대형 복합소재 생산업체 ‘하이즈항공’은 8개월째 제품이 나가지 못하고 있다. 김광엽 하이즈항공 부사장은 “유동자금이 200억가량 막힌 상황”이라며 “비행기 설비는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지금 만들어놓은 제품들이 나중에 경기가 회복됐을 때도 다 팔릴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부품업체들은 보통 항공기 제조사와 장기간계약(LTA)을 맺어 수요가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긴 하나, 지금처럼 유통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는 자금 경색이 심각해진다. 

    김 부사장은 “부품 제조에 필요한 소재를 대부분 수입해 쓰고 있는데, 이들 업체와의 계약도 장기계약으로 돼 있어 발주를 취소하려 해도 이미 물건을 배에 실어 보낸 경우에는 되돌려 보낼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공장에는 수입산 소재와 납품 약속일이 지나버린 부품들이 수북이 쌓여 있는 실정이다. 

    가장 큰 문제는 급여. 정부에서 주는 고용유지지원금으로 버티고 있긴 하지만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현재 직원 550여 명이 기본급만 받고 있는 실정이다. 김 부사장은 “항공부품 제조업은 고급인력 확보가 매우 중요하고, 입사 후 2~3년 교육을 받은 뒤 현장에 투입되기 때문에 직원들이 저임금을 견디지 못해 퇴사하면 그만큼 회사의 기회비용 손실도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직원 70명 규모의 ‘DNM항공’은 현재 10명가량만 근무하고 있다. 나머지는 유급휴직 내지 교육를 받고 있다. 당초 직원 수는 이보다 적었는데, 지난해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고용을 30% 늘렸다. 황태부 DNM항공 대표는 “외환위기 때는 조금씩이라도 납품했는데 지금은 납품이 아예 중단되고, 경영 자금은 마르고, 고용 유지도 불투명해 3중고를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대책 마련을 위해 7월 9일 항공제조업을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 대상에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그전에는 항공운수업 등에 한정돼 있던 지원금을 항공기 부품제조업종까지 확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대기업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중소기업 협력업체까지 아우르지는 못한다. 더욱이 일시적인 금전 지원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황 대표는 “내수시장을 활용하는 방안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차원에서 국산 전투기나 관용 헬기를 발주하는 등 부양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시도별로 소방헬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외국산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번 기회에 국산으로 교체하는 작업이 이뤄져 소재부품 국산화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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