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가이아나 ‘석유 대박’에 국제원유시장 들썩

기업공개 앞둔 세계 최대기업 사우디 아람코, 기업가치 하락 가능성에 전전긍긍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9-11-1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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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석유회사 엑슨모빌 시추선이 가이아나 심해에서 원유를 탐사하고 있다. [엑슨모빌]

    미국 석유회사 엑슨모빌 시추선이 가이아나 심해에서 원유를 탐사하고 있다. [엑슨모빌]

    가이아나는 동쪽은 수리남, 서쪽은 베네수엘라, 남쪽은 브라질, 북쪽은 459km에 달하는 해안선을 따라 대서양을 접하고 있는, 남미에서 3번째로 작은 나라다. 국토 면적은 21만4969km2이며 대부분 열대우림과 습지라 인구가 78만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4938달러(약 576만6500원)로 남미에서 볼리비아 다음으로 최빈국이라는 얘기를 들어왔다. 

    가이아나는 1498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된 이래 네덜란드에 이어 1815년부터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으며, 남미 국가들과 달리 전체 인구의 절반이 인도 출신이다. 그 이유는 1800년대 남미 곳곳에서 노예들의 반란이 잇따르자 영국이 노예 대신 인도에서 노동이민을 받아 가이아나에 공급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계 주민들이 앞장서 독립운동을 벌였으나 영국의 탄압으로 번번이 실패했고 1966년에야 겨우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다. 덕분에(?) 가이아나는 남미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가이아나 내년 경제성장률 86% 전망

    가이아나의 심해유전 추정 매장지 지도. [엑슨모빌]

    가이아나의 심해유전 추정 매장지 지도. [엑슨모빌]

    가이아나가 국제사회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계기는 1978년 발생한 인민사원 집단자살 사건이었다. 미국인 사이비 교주 짐 존스는 가이아나 정글에 ‘존스타운’이라는 정착촌을 만들고 자신의 신도 1000여 명과 함께 신앙생활을 해왔다. 그런데 이곳에서 인권유린 등이 자행되고 있다는 소식에 미국 정부가 조사단을 보내자 존스는 모든 신도에게 독약을 먹고 자살할 것을 지시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으로 914명이나 희생됐다. 

    최근 가이아나라는 국명이 국제사회에 두 번째로 회자되고 있다. 이번에는 ‘석유 대박’ 때문이다. 가이아나 정부는 2015년 세계적인 에너지기업 미국 엑슨모빌과 대륙붕을 비롯해 자국 연안 해저의 원유를 탐사하는 계약을 맺었다. 엑슨모빌은 지난해 6월 8번째 시추를 하면서 가이아나 해안으로부터 190km 떨어진 심해에서 어마어마한 유정을 발견했다. 이 유정에는 32억~50억 배럴의 경질유(가솔린, 나프타, 등유 등 이용 가치가 높은 성분을 함유해 상대적으로 비중이 가벼운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동 예멘의 원유 매장량(30억 배럴)보다 많은 규모다. 국민 인당 매장량으로 따지면 대략 3900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인당 매장량(1900배럴)의 2배 수준이다. 

    현재 국제원유시장에서 거래되는 경질유의 배럴당 가격이 60~70달러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기름 한 방울도 나지 않던 가이아나의 모든 국민이 졸지에 인당 최소 24만 달러(약 2억8000만 원)에 달하는 원유를 손에 쥐게 된 셈이다. 엑슨모빌은 12월부터 원유 채굴에 들어가 내년 하루 생산량 12만 배럴로 시작해 2025년 75만 배럴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가이아나가 내년 86%에 달하는 기록적인 경제성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올해 경제성장률(4.4%)을 1년 만에 20배나 뛰어넘는 수준이다. 전 세계 국가를 통틀어 단연 최고치다. 라파엘 트로트맨 가이아나 천연자원장관은 “몇 년 뒤면 가이아나 국민 모두가 백만장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게다가 가이아나에서 새로운 유전이 계속 발견되고 있어 앞으로 생산량이 더욱 늘어날 수도 있다. 실제로 엑슨모빌은 가이아나 연안과 심해에서 탐사 및 시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탈석유 경제개혁 정책 ‘비전2030’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가 소유한 유전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왼쪽). 야시르 알루마이얀 아람코 회장이 기업공개(IPO)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MEED, 알자지라방송]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가 소유한 유전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왼쪽). 야시르 알루마이얀 아람코 회장이 기업공개(IPO)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MEED, 알자지라방송]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가이아나의 석유 대박이 세계 최대 기업이자 사우디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의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우디 정부는 11월 3일 왕실이 지분을 100% 소유한 비상장회사인 아람코의 기업공개(IPO)를 승인했다. 이에 따라 아람코는 12월 11일 리야드 증권거래소인 타다울에 주식 일부를 상장할 계획이다. 아람코가 국내 증시에 상장할 주식은 전체 주식의 2%일 것으로 보인다. 

    아람코의 IPO는 2016년 4월 사우디 정부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왕세자의 탈석유 경제개혁 정책인 ‘비전2030’의 일환으로 추진돼왔다. 당시 무함마드 왕세자는 아람코 전체 주식의 5%를 팔아 마련한 자금으로 2030년까지 원유 중심의 경제구조를 바꾸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아람코는 해외 증시에는 전체 주식의 3%를 상장할 계획이다. 아람코는 그동안 국제유가 폭락,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까슈끄지 살해사건, 이란으로 추정되는 석유시설 무인기(드론) 공격 등 각종 악재로 3년 반이나 지나서야 IPO를 실시하게 됐다. 

    기업이 증시에 상장될 때 기업가치가 얼마로 평가되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게다가 IPO를 통해 더 많은 자금을 끌어모으려면 기업가치가 높아야 한다. 이 때문에 사우디 정부와 무함마드 왕세자는 아람코의 기업가치가 2조 달러(약 2330조 원) 이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 경우 국제유가는 배럴당 80~100달러가 돼야 한다. 현재 국제유가는 55~60달러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아람코의 기업가치가 1조6000억~1조8000억 달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아람코의 기업가치를 책정했다. 


    물론 시장과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예상치가 사우디 정부와 무함마드 왕세자의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IPO가 실시된다면 아람코는 상장 즉시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이 될 것이 분명하다. 현재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로 기업가치는 1조 달러(1192조 원)다. 아람코의 기업가치가 2조 달러라 가정하고 전체 주식의 5%가 IPO를 통해 상장된다면 그 규모는 100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가 될 것이다(그래프1 참조). 지금까지 IPO로 가장 많은 자금을 끌어모은 기업은 2014년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였다. 당시 알리바바의 공모액은 250억 달러(약 29조 원)를 기록했다. 아람코의 기업가치가 1조6000억 달러(약 1870조 원)라 해도 공모액은 800억 달러나 된다. 

    그런데 사우디 정부와 무함마드 왕세자는 아람코의 기업가치가 기대보다 낮은데도 IPO를 연내에 실시하려고 상당히 서둘렀다고 한다. 그 이유는 국제유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무함마드 왕세자가 새로운 산유국의 부상과 원유 공급 과잉에 따른 국제유가 하락을 우려해 연말 전 아람코의 IPO를 고집했다고 전해진다. 다시 말해 무함마드 왕세자는 가이아나의 ‘원유 대박’을 의식했다고 볼 수 있다. 가이아나가 내년부터 양질의 원유를 국제원유시장에 공급하면 국제유가가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가이아나라는 다윗이 사우디라는 골리앗의 뒤통수를 치는 격이다. 

    실제로 가이아나를 필두로 브라질과 캐나다, 노르웨이 등 지정학적으로 안정된 산유국들이 국제원유시장에 원유 공급을 늘릴 계획이다. 노르웨이 국영석유업체 에퀴노르(옛 스타토일)는 최근 북해 요한 스베르드루프 심해유전에서 석유 생산에 들어갔다. 이 심해유전에서는 하루 평균 44만 배럴의 원유가 생산될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남서부 앨버타주와 미국 위스콘신주를 잇는 총길이 1600km 규모의 ‘라인3’ 송유관도 거의 완공돼 최종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허가가 나오면 원유 수송이 하루 30만 배럴에서 89만 배럴로 3배 가까이 늘어난다. 브라질은 하루 평균 150만 배럴의 원유가 생산될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의 시추권을 조만간 경매할 예정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사우디 정부가 아람코의 IPO를 연내에 서둘러 진행한 주된 이유는 다가오는 ‘원유 홍수(flood of oil)’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4개국의 원유 공급량은 내년 하루 평균 100만 배럴이 될 것으로 보이며, 2021년에는 200만 배럴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수요 감소+공급 증가=원유 가격 급락?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왕세자가 ‘비전2030’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위). 
노르웨이 국영석유회사가 심해유전에서 원유를 퍼 올리고 있다. [spa, Eqinor ASA]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왕세자가 ‘비전2030’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위). 노르웨이 국영석유회사가 심해유전에서 원유를 퍼 올리고 있다. [spa, Eqinor ASA]

    현재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은 하루 평균 8000만 배럴 정도다. 미국 정부가 베네수엘라와 이란을 상대로 석유 수출 금지 등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도 시장에선 이미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경제 둔화로 원유 수요 감소 추세가 뚜렷해지는 가운데 공급까지 늘어난다면 국제원유 가격은 급락할 수밖에 없다. 국제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들 4개국의 신규 생산량만으로도 향후 2년간 전 세계 수요 증가분을 감당하고도 남을 것이라 보고 있다. 세계적인 석유 전문가이자 시장조사 전문업체 IHS마킷의 대니얼 예긴 부회장은 “이들 4개국의 부상은 10여 년 전 미국 텍사스와 노스다코타주를 중심으로 시작된 셰일오일 혁명과 비슷하다”며 “셰일오일 혁명 때와 마찬가지로 세계 경제성장이 정체된 상태에서 원유 공급량이 크게 늘어난다면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사우디 정부의 최대 과제는 아람코의 기업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제유가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될 전망이다. 데이비드 골드윈 전 미국 국무부 국제에너지협력관은 “사우디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은 감산을 연장하면서 국제유가를 관리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유가 하락은 미국 셰일오일업체들에도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이하로 하락하면 노스다코타주, 오클라호마주, 루이지애나주, 콜로라도주 등에서 셰일오일 시추 작업이 중단될 수 있다. 이 경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이아나라는 자그마한 나비의 날갯짓이 국제원유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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