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7

2015.03.02

앞치마 벗은 셰프테이너가 뜬다

실력과 끼, 훈훈한 외모 3박자 …토크쇼부터 리얼 예능까지 종횡무진

  • 박현민 OSEN 기자 gato@osen.co.kr

    입력2015-03-02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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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치마 벗은 셰프테이너가 뜬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 중인 셰프 박준우, 샘킴, 최현석, 정창욱, 미카엘 아쉬미노프(왼쪽부터). 이들은 매회 뛰어난 요리 실력과 반전 매력을 선보이며 인기를 얻고 있다.

    대한민국 예능프로그램이 ‘맛있게’ 진화하고 있다.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먹방’(먹는 방송)과 ‘쿡방’(요리 방송)이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케이블채널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등장한다. 그 중심에 셰프테이너(chef와 entertainer의 합성어)가 있다. 요리 실력은 기본이요, 엔터테이너의 끼와 재능을 겸비한 셰프테이너들이 요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 혹은 요리를 소재로 적당히 예능을 버무린 프로그램에서 눈에 띄게 활약 중이다. 올리브TV의 ‘올리브쇼’가 전자라면, JTBC ‘냉장고를 부탁해’는 후자에 속한다.

    비단 요리 프로그램만은 아니다. 언뜻 요리와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리얼 예능프로그램이나 토크쇼에도 이들 셰프테이너가 침투했다. MBC ‘일밤-진짜 사나이’ 시즌2에 합류한 샘 킴과 SBS ‘정글의 법칙 in 인도차이나’편에 합류한 레이먼 킴이 이 같은 경우다. 최현석 셰프는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JTBC ‘썰전’ 등에 출연해 예능인을 쥐락펴락하는 입담을 과시하기도 했다. 물론 그들보다 앞서 이미 강레오, 백종원 등이 육아예능, 토크쇼 등에 진출한 선례는 있지만 지금같이 그 영역이 광범위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진출한 적은 처음이다. 지난해 말부터 세차게 불어닥친 셰프테이너 열풍은 2015년 상반기 방송가 트렌드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주방에서 조용히 칼질만 하던 ‘셰프’들이 어떻게 방송가의 서바이벌이나 리얼 예능프로그램에 진출해 거부감 없이 스며들고, 셰프테이너로서 전문 예능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기를 거머쥐게 된 걸까. 또 TV 앞 시청자는 셰프들의 어떤 모습에 반해 열광하고, 호응을 보내는 것일까.

    ‘먹방’에서 ‘쿡방’으로…셰프가 필요해

    ‘먹방’은 오래전부터 방송가에서 검증된 흥행 요소였다. 과도하게 클로즈업한 화면에서 누군가 쩝쩝거리며 맛깔나게 음식을 먹는 장면은 순식간에 시청자의 몰입도를 치솟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이 때문에 방송사들은 한동안 앞다퉈 ‘먹방’ 내보내기에 몰두했고, 시도 때도 없는 먹방에 시청자는 피로감을 경험해야 했다. 이에 해결책으로 등장한 변형체가 바로 ‘쿡(cook)방’이다. 단순히 먹는 모습에 한정하지 않고 요리를 하는 일련의 과정까지 담아낸 ‘쿡방’은 또다시 대중의 흥미를 낚아채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스타성 있는 셰프 발굴이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셰프테이너들의 활발한 방송 진출은 방송 트렌드에 편승한 결과다. 2011년 ‘샘·레이먼의 쿠킹타임 듀엣’를 비롯해 ‘마스터셰프 코리아’ ‘한식대첩’ 시리즈를 선보인 올리브TV를 중심으로 방송가에선 요리와 예능 요소를 다양한 비율로 혼합한 ‘쿡방’을 꾸준히 제작해왔다. 하지만 이토록 대중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은 적은 드물었다.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즌1~3을 제작한 하정석 PD는 이 같은 현상을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와 연결 지었다. 하 PD는 “요리도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로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다”며 “맛있는 건 당연하고, 그 요리를 만드는 셰프들의 개성까지 해당 접시에서 확인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생겨났다. 셰프들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인기를 얻는 건 그런 욕구의 연장선상”이라고 설명했다.

    사회가 각박해지고 힘들어진 것 역시 이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 큰 행복 대신 일상에서의 소소한 행복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매일 세끼를 접하는 먹거리에 시선이 쏠리게 됐다는 것. 먹고사는 일은 어느 순간부터 단순히 생사를 가늠하는 문제를 벗어나 하이퀄리티에 집중하게 됐고, 이는 자연스럽게 TV 속 셰프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음식의 선호로 이어졌다.

    요식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유명 셰프도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을 경우 일반인에 가까운 ‘예능 초보자’로 재탄생하기 마련이다. 이는 오롯이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현 예능 시스템에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다. 전문 방송인의 학습된 리액션 등 리얼리티 자체에 의구심을 품을 만한 요인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결국 좀 더 현실감을 살린 ‘쿡방’을 원하는 제작진의 욕구와 방송 출연을 통해 인지도를 쌓고 매장 홍보 등 자신의 본업에 도움을 받고자 하는 셰프들의 욕구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져 현재의 셰프테이너 열풍으로 순조롭게 이어졌다는 분석이 방송계와 요식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셰프는 매일 음식을 만들고, 영업이 끝나면 그날의 결과가 바로 매출로 나오는 직업이다. 이 때문에 사람에 대한 배려나 웬만한 책임감 없이는 결코 셰프가 될 수 없다. 주방을 책임지고, 요리로 손님에게 평가받는 ‘진짜 셰프’들을 제작진이 선별해 출연시켰다면 그 본연의 모습만으로도 시청자에게 사랑받을 조건이 이미 충족됐다는 이야기다.

    앞치마 벗은 셰프테이너가 뜬다

    각종 예능프로그램을 섭렵하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셰프들. 레이먼 킴, 강레오, 샘 킴, 최현석(왼쪽부터).

    꾸밈없고 솔직한 리액션에 “신선하다”

    셰프는 아니지만 셰프 못지않은 요리 실력으로 매주 시청자를 놀라게 하는 이도 있다. 바로 tvN ‘삼시세끼 어촌편’의 차승원이 그 주인공이다. 아궁이 불길 위 현란한 웍질로 만들어낸 고추잡채와 꽃빵, 홍합짬뽕은 물론 어묵탕과 핫바, 빵까지 마법처럼 뚝딱 해내 시청자의 침샘을 시종 자극하는 이 프로그램은 그런 매력 포인트에 힘입어 2월 20일 방송분이 시청률 15%에 육박하며 개국 9주년을 맞은 tvN의 역대 최고시청률을 거뜬하게 갈아치웠다.

    차승원과 마찬가지로 큰 키, 수준급 요리실력, 그리고 유부남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셰프테이너도 있다. 바로 스타 셰프 최현석이다. 최현석은 ‘허셰프’라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해 요리와 입담을 주무기로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케이블채널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프로그램 러브콜도 끊임이 없다.

    요리하는 남자는 본디 흔하지 않다. 여자의 눈에 비친 그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섹시할 수 있다. 더군다나 최근 TV에 출연하는 남자 셰프는 하나같이 비주얼도, 입담도 흠잡을 데 없다. 결국 훈남 셰프들이 ‘쿡방’과 ‘먹방’으로 자극하는 건 단순히 시청자의 침샘만은 아니란 소리다. 여성 시청자는 그들을 보면서 ‘내 남자친구’ 혹은 ‘내 남편’의 워너비를 은연중에 마음속에서 구축한다.

    ‘삼시세끼 어촌편’을 연출하는 나영석 PD도 이같은 부분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나 PD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처럼 보이던 출연자가 볼수록 호감이 되고, 정감이 넘친다. 이런 이유에는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줬다기보다 요리에 진지하게 집중하는 모습으로 여성 시청자에게 ‘내 남편도 저랬으면’ 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형성된 자연스러운 호감과 관심이 한데 결합해 지금의 ‘쿡방’ 인기를 일궈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지금 안방극장에 불어닥친 ‘쿡방’과 ‘셰프테이너’ 전성시대에는 분명 매력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점도 있다. 시류에 편승해 한정된 인력으로 무분별하게 재탕하듯 찍어내는 순간, 대중은 또다시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점이다. 각국 외국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대세처럼 우후죽순 쏟아졌다 순식간에 열기가 사그라진 경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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