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6

2012.09.24

레임덕은 없다

29회 분단 60년

  • 입력2012-09-24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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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로 돌아온 이명박은 국민의 따뜻한 반응을 피부로 느꼈다. 2010년 10월 18일, 취임 2년 8개월. 임기의 딱 절반이 지났다. 수시로, 그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여론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어제는‘이명박이 잘한다’는 평가가 92.5%라는 발표가 있었다. 압도적이다. 역사상 이런 지지도가 없었다. 이번 지지도 92.5% 중 ‘아주 잘한다’가 72.5%,‘잘한다’가 20%였다. 처음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 때는 오해도 많이 받았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계속되다 보니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다. 또 다른 여론조사, 즉 ‘이명박의 대통령 재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이번에는 국민 75%가 찬성했다. 지난번보다 무려 12%포인트나 상승했다.

    “시진핑이 내일 평양에 갑니다.”

    집무실 안에서 국무총리 이회창이 말했다. 오늘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한 터라 이회창이 집무실에 들른 것이다. 집무실 소파에는 이명박을 중심으로 이회창, 유명환, 현인택, 조순형까지 다섯 명이 둘러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이른바 티타임이다. 이회창이 말을 잇는다.

    “대통령께서 가신 이유를 다 알고 있는 겁니다. 어떻게 해서든 남북공조를 깨뜨릴 작정이지요.”

    오늘 국무회의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국무회의라도 비밀이 새어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이명박은 티타임 형식으로 이렇게 핵심 인사만 불러들인 것이다. 그때 유명환이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이번에 대통령께서 김 위원장과 신의주 특구 개발 가계약을 맺고 오셨으니, 중국 측에선 북한에 배신당했다고 여길 것입니다. 중국이 그 계약을 깨뜨리지 않도록 우리도 서둘러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소?”

    이명박이 묻자 대답은 현인택이 했다.

    “대대적인 물자 지원입니다. 이번에는 식량과 비료, 생필품까지 지원해주는 것입니다.”

    “그렇지.”

    이회창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북한이 요구하기도 전에 우리가 나서도록 하지요. 오늘 당장 대표단을 보낸다고 합시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도록 비밀리에 진행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하고 유명환이 말을 받자 이명박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그럼 그렇게 하십시다.”

    그러고는 이명박이 머리를 돌려 조순형을 보았다.

    “조 실장이 순서를 정해 부처별로 지시를 해주시지요.”

    “알겠습니다.”

    따라 웃는 조순형이 말을 잇는다.

    “참, 회의 모양이 좋습니다. 이것이 바로 잘되는 나라의 회의일 것입니다.”

    # 분단 60년이다. 그러나 정확히 계산하면, 1945년 8월 15일 해방은 되었으나 미국과 소련에 의해 38선 이남·이북으로 나뉘어 점령당하다가 1948년 8월 15일 38선 이남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 그때부터 2010년 현재까지 62년. 1000만 실향민이 거의 다 늙어 사망했지만 그 자손이 수천만으로 늘어 망향의 시름을 가슴속에 이어서 품고 산다.

    2010년 10월 20일 오전 11시, 이명박은 고세대학교 대강당에 모인 5000여 명의 학생을 본다. 대학이 ‘청춘대한민국’ 운동을 하면서 수시로 외부 강사 강연회를 개최하는데 이명박도 틈만 나면 학교를 찾아간다. 지난 7월에는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했다.

    “여러분, 혹시 저를 멘토로 삼는 학생은 없나요?”

    불쑥 이명박이 묻자 으하하 웃음이 터졌다. 이쪽저쪽에서 ‘저요’‘저요’ 소리가 들렸다가 야유로 묻혔고, 곧 떠들썩해졌다. 이명박이 손을 들자 조용해진다. 분위기가 밝아졌다.

    “솔직히 말할게요.”

    이명박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잇는다.

    “돈 100만 원 가질래, 멘토 한 명 가질래 하고 묻는다면 난 멘토 가질랍니다.”

    “에이.”

    하는 비아냥이 여러 곳에서 들렸고 또 웃음. 다시 이명박이 말했다.

    “근데 1000만 원 준다면 멘토 안 가질랍니다. 그 돈으로 할 일이 있거든요.”

    “뭔데요?”

    하고 앞쪽에서 서너 명이 묻자 이명박이 대답했다.

    “그 돈으로 식량을 사서 북한에 보내야 할 것 같아서요.”

    몇 명이 ‘에이’ 했지만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영리한 학생들이다. 이제 본론이 시작될 줄 아는 것이다. 정색한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분단 6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다른 체제로 운용되던 한국과 북한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렇게 엄청난 경제력의 차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조용하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든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명박의 목소리가 강당 안에 울렸다.

    “나는 여러분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나는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헌법을 위반하고 민족을 우선시하는 것은 반역입니다.”

    다시 이명박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대한민국 체제를 지키면서 북한을 포용하게 된 원천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난데없는 물음이었지만 장내에서 즉각 반응이 일어났다. 이곳저곳에서 소리쳐 대답한 것이다.

    “헌법을 지킨 것입니다!”

    “종북주의자 소탕이요!”

    “대통령의 지도력!”

    “자유민주주의 승리!”

    “경제성장!”

    “이명박!”

    연단에 선 이명박은 이제 묵묵히 듣기만 했고 학생들의 외침은 점점 더 커졌다.

    # “저 자신감 좀 봐라.”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이명박의 강연을 사무실 안에서 시청하던 KBS 보도국장 임명수가 말했다.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임명수가 말을 잇는다.

    “이명박이 저렇게 위대하게 보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지금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맞지요?”

    오늘도 보도국장실에 들어와 있던 차장 박동민이 물었다. 그러자 임명수가 머리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다. 대한민국 국민은 행복하다.”

    “갑자기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위대한 대통령을 갖게 되어서.”

    “나아, 참.”

    “너 같은 무식한 놈들이나 그런 감동이 늦게 오는 거다.”

    그러고는 임명수가 박동민을 쏘아보았다. 말문이 막힌 박동민이 눈만 치켜떴고 임명수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그동안 한국의 정치, 여당과 야당의 온갖 부정과 부패, 당리당략에 빠진 위정자, 정치 사기꾼들에게 국민이 얼마나 실망해왔는지는 너도 알 것이다.”

    임명수의 목소리가 떨렸고 얼굴은 상기됐다. TV 화면에서는 이명박이 마무리 멘트 중이다. 임명수의 말이 이어졌다.

    “봐라.”

    임명수가 눈으로 TV를 가리켰다. 학생들이 환호한다. 모두 웃는 표정이다. 진심으로 이명박에게 호의를 보내고 있다. 임명수가 다시 말했다.

    “저 웃음, 저것이 대한민국의 미래고 희망이다.”

    # 북한에서는 휴전선을 전연지대라고 부른다. 서부 전연지대에 배치된 북한군 제4군단은 최정예부대로, 황해도 일대와 서해 NLL을 담당한다. 근래에 황해도 남부에 ‘고려시’가 건설되면서 완충지역이 만들어진 셈이지만 4군단의 책임은 아직도 막중했다. 한국 측으로서도 4군단이 서울과 가장 가까운 지역에 위치한 북한부대인 것이다. 위협적인 군단이다.

    “어제 몇 명 잡았다고?”

    4군단 참모장 이강수 상장이 버럭 소리쳐 묻자 수화구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예, 47명입니다.”

    “이런 종간나새끼들.”

    어금니를 꽉 물었다가 푼 이강수가 다시 묻는다.

    “그놈들까지 모두 몇 명 잡아놓았나?”

    “예, 214명입니다.”

    “으음.”

    이강수의 목구멍에서 신음소리가 나왔다. 지금 이강수는 고려시 서쪽 경계선에 위치한 제18경비연대장의 보고를 받고 있다. 214명이란 고려시로 숨어 들어가던 이른바 ‘탈북자’를 말한다. 고려시 내부에서는 ‘밀입국자’라고 부르는 모양이지만 이강수에게 그들은 탈북자 또는 반역자나 마찬가지다. 조선인민공화국에서 도망친다는 것은 압록강을 넘는 것과 같다. 그때 경비연대장이 말했다.

    “참모장 동지, 교화소 수용 능력을 넘어서서 야외에 묶어두고 있습니다. 군단에서 받아주셔야….”

    “알았어. 기다리라우!”

    해놓고 전화기가 부서져라 내려놓은 이강수가 입맛을 다셨다. 제18경비연대만 포화상태가 아니다. 동쪽과 북쪽 해안선 경비를 맡은 부대에도 잡아놓은 반역자가 넘친다. 거기에다 군단 수용소도 포화상태여서 받을 능력이 없는 것이다.

    ‘이 반역자들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이강수의 입에서 저절로 혼잣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것은 ‘붕괴’다. 이강수의 눈에는 ‘체제 붕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고려시에서는 개도 이밥(쌀밥)에 고깃국이 질려서 햄버거만 먹는다는 소문이 퍼지자 탈북자들이 정신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지금 고려시 안에서 먹고사는 탈북자가 30만 명이라는 통계도 나왔다. 제4군단이 그동안 교화소에 가둬놓았다가 인계한 탈북자 수만 35만 명이다. 이것이 붕괴 조짐인가?

    레임덕은 없다
    # 시진핑이 신의주 특구 개발 계약을 거부당하고 돌아간 후부터 북·중 관계는 급속히 악화했다. 중국은 북한 무역의 90%를 차지하는 터라 수출, 수입 어디 한 곳만 건드려도 북한 경제는 심대한 타격을 받는다. 또한 식량과 연료까지 무상으로 받아왔기 때문에 당장 인민의 식량난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 한국정부의 대규모 생필품 지원 제의는 북한정권에 가뭄에 단비 같은 감동을 주었다.

    “쌀 100만t을 당장 다음 주부터 5만t씩 1주일 간격으로 공급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개성을 통해 방북한 한국 대표단과의 협상 도중 북한 측 대표인 노동당 행정부장 겸 국방위 부위원장 장성택이 김정일에게 보고했다. 모란봉 초대소 안이다. 김정일은 머리만 끄덕였고 장성택이 말을 잇는다.

    “기름도 종류별로 매주 1만t씩 지급해주기로 했습니다, 위원장님.”

    다시 김정일이 머리를 끄덕였고 장성택의 보고가 계속된다.

    “신의주 특구도 고려시처럼 운영하도록 남조선 측이 요구했습니다. 지역을 확장해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야겠지.”

    김정일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다.

    “그럼 중국으로 넘어가는 탈북자도 줄겠지.”

    머리를 든 장성택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때 김정일이 말했다.

    “분단 60년이야. 갑자기 허물면 문제가 일어난다.”

    “그렇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장성택의 표정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고려시로 밀입국하려다 잡힌 인민이 무려 35만이다. 시 안에서 살고 있는 밀입국자가 30만이라는 거야.”

    장성택의 시선을 받은 김정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너도 알고 있었지?”

    “저, 저는….”

    당황한 장성택이 말을 더듬는다. 공안과 정보기관을 장악한 장성택이 보고를 받지 않았을 리 없다. 김정일이 길게 숨을 뱉었다.

    “60년 동안 북남 환경의 차이가 너무 커졌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차이를 줄이는 거야. 갑자기 차이가 드러나면….”

    심호흡을 하고 난 김정일이 정색했다.

    “무너진다.”

    # 보고를 받은 제4군단장 김경식 대장이 머리를 들고 참모장 이강수 상장을 보았다. 군단장실 안이다.

    “경비는 내 책임이야. 지금 각 경비대에 잡혀 있는 탈북자가 몇 명이라고?”

    “예, 887명입니다. 군단장 동지.”

    그리고 군단 교화소에는 8659명이 있다. 모두 수용능력을 넘어섰다. 이제 북한땅에 있는 교화소는 모두 포화상태라 더는 받을 능력이 없다. 지금까지 35만 명이 체포되었고 그중 32만 명이 교화소에 갇혀 있는 것이다. 나머지 3만여 명은 석방했지만 감시 대상이다. 그때 김경식이 말했다.

    “각 경비대에 지시해서 그중 악질분자 10%를 추려내 총살하도록 해.”

    “예?”

    했다가 이강수가 긴장으로 몸을 굳혔다. 이것이 김경식의 지시일 리 없다. 다시 김경식의 말이 이어졌다.

    “군단 교화소에 있는 놈들도 마찬가지야. 공개 총살하도록.”

    그러면 소문이 순식간에 퍼질 것이었다. 총살만큼 효과적인 선전, 경고 수단도 없다.

    # 총살 장면이 찍히지는 않았지만 북한당국은 탈북자 총살을 공식 발표했다. 분위기에 어울리는 ‘아줌마 아나운서’가 등장해 ‘거어시었다’라고 하면서 총살된 탈북자 겸 반역자 수를 발표한 것이다. 모두 114명이다. 그러나 소문은 수천 명이라고 났다. 외신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인터넷에서는 수만 명이라고 떴다.

    “이건 급격한 변화에 제동을 거는 수단입니다.”

    국정원장 장세동이 이명박에게 보고했다. 대통령 집무실 안이다. 원탁에는 이명박과 장세동, 그리고 대북 원조 총책임자인 통일부 장관 현인택과 대통령실장 조순형까지 넷이 둘러앉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명박은 비서관까지 너절하게 회의석상에 참가하는 것을 지양했다. 필요한 인물만 모으고 빨리 끝낸다. 그리고 회의는 짧게, 위원회는 줄인다는 것이 이명박의 소신이다. 장세동이 말을 잇는다.

    “이번 처형으로 고려시로 밀입국하는 자들은 거의 없어질 것입니다. 이걸 내버려둔다면 체제의 급격한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장세동이 보고서를 펼쳤다.

    “현재 이 변화에 가장 민감한 북한 집단이 군부입니다. 남북이 평화공존 상태로 유지되면 북한 군부는 설 자리를 잃습니다. 지금까지 체제를 유지시키면서 받아온 온갖 권력과 특혜를 자연히 내놓아야 할 테니까요.”

    이명박이 머리만 끄덕였다. 이것도 기득권이다. 누가 움켜쥔 권세를 순순히 내주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북한군의 동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정일도 모르게 일을 저질러 긴장감을 조장하거나 기득권을 지키려고 할 테니까요.”

    그러더니 장세동이 이명박을 정색하고 보았다.

    “특히 4군단이 위험합니다. 군단장 김경식이 김정일의 최측근이지만 과격하고 인맥이 넓습니다. 특히….”

    장세동의 눈이 안경알 밑에서 번들거렸다.

    “김경식은 중국 군부와도 관계가 좋습니다. 평양주재 중국대사관 류훙차이와 자주 연락을 취한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심호흡을 한 이명박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예상은 했다. 분단 60년인 것이다. 그동안 썩어 고인 물에서 자란 박테리아가 괴물 올챙이로 돌연변이했을 만한 세월이다.

    # 고려시를 총괄하는 정동영만큼 60년 분단의 실상을 피부로 겪는 한국인도 없을 것이다. 5대 5 비율로 시 행정체제가 갖춰졌지만 고착된 관념을 몇 달 사이에 깨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처음에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동화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예를 들어 진작 개성공단에서 시행했던 성과급 제도나 시간외 수당, 또는 성적순 진급과 경쟁제도 등이었다.

    그러나 변화 속도가 지지부진했다. 일단 먹는 걱정이 사라지자 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 같았다. 공장의 생산성은 떨어졌고 한국에서 ‘이민’온 투자자들만 난리를 쳤다. 그 대신 북한 사기꾼들이 급격히 증가했는데, 소수이긴 해도 수단이 뛰어났다. 남한 투자자를 등쳐 먹는 사건도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이런 비판적인 상황은 일부분이다. 전반적인 고려시 분위기는 희망에 차 있었다. 주민은 새 세상을 꿈꾸었고 미래에 대한 전망은 한국보다 밝았다.

    “안 됩니다.”

    정동영이 한마디로 거부했다. 지금 정동영 앞에는 시 경찰국장 최도현이 서 있다. 최도현은 북한 측 인사로 4군단 12사단장 출신의 현역 중장이다. 최도현의 시선을 받은 정동영이 말을 잇는다.

    “가택과 공장 검문, 도로 통제 또는 봉쇄, 어느 한 가지도 허가 못 합니다. 이건 전시(戰時)에나 사용하는 수단이에요.”

    “하지만 장관님….”

    한걸음 다가선 최도현이 정동영을 똑바로 보았다. 56세. 역시 김정일의 측근이다. 몇 년 전에 김정일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본 적도 있다.

    “고려시 외곽 경비대에서 체포한 반역자들을 총살했습니다. 고려시에 들어오면 검문도 없다는 소문이 날 경우 반역자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넘어올 것입니다.”

    “총살하는 것을 막을 순 없지만 여긴 내가 총괄합니다.”

    어깨를 편 정동영이 머리를 내젓는다.

    “그렇게 통제, 봉쇄, 검문을 하면 투자자들이 다 도망갑니다. 누가 그런 상황에서 투자하려고 돈을 들고 오겠습니까? 안 됩니다. 만일….”

    정동영이 눈을 치켜뜨고 최도현을 보았다.

    “그렇게 되면 내 책임이오. 김 위원장님과 이 대통령으로부터 고려시를 위임받은 내가 책임져야 한단 말이오. 보류하세요.”

    그러자 최도현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김 위원장을 들먹인 것이 효과를 본 듯하다. 최도현은 목례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정동영은 심호흡을 했다. 분단 60년의 벽은 아직도 단단하다.

    이원호

    레임덕은 없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 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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