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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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안전보장 받아 ‘중립화통일국가’로 가야 한다”

전 통일연구원장 곽태환 교수의 신(新)통일방안

  •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12-05-29 11: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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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강 안전보장 받아 ‘중립화통일국가’로 가야 한다”
    곽태환(74) 교수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과 통일부 산하 통일연구원장을 역임한 곽 교수는 현재 경남대 석좌교수,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미국 이스턴켄터키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한 사단법인 동북아공동체연구회 수석부회장, 통일전략연구협의회장, 영세중립통일협의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1년의 반 이상을 미국에서 지내는 그가 최근 일시 귀국했다. 특강과 연구, 세미나, 포럼 활동으로 바쁜 그를 만나 북한 정세와 대북정책, 그리고 통일방안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인터뷰에 앞서 그는 “나는 친북·종북주의자는 아니지만 진보적 학자”라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밝혔다. 통합진보당 일부 종북주의자의 행태에 대해선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가 요즘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는 한반도 비핵화 프로젝트와 평화체제 구축, 통일비전이다. 그는 “북핵 인정과 평화체제 구축은 양립할 수 없다”며 북핵문제 해결을 통일의 선결과제로 꼽았다. 그가 이끄는 통일전략연구협의회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데, 회원 중에는 북한 사정에 정통한 친북 해외 인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김정은 체제를 어떻게 전망하나.



    “김일성 왕조 제3대 체제로 안정화되고 있다. 조선시대 이씨 왕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나이 어린 왕이 등극하면 노련한 신하들이 보필한다. 김정은은 김일성, 김정일과 달리 선군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인민생활 향상을 강조한다. 밑바닥에 시장경제체제가 자리잡고 있다. 낮은 단계의 개혁·개방을 시작했다.”

    北, 낮은 단계의 개혁·개방 시작

    ▼ 중국식 개혁·개방인가.

    “북한은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나라다. 결국은 중국식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강경파보다 실용주의자들이 전면에 나설 것이다.”

    ▼ 김정일 사후 남한에 대한 위협 수위가 높아졌다. 강경 일변도다.

    “한민족은 감정의 동물이다. 수령이 죽었다. 한국 정부가 공식 조문단은 안 보내더라도 비정부기구(NGO) 조문단의 방북을 막지는 말았어야 한다는 게 북한 사람들 생각이다. 감정적으로 격화돼 있는 것이다.”

    ▼ 남쪽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도발 등으로 북에 대한 감정이 안 좋다.

    “천안함 사건의 경우 나도 북한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북한은 부인한다. 러시아 조사팀의 결과보고서도 북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지금까지의 행태를 보건대, 북한은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2010년 6월 홍콩에서 세미나를 했다. 그 자리에 북한 군축평화연구소 소속 학자 2명이 참석했다. 내가 ‘46명의 인명을 앗아간 데 대해 유감 표시라도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자 ‘우리가 하지 않았는데 왜 그래야 하느냐’며 거부하더라.”

    그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완전 실패”라고 규정했다.

    “‘비핵개방 3000’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바람에 북한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무조건 비핵화하면 국민소득 3000달러 달성을 도와주겠다’는 건 잘못된 제안이다. 핵개발이 (북한의) 레버리지(leverage·지렛대, 영향력)인데 그걸 무조건 포기하라는 요구는 잘못된 것이다. 분위기 조성부터 했어야 한다. 남북이 10여 년간 맺은 합의 내용을 준수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이 한계를 드러내지 않았나.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동등한 처지에서의 상호주의를 주장하지 않았다면 북의 위협을 지금보다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상호주의는 현실적으로 안 맞는 면이 있다. 북이 망하기를 바라는, 이른바 ‘전략적 인내’도 잘못된 방법이다.”

    ▼ 남한의 포용주의에 북한은 핵개발로 응답했다.

    “북한은 한번도 핵을 포기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 미국이 적대적 정책을 포기하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게 북한의 일관된 주장이다. 북미수교와 평화협정 체결이 그것이다. 북이 스스로 개혁·개방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거둔 성과와 실책을 꼽는다면.

    “너무 퍼줬다든지, 현금을 주고 정상회담을 했다는 따위의 비판이 있지만 대단한 성과를 거뒀다. 포용정책을 폈기 때문에 6·15선언이 나왔다. 다만 2007년 10·4선언은 문제가 좀 있다. 대선을 의식해 실천하지 못할 방대한 사업을 합의했다. 정치적 목적이 개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4자 간 평화조약 체결 필요

    곽 교수는 통일 전제조건으로 4자 간 평화조약 체결을 주장해왔다. 4자란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다. 그가 말하는 4자 평화조약의 3단계는 첫째, 북미 평화합의문이다. 둘째는 남북 평화합의문, 마지막은 한중 평화합의문이다.

    그가 내세우는 통일전략은 중화평화론(中和平和論)에 의거한 중립화통일이다. 이념 양극화와 극단적 사고를 중화해 3화(화합, 조화, 평화)를 이룸으로써 통일 기반을 닦는다. 통일코리아는 중립적 외교 및 안보정책을 추구한다.

    “남한은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북한은 고려연방제를 주장한다. 서로 수용하기 곤란한 방안이다. 합의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중립화통일방안이다. 이미 중립화통일헌장을 제정했고 중립화통일협의회도 만들었다. 미·중·러·일 4대 강국은 실제로 한반도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 학자들의 거의 공통된 견해다. 통일코리아가 자국 이익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립화하면 4강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 따라서 4강이 지지할 것이다.”

    “양쪽 막말 멈추고 대화 의지 보여야”

    “4강 안전보장 받아 ‘중립화통일국가’로 가야 한다”
    그가 꿈꾸는 통일코리아는 4강 가운데 어느 국가와도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다. 비동맹 균형외교 전략을 추구하면서 국익을 극대화한다. 그러려면 통일코리아가 4강의 국익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조건을 내세워 4강으로부터 통일코리아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국제적 공약을 받아내는 일이 필요하다.

    ▼ ‘비동맹’ 때문에 오해받을 수도 있겠다.

    “북한이 말하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도 비동맹 중립국가를 표방한다. 하지만 과정이 다르다. 내 방안은 중립화를 거쳐 통일하자는 것이다.”

    ▼ 자유민주주의체제는 유지하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포기하면 안 된다. 중립화통일헌장에도 반영돼 있다. 북한도 중국처럼 바뀌다 보면 시장경제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 북한이 쉽게 동의할까.

    “우리 멤버(LA통일전략연구협의회) 가운데 북한을 자주 들락거리는 종북주의자가 있다. 그 사람에게 ‘북한 사회과학원 측에 중립화통일방안을 잘 설명해보라’고 말했다. 나는 통일연구원 측에 설명하기로 하고. 7월 초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 예정이다.”

    통일코리아는 5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1단계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다. 2단계는 한반도 중립화 공동합의문 채택, 3단계는 남과 북, 4강의 한반도 중립화 선언과 국제조약 체결. 4단계는 통일헌법 채택과 총선거 실시, 그리고 마지막은 통일국가 창립이다.

    ▼ 경색된 남북관계를 푸는 해법으로 남북 최고지도자의 양보와 타협을 주장해왔다. 현시점에서도 통하는 얘기인가.

    “지금은 극단적 대치 상황이다. 북한이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먼저 뭔가를 내놓으면 좋을 것이다. 광명성 발사로 일을 그르친 만큼, 그것이 유훈(遺訓)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해도 먼저 화해 신호를 보내는 것이 맞다. 남쪽에선 북에서 신호가 오면 곧바로 받아줘야 한다.”

    곽 교수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며 “무엇보다 양쪽 다 막말공격을 걷어치우고 대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꼭 우리가 남북관계를 주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유연성을 갖고 양보와 타협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이는 대통령 의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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