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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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觀

지옥 같은 전장에서 빛난 신념의 힘

멜 깁슨 감독의 ‘핵소 고지’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7-02-27 13: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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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소(Hacksaw) 고지는 일본 오키나와 마에다 고지의 절벽이 마치 날카로운 톱 모양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미군은 오키나와를 점령하면 일본을 점령하는 것이고 지긋지긋한 전쟁도 끝나리라고 예상한다. 그런데 만만치 않다. 어마어마하게 퍼붓는 함대의 포화에도 곳곳에 은닉해 있던 일본군의 출현이 계속된다. 미군은 고지에 오르고도 후퇴만 거듭한다. 그 누구도 다친 병사를 챙길 여력이 없다. 그래서 다쳤지만 살아남은 병사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고지에 남게 된다.

    여기에 의무병 데스먼드 도스(앤드루 가필드 분)가 온다. 그는 군인이지만 총을 들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도 않는다. 황당하게도 그는 사람을 살리려고 전장에 왔다고 말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놔두면 죽었을 게 빤한’ 사람을 구한다. 그렇게 잃어버릴 뻔한 생명을 구한 사람, 영화 ‘핵소 고지’는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핵소 고지’는 사람을 이야기하지만 그 주제를 더 강렬히 전달하고자 전쟁의 스펙터클을 최대한 활용한다. 멜 깁슨 작품답다. 이젠 감독이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리는 깁슨은 고통의 순례자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하다. 그가 연출한 작품 곳곳에는 피와 살이 튀는 고통이 넘쳐난다. ‘브레이브하트’(1995), ‘아포칼립토’(2006) 같은 전작이 전쟁 서사를 다룬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핵소 고지’는 깁슨이 예수의 삶을 극화한 작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를 떠올리게 한다. 마치 ‘패션 오브 도스’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 도스의 고통은 훈련에서부터 시작된다. 집총을 거부하는 행위는 군대에서 명령 불복종 내지는 하극상으로 비친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상사와 동료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심지어 집단 구타까지 당한다. 그러나 그는 결코 제대하거나 중도에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신념을 갖고 군에 왔기 때문이다. 그런 괴로움을 예상치 못했던 게 아닌 셈이다.

    어려움 끝에 도스는 오키나와 전투에 참전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그곳은 죽을 가능성이 높은 지옥의 격전지다. 군인과 동료, 아니 그저 생명이 속절없이 죽어나간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 도스는 어떻게든 부상자를 구해내고자 한다. 살 만한 사람, 부상이 치명적이지 않은 사람을 가리는 것도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고지 아래로 내려 보내 혹시나 모를 삶의 가능성을 붙잡고자 한다. 그렇게 그는 혼자서 75명의 목숨을 구한다.



    도스가 병사들을 구하는 장면을 보면 그가 믿는 게 총이나 자신이 아니라 절대적 존재, 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포탄이 난무하는 곳에서 그가 살아남고 동료 병사를 구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이미 기적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살아남은 것보다 도스가 신념을 지키고 사람을 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초월적이며 기적적인 일이다. 신이란 어쩌면 인간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초월적 힘을 내게 하는 어떤 의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앤드루 가필드의 연기는 이 기적의 감동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깁슨의 장기답게 전투 장면은 잔혹하고 폭력적이며 사실적이다. 전쟁은 생각처럼 낭만적이지도, 결코 멋지지도 않다. 끔찍한 장면을 보고 있자면, 전쟁이라는 게 얼마나 소모적이고 잔인한 짓인지 저절로 알게 된다. ‘핵소 고지’는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전투와 신념이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주제를 버무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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